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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Feb 15. 2022

서점보다 책방

제주 어떤 바람, 섬타임즈


여행의 추억은 지루한 일상에 꽃이 되어 다가온다. 특히 공간에 대한 기억이 그러하다. 문득문득 오랫동안 떠오르는 건 작은 책방이다. 난 한눈에 책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을 좋아했다. 그곳이 작은 책방으로 불리는지도 모를 때였다. 문득 길을 가다 발견한 책방은 오래 기억되었다. 이곳은 사람들이 꽉 차 다니기조차 불편하거나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 없다. 대형서점의 왁자지껄함과는 거리가 있기에 살며시 들어가고 싶다. 때로는 문을 여는 일조차 나도 모르게 조심스럽다. 안에는 한두 명 책을 살피는 이가 있을까 말까 할 만큼 고요하다.  

   

문을 닫고 들어서는 순간 이때부터 모든 게 달라진다. 사람들이 없으니 절로 편해진다. 간혹 이런 고요가 불편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책 제목이라도 열심히 읽어낼 정도의 집중력이 생긴다. 몇 발자국만 옮겨도 새로운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장르에 상관없이 책 저마다의 이야기에 아주 짧은 시간일지라도 멈춰 서서 살핀다. 그러다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지갑을 연다. 지난 제주 여행에서도 그랬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섬 곳곳에 책방들이 늘어났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책을 살 수 있는 곳은 도시의  몇 개 안 되는 서점뿐이었다.   

   

도시에 있는 게 당연하다 여겼던 서점이 마을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섬 곳곳마다 책방이 생겨나 여행자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책방은 종종 내가 모르는 고향 땅의 곳곳을 경험할 기회를 준다. 제주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어릴 적부터 서귀포와 제주시 외에는 별로 가본 곳이 없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섬은 꽤 넓고, 특별한 이유가 아닌 이상 낯선 곳을 가는 게 그리 쉽지는 않다. 

어떤 바람 

엄마를 만난다는 이유로 아이들과 방학 때면 집으로 달려간다. 제주는 내게 고향이라는 큰 이름으로 불리지만 아이들에겐 가고 싶은 곳이 너무나 많은 매력적인 여행지다.  몇 년 전부터 책방은 단골 코스가 되었다. 매번 가보지 않았던 곳을 새로운 목적지로 추가한다. 서너 번 이상 갔던 위미의 라바북스는 익숙한 책방으로 떠올릴 정도. 올겨울에도 안덕면 사계리의 <어떤 바람>과 애월읍 소길리에 있는 <섬타임즈>를 들렸다. 

  

산방산이 든든히 지켜주는 듯한 안덕면 사계리의 도로변에서 책방 <어떤바람>을 만났다. 이곳은 아이가 가려했던 카페가 노 키즈존이라는 이유로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려 할 때 우리를 붙잡아 주었다. 작은 카페와 함께하고 있어 책방은 포근하고 정겨웠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카페 음료를 주문할 수 있는 곳이 나타나고 바로 옆으로 책들이 보인다. 제주의 이야기가 담긴 책부터 주인의 취향이 들어간 듯한 여러 책이 사람들을 기다린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안은 작지만, 짜임새 있는 구조였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는 앉아서 읽을 수 있는 긴 탁자가 놓였다. 단지 탁자에 먼저 앉은 이가 있다면  옆에 앉는 용기가 필요하다.      


섬타임즈는 애월읍의 시골 조용한 골목 안에 자리 잡았다. 처음에는 옛 시골집을 연상시키는 바로 옆 카페를 찾아간 길이었지만 주인이 일이 생겼다며 문을 닫았다. 카페에 이어 찾아가기로 했던 책방은 300미터 정도를 걸으니  눈에 들어왔다. 지나가는 이 하나 없기에 미리 알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날뻔했다. 다시 조용히 들어갔다.  이곳이 독특한 건  미술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유명 화가의 포스터부터 이름은 낯선 작가의 그림들이 액자 혹은 엽서로 전시되어 있었다. 책방과 함께하는 작은 갤러리였다. 난 이곳에서 책보다는 무화과 그림이 프린트된 작품 한 점이 계속 마음에 끌렸다. 책 대신 이것을 챙겼다.      

섬타임즈

그곳을 다녀온 지 시간을 계산해 보니 한 달이 지났다. 아직도 책방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잠시 머물렀던 때가 차례대로 그려진다. 난 책을 읽고 싶지만 잘 안 읽는 사람이다. 처음 시작과 달리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하는 게 습관처럼 굳어졌다. 읽다가 중간에서 머물러 버리는 책이 많다. 내가 작은 책방에 가는 건 책에 집중하고 싶은 작은 바람을 의식적으로 실현해 보이는 게 아닐까 싶다. 

 

어느 도시를 가도 제일 먼저 가고 싶은 건 작은 책방이다. 난 서점보다 책방이 좋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음이 가벼워지고, 여러 작가의 시선 속에 들어가 본다. 제주 섬의 맑고 차가운 바람과 어느 사이에 날리는 햇살 속에서 서점에 잠시 머물렀던 그때를 그려본다. 아득하고 손에 잡힐 것 같지만 멀어진 것 같은 그때의 풍경들. 봄이 한 발씩 다가온다. 유채꽃 사이로 초록 귤 과수원 한편에 있는 어느 책방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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