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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y 20. 2022

설렁설렁 메추리 알 장조림

나를 바라보게 한  어느 저녁 반찬



당연하다고 여겼던 일상이 고맙게 다가온다. 그저 매일 습관처럼 그렇게 했기에 몰랐다. 반복하는 일에는 자동으로 몸이 움직였다. 때로는 그것이 쉽지 않을 때도 있다는 걸 생각지 못했다. 얼마나 나의 하루를 촘촘히 살펴보았을까? 의외로 잘 몰랐던 게 많았다.   

법륜 스님의 말처럼 어떤 일이 모두 좋거나 나쁜 건 아닌 듯하다. 몸이 생각처럼 말을 듣지 않는 불편한 상황이니 그동안 내가 해 왔던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절감한다. 밥을 준비하는 일을 아름답다고 평하고 싶다. 식구들을 위해서 식사 때마다 음식을 만들었다. 이를 위해서 동네 마트나 노점을 기웃거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은 그동안이었다.      


아침에 운동을 나가지만 그 후로는 쉬고 싶다. 서둘러 집을 정리하고 장을 보고 오면 될 일이지만 행동이 뒤따라 주지 않는 요즘이었다. 그제야 아주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그동안 내가 해 왔던 그것은 간단치 않은 것이었다. 찬거리를 준비하러 나왔다. 오랜만이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이 되니 잘 만들어서 맛난 한 끼를 준비해야겠다는 마음이 살아난다.   

  

삼시세끼 집 반찬은 특별하지 않아서 의미 있다. 지겹다고 투덜대기도 하는 소박한 한 그릇에는 내가 살아가는 모습이 담겨있다. 과장하거나 어떤 수식어를 떠올리지 않아서 좋은 것. 쉽게 눈에 띄고 부담이 없는 오이며 콩나물, 얼갈이배추, 두부 등이 중심을 이룰 때가 많다. 부엌의 일에서 조금 멀어져 보니 그것이 보인다. 무얼 살까 고민하다 메추리 알을 골랐다. 예전 같으면 플라스틱 상자에 담긴 것을 가져왔지만 이번엔 편리함을 택했다. 알을 삶고 껍질을 벗기는 번거로움을 기꺼이 할 기운이 없다. 언젠가 껍질이 벗겨진 알을 사 왔을 때가 기억난다. 그동안 모르고 있던 신세계가 열리는 듯했다.


마트 진열대 앞에서 한참이나 망설였다. 어떤 방법으로 껍질을 벗겨내는지 알 수 없기에 발걸음을 돌렸다가 다시 돌아와 한 팩을 담았다. 내 손으로 모든 걸 해야 좋다는 그동안과는 달라지기로 했다. 내가 편한 것으로 택하기로 했다. 그래야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다. 번거롭다 여겼던 과정이 사라지니 다른 일에도 기웃거린다. 꽃을 살피고 빨래를 널며 천천히 장조림을 만들었다.      


메추리 알을 끓는 물에 알을 살짝 데치고 나서는  간장과 마른 고추, 대파 뿌리와 잎, 간장과 맛술, 물을 넣고 졸였다. 청양고추가 없어 빨간 고추로 대신했는데 괜찮은 매운맛이다. 팔팔 끓기까지는 강 불에 그다음부터는 중간 불에서 50분 정도를 졸였다. 국물이 절반 될 무렵에는 요리 당을 조금 넣었다. 가끔 가서 저었을 뿐이다. 왠지 오랜만에 장조림이 성공적일 것 같다. 간장 물을 머금은 메추리 알은 빛나는 탱탱한 갈색으로 변했다. 다른 때와 구별되는 건 요리하는 동안의 여유였다.      


장조림의 양이 상당하다. 큰 유리그릇과 저녁에 먹을 요량으로 접시에도 담았다. 식탁 위에 놓고 올려두니 부자가 된 기분이다. 몇 달 만에 만든 메추리 알 반찬이다. 시차를 두고 연근도 조렸다. 잠깐 망설이다 시장 가방에서 연근을 꺼냈다. 이왕 시작했으니 만들어 두면 며칠간 밑반찬 걱정은 없겠다 싶다. 손에 속도가 붙어 금세 껍질을 벗겨 내었다. 식초를 넣고 끓는 물에 10분 정도 데친 다음 메추리 알과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조금 꾸덕꾸덕한 맛을 위해 요리 당을 마지막에 넣었더니 쫄깃하다.   

한 시간에 두 가지를 만들었다. 이것만으로도 오늘의 내 일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불 앞에서 열심히 요리에 집중할 때보다 거리를 둘 때 훌륭한 맛이 탄생한다. 그건 아마 시간이 해결해 주는 일인 듯하다. 적당히 양념된 국물이 알 속으로 서서히 스며들어 가는 얼마 동안은 무심한 듯 오가다 잠깐 살피면 그만이다. 그 이상의 무엇을 하려 하거나 빨리 끝내려고 하면 꼭 탈이 난다. 양념과 주인공인 재료가 따로 놀 때가 많다. 언제나 무엇이든 부지런히 열심히 할 필요는 없다. 요즘처럼 설렁설렁 보내는 것도 그런대로 괜찮다. 그래야 감탄이 절로 나오는 메추리 알 장조림이 탄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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