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진미 Feb 22. 2022

설레던 한밤중 베이킹

나를 위한 셀프 위로

  

아침 설거지를 끝냈다. 갑자기 빵이 생각났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알 길은 없었지만 강한 끌림은 참으로 오랜만에 묵혀뒀던 빵틀을 꺼내게 했다. 사과 파운드케이크를 만들기로 했다. 지난 금요일에 위층 언니가 갖다 준 사과 4개가 있다. 그중에서 싱싱하지 않은 녀석을 씻고 껍질을 벗겨 적당한 크기로 썰었다. 그다음에는 버터 대신 식용유와 설탕, 레드향 마멀레이드 청을 넣고 계란도 하나 깨뜨렸다. 이것들을 모두 잘 섞어 주고 나서는 박력분을 두 컵 정도 채로 쳐서 큰 볼에 함께 잘 반죽되도록 했다. 베이킹파우더도 계량하지도 않고 짐작으로 대충 넣었다. 여기에 우유도 반 컵 정도 넣으니 적당히 촉촉한 반죽 완성이다. 4년은 족히 잠자던 틀에 종이를 깔고 반죽을 담았다. 오븐에서 180도 45분 정도를 구웠더니 제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들이 빵 구워지는 냄새를 맡고는 달려온다. 오랜만에 아침부터 나는 고소하고 달콤한 향을 외면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중간에 오븐을 열어보니 반죽을 용기에 너무 많이 담은 탓에 겉은 다 익었는데 속은 아직이다. 그대로 두기에는 겉면이 너무 타버릴 것 같은 마음에 틀에서 꺼내 반으로 자르고 구웠더니 금세 다 익었다. 베이킹을 할 때마다 느꼈던  특유의 담백함에 빠져든다.  아직 완전히 식지 않은 탓에 조금 부스러졌지만 아이들과 한 조각씩  먹었다. 커피와 잘 어울리는 케이크였다.      

사과 파운드케이크

내게 빵은 특별하다. 고등학교 시절 1교시가 끝나면 매점 주인아줌마의 빵집에서 갓 구워낸 빵이 도착했다. 쉬는 시간 종소리와 동시에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했던 건 곰보빵. 한 입 앙 물고 나면 푹 꺼지는 빵의 부드러움이 압권이었다. 아마 이때부터 빵에 마음을 두게 되었던 것 같다. 어른이 되면 빵을 만들며 여유롭게 지내고 싶다는 꿈을 꾸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고부터는 그것이 그리 간단치 않음을 알게 되었다. 빵은 그저 사 먹는 것일 뿐. 잡지를 보다가 우연한 기회에 집에서 빵을 만드는 이를 만났다. 짧은 레시피를 보니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십여 년 전 워킹맘 시절,  빵을 만드는 일은 현실의 상황과는 어쩌면 맞지 않았다. 그래서 더 강하게 빵을 만들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갓 돌을 넘겼고 남편과는 주말부부로 지냈다. 육아와 살림 모든 게 내 차지였다.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는 직장이었고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지냈다. 그러다가도 퇴근해서 온 늦은 저녁이면 빵을 만들었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는 살며시 문을 닫고 방을 나오면 빵을 만들기 위한 재료를 식탁 위에 꺼내놓고 나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저울이나 별도의 도구 없이 컵으로 재료들을 계량했다. 빵이 어떠하다는 평가의 잣대를 들이댈 필요도 없었다. 그저 내 손으로 만들어지는 게 신기했다. 손이 데일만큼 뜨거운 빵이 접시에 오를 때면 마음은 모자람 없이 넉넉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모닝빵을 만들던 날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반죽을 잘 치댄 다음 얼마간의 휴지기간을 주어 잘 부풀도록 했다. 반죽하고 바로 구워도 되는 빵과는 달리 시간을 더 요구했고 약간의 노동도 필요했다. 그럼에도 왜 그 깊은 밤에 빵을 만들었을까 싶다. 빵집에서 사다 먹으면 그만인 것을 온 신경을 써가며 주변에 밀가루 날리도록 열심이었다. 그때는 그 행동이 무엇 때문인지 몰랐다. 그저 “내가 좋아하니까 하는 거야”하는 말로 모든 걸 대신했다. 그날 모닝빵은 생각보다 잘 나왔고 다음 날 회사 동료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아니, 언제 이런 걸 다 만들었어. 집에 가면 아기 보는 것만으로도 힘들 텐데. 대단해.”

동료들의 한결같은 반응이었다. 깜깜한 밤, 고요함을 깨고 여러 재료들을 다루며 반죽하는 모든 과정을 별생각 없이 했다. 틀에 담긴 반죽이 오븐 안으로 들어간 다음부터 설레었다.   

  

회사에선 매일 새로운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기에 힘들었다.  그런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느 영화에서 그려질 법한 정신없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머리는 흐트러지고 얼굴은 푸석푸석한 채 무릎 튀어나온 트레이닝복을 입는 엄마였다. 회사와 집에서의 나는 완전히 달랐다. 이 둘의 간격이 커지는 만큼 스트레스도 심했다. 그때 나를 숨 쉬게 해 주었던 게 빵이다. 일주일에 한두 번 새로운 빵에 도전했다. 모두가 잠들기 시작할 무렵 빵이 완성되면  나도 몰래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옆에는 빵틀과 반죽했던 그릇 등 설거지가 쌓였지만 괜찮았다.     

그때 함께 했던 작은 드롱기 오븐도 떠오른다. 코스트코에서 산 그건 5~6년 동안 내 베이킹의 친구가 되었다. 처음에는 작아서 빵이 잘 구워질까 신경 쓰였지만 그런대로 괜찮았다. 실패할 때도 많았고 예상외로 괜찮은 빵이 나오기도 했다. 어느 가을에는 점심시간에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을지로 입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홍대로 향했다. 브레드가든이라는 제빵 재료를 파는 전문 가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여러 베이킹 재료를 사기 위함이었다. “꼬르륵”하는 밥 달라는 몸의 소리도 외면할 만큼 열정적이었다. 어렴풋하지만 그 시절 내 마음을 받아준 작고 소박한 빵들이 스친다. 음식은 함께 나누었던 사람들과의 추억이 더해져 특별해진다. 내가 만든 빵도 그랬다. 내  삶의 고단함을 물렁물렁한 반죽이 받아주었고, 나중에는 부풀어 올라 달콤함과 고소함, 따뜻함까지 주었으니 더할 나위 없이 고맙다. 내일은 아이와 얼그레이 파운드케이크를 만들기로 약속했다. 

작가의 이전글 일상도 로제 떡볶이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