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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Feb 18. 2022

일상도 로제 떡볶이처럼


음식을 만들면서 여러 생각이 떠돈다. 그러다 멈추고 다시 바라보고 깊이 들어갈 볼 때도 있다. 거창하진 않지만, 문득 이런 느낌이 다가오는 날은 기분이 좋다. 먹고 끝나버리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든 한 그릇에서 의미를 발견할 때  일의 보람도 커진다.   

   

이건 매일 하는 일을 자각하고, 괜찮다고 잘하고 있다고 하는 나를 향한 칭찬 인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타인의 시선에서 멀리 떨어지려 하면 할수록 더 가까이 가고 있다는 징표다. 인정받으려는 마음에서 한 발짝씩 벗어나려 할 때도, 나만의 적정선이 작동한다. 최소한은 이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갈등은 힘든 날에도 아이들의 점심만큼은 온전한 밥을 차리게 한다.     


지난번 만들었던 떡볶이도 그랬다. 언제 먹어도 반갑다. 겨울의 떡볶이는 더 빛난다. 밖의 차가운 기온은 떡의 쫀득함을 살려준다. 즐겨 먹는 건 빨간 고추장에 떡의 찐득한 국물이 우러난 정통 떡볶이다. 이날은 다른 걸 먹기로 했다. 이름하여 로제 떡볶이. 어느 날 주문해서 처음 먹던 날, 낯익은 듯하면서도 매력적인 인상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기억에 남았다. 

   

떡볶이가 조금 달라졌다 하지만 역시 떡볶이다. 고추장 대신 토마토소스를 활용한 게 다를 뿐이다. 이국의 맛이다. 물이 끓으면 떡을 넣고 조금 부드러워지면 양념으로 스파게티 소스를 활용했다. 시판되는 것이라 누구에게나 외면당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맛의 균형을 유지한다. 여기에 우유를 조금 넣고 보글보글 끓여주었다. 마지막에는 설탕을 반 숟가락 정도를 더하니 적당히 달달한 맛의 떡볶이 완성이다.   

처음에는 먹을 생각이 없었다. 아이들만 차려줄 마음이었다.

“엄마같이 안 먹어요?”

“엄마 먹어봐 봐 정말 맛있는데.”

두 아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권하니 자리에 앉았다. 젓가락을 들어 떡을 하나 먹었다. 요즘 들어 반하게 되는 가래떡 맛이다. 너무 무르지도 않고, 촉촉한 듯하면서도 살짝 남아 있는 떡의 쫄깃한 맛. 한 젓가락을 다짐했는데 자꾸 손이 바빠진다. 떡볶이가 잠깐의 즐거움을 준다. 아이들은 점심에 무척이나 만족해하는 분위기다. 엄마의 마음이 작동해 감자를 채 썰어 튀긴 스틱을  올렸다.  여기에 집에 뒹구는 스팸까지 살짝 구웠다. 소박하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모양이다.

   

“로제 떡볶이?”

“그래 그걸로.”

이 몇 마디 안 되는 대화로 점심이 정해졌다. 전에도 크림이나 기름 떡볶이를 만든 적이 있지만, 로제는 처음이었다. 토마토의 은은한 붉은빛은 떡과도 잘 어울린다. 설날 즈음에 지인으로부터 받은 떡국 떡이 집에 있기에 그걸로 했는데 양념이 넓은 면에 걸쳐서 스며들었다. 지난주에도 떡볶이를 먹었다. 불과 며칠 지나 같은 메뉴가 올라와 지루할 법도 한데 소스가 바뀌니 오히려 새로운 요리를 맛보는 기분이다.      

간단하지만 알차게 점심을 마무리했다. 경험하지 않은 걸 실행해 가는 것도 이처럼 가벼우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음식은 맛이 없으면 안 먹으면 그만이고, 다음에 만들지 않거나 같은 종류의 것을 주문해서 제대로 된 것을 경험할 수도 있다. 물론 이런 것들이 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범위에서 가능하다는 점이 사람의 일과 구분된다.


2월이 지나고 있음을 알려주는 달력을 볼 때마다 자꾸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어느 작가의 말처럼 가장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할 수 있는 비교라는 단어를 살며시 꺼내 들 때도 종종 있다. ‘변화’를 희망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고 멈춰있다. 새로운 떡볶이에 도전했던 것처럼 아주 작은 전환점을 기다린다. 그러면서 떡볶이처럼 간단히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바란다. 여기에 무턱대고 덤벼볼 수 있는 용기까지 더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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