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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01. 2022

“요즘 글 쓰니?”

다시 시작하기


“요즘 글은 쓰니? 애들 밥 차리고 정신없어도 글은 써라.”

엄마와 수다를 떨다 마지막 인사를 하려는 찰나에 엄마가 한마디 했다. 

“응 엄마, 쓰고 있지.”

대수롭지 않은 답 속에는 나만 아는 복잡함이 함께였다. 오랫동안 글쓰기를 멈췄다.  꼭 써야 할 이유는 없다. 단지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난 노트북 앞에 앉아서 타다닥 자판을 두드리는 순간이 좋다. 사람들이 아침이면 직장을 나가듯 하루의 일과 중 한 편의 글을 브런치에 올리면 마음이 가볍다. 조회 수가 많이 나오거나 구독자가 한두 명 더 생겼다면 누군가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질 때도 있었다. 열정적으로 쓰던 일이 아득해졌다. 그러다 며칠 전 엄마의 짧은 물음은 내 가슴을 '쿵' 하게 했다.      


“엄마가 언니를 잘 알아서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어.”

동생과 전화 통화하다 글쓰기 얘기가 나왔다. 동생은 엄마의 반응에 대해 언니를 잘 아는 속 깊은 관심이었다고 했다. 그랬을까? 엄마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았으니 확인할 수는 없지만, 동생의 말이 맞는 것 같다. 내가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하고 싶은 일이라 했던 글을 쓰고부터는 일상이 조금씩 변했다. 꾸준히 하는 게 있으니 시간을 절약하고 체계적으로 쓰게 되었다. 더불어 문득문득 단단해지는 나를 발견했다. 글쓰기를 멈추니 이런 것들이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부터 몸이 힘들다는 이유로 쉬었다. 솔직히 말하면 자판을 두드릴 힘이 없을 정도가 아니었다. 그저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생각하는 것, 바라보는 것, 편해지고 싶다는 이유로 외면했다. 일주일에 한두 편 이상을 꾸준히 하던 것에서 벗어나니 처음에는 홀가분했다. 그다음에는 써야 하는데 하는 조급함이 밀려왔지만 “내일부터 하자”라며 미뤘다. 이제는 그런 마음도 멀어져 간다. 이럴수록 마음은 더 가벼워져야 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무겁다. 내 일을 미뤄두고 딴짓에 골몰할 때의 그리 상쾌하지 않은 기분이다.      


시간은 누가 뭐라 해도 절로 잘 흘러가 겨울이 지난다. 봄이 내 곁에 다가오는 중이다. 새싹이 돋아나고 아이들이 새 학년에 올라간다. 이즈음에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글이다. 거리가 생긴 만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회복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 글쓰기 역시 부지불식간이었지만 그 순간까지는 참 많은 세월이 흘렀다.  남편이 아파서 가장 힘들었던 시간에 글을 썼다. 나를 숨 쉬게 하는 탈출구였다. 어떻게 글로 마음을 달래게 되었는지 그때의 감정은 떠오르지 않는다. 병원에 입원해 둔 남편을 두고 집으로 돌아오면 한밤중에 글을 썼다. 아이들이 다 잠을 자는 깊은 밤중에 그저 쓰는 순간이 좋았다. 그렇게 시작된 글쓰기는 두 해를 넘겼다.  

    

난 그동안 겨울잠을 자는 개구리였다. 엄마가 그만 자라고 살짝 나를 깨웠다. 이뿐만이 아니다.

“엄마 봄이잖아. 1, 2월은 해가 바뀌었지만, 겨울이니 그렇게 보내고, 이제 우리 개학하는 것처럼 엄마도 이제 해 봐.”

아이와 동네 빵집에 다녀오는 길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내 고민을 얘기했더니 응원한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에 따르는 불안감이 커지고 그것은 몸으로 이어져 여러 내 기관들이 움직이는 것을 방해한다. 이럴 때마다 해결책은 그저 현재에 머무는 것이다. 간결한  해법이지만 실생활에서는 철저하게 그렇게 하리라 마음먹고 연습해야 가능한 일. 매일 반복하고 안 되어도 다시 돌아와 하고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글쓰기도 이와 같지 않을까? 내가 맛있는 요리를 하거나 어제와는 다른 생각이 머물러야 글이 탄생한다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저 하루를 보냈다면 모든 게 내 이야기다. 그것을 글로 정리해 가면 그만이다 싶다. 하얀 모니터가 까만 글자들로 한 줄 두 줄 채워지는 동안 선명하지 않았던 내 감정들을 알게 되고, 타인에 대한 내 시선을 그제야 알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 나는 나를 만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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