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하지 않게 즐겁게
여름은 불편한 마음이 앞서는 계절이다. 더운 여름날 몸은 힘들다고 한다. 에어컨을 뒤로하고 집 밖을 나서는 일이 망설여진다. 겨울에 김장이 있다면 여름엔 청이다. 과일에 설탕을 넣고 얼마 동안을 두면 숨어있던 과즙들이 설탕과 뒤섞여 독특한 달콤함을 선물한다. 여기에 시원한 물이나 탄산수를 더하면 여름날의 스트레스를 잠시 잊게 해 준다.
자몽청 이야기가 나온 지 오래되었다. 겨울부터였다. 아이들과 간식을 두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큰 아이가 말을 꺼냈다.
“엄마, 자몽청 만들자. 그거 먹고 싶어.”
“알았어. 언제 만들어 볼게.”
답은 간단했지만 시간은 기약 없이 흘렀다. 마트에 갈 때면 가끔 자몽을 살폈지만 싱싱하지 않다는 이유로 당장 필요하지 않다며 들었던 봉지를 다시 진열대에 놓아두었다. 귀찮음이 솔직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제야 자몽 한 봉지를 샀다. 딱 4개가 들었다. 순간 한 봉지 더 장바구니에 넣을까 고민했지만 그건 왠지 부담스럽다. 집안일을 하던 중에 무심코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오늘 내로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양이 배로 늘어나면 청을 담그는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그러다 내 기억이 잠깐 멈췄거나 어디로 도망이라도 가버리면 냉장고에서 세월을 보내다 사라질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오후가 깊어지고 저녁을 생각할 무렵에 자몽 봉지를 꺼내 들었다. 껍질도 함께 넣고 싶었지만 상태가 별로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도 모르겠다. 이곳까지 오려면 엄청난 약과 여러 화학적인 용법이 사용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자몽에 살짝 칼집을 넣고 알맹이만 꺼냈다.
과육이 살짝 보일 즈음 다시 손이 바빠진다. 몇 번의 움직임만으로도 껍질을 분리할 수 있기에 힘이 덜 든다. 처음에는 괜히 시작했다며 투덜대다가도 볼에 자몽 알맹이가 쌓일수록 뿌듯하다. 투명하면서도 연한 붉은색이 매력적이다. 한 20여분이 지났을 즈음에 작업이 막을 내렸다.
저울을 꺼낼까 하다가 그냥 짐작으로 하기로 했다. 곰팡이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선 정확히 계량하는 게 맞지만 감을 믿기로 했다. 얼마 안 되는 양이니 한여름이 될 때까지 남아있을 가능성은 만무하다. 며칠 냉장고에 있다가 아이들이 찾기 시작하면 금세 빈 통을 드러낼 것이 분명하다. 적당히 해도 괜찮은 이유다.
자몽청은 작은 유리병 두 개와 또 하나의 병에 절반쯤 담겼다. 하얀 설탕과 어울린 자몽 알맹이는 묘한 빛을 낸다. 몇 시간이 지나면 함께 어우러져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겠지만 말이다. 더운 날 이것으로 음료를 만들어 먹으면 자몽의 씁쓸하면서도 깔끔한 뒷맛은 지친 몸과 마음을 순간에 식혀준다. 개인적으로 겨울에 따뜻하게 먹는 것도 여름 못지않게 훌륭하다.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다. 정말 후다닥 청을 만들었다. 겨울과 여름이 대비된다. 겨울이면 김장준비로 온 동네가 요란하다. 이에 비해 여름이 다가올 무렵엔 그런 움직임은 없다. 당연히 그리 요란을 떨지 않아도 소리 없이 집에서 청을 담그는 일은 가능하다. 한편으론 집 가까운 곳에 있는 프랜차이즈부터 동네 작은 카페까지 모두가 여러 음료를 팔고 있어 사서 마시기가 편하다. 더불어 청을 담그는 일은 한해를 책임질 김장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그러니 바쁜 이들에게는 힘든 일일 수도 있겠다 싶다.
봄이 막을 내릴 즈음 청을 준비하는 건 계절을 한 발짝 앞서 경험하는 일이다. 중심 재료가 과일이어서 가볍게 할 수 있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으니 물에 몇 번을 씻고 손질하는 일이 즐겁다. 살짝 피부에 향기가 묻어날 때면 절로 마음이 들썩인다. 딸기는 내일 해야지 하고 뒤로 미루다 결국은 철이 지났다. 뭔가 아쉽고 잠깐의 후회가 밀려올 즈음에 자몽을 생각했다. 사계절 만날 수 있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으려면 여름이 깊어지기 전에 해야 한다.
모든 음식은 손을 거쳐서 탄생한다. 매일 부엌에서 그 일을 하면서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가만히 있는 손이 아니라 무언가를 하는 쉼 없는 손의 운동이 이어져야 한다는 것. 여기에 당연히 따라붙는 건 부지런함과 정성이다. 진심을 담는다는 의식적인 행동보다는 그저 그려둔 요리를 위해 준비하는 순간이 대단하다. 불 앞에 서거나 복잡한 과정이 없는 청을 만드는 일에 노력이라는 단어가 과하다 싶었지만 다시 돌아보니 맞는 듯하다. 자몽을 사 오고 껍질을 벗겨서 설탕을 더하는 모든 과정은 거저 되는 게 아니었다. 매일 뭔가를 안 하고 있다고 나를 나무라던 내가 요즘은 부엌에서 오가는 나를 살피게 되었다. 늘 하고 있었다. 여름을 맞이하는 자몽청을 만들었으니 오늘의 일은 더 특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