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실 떡 다시 만나기

달콤 새콤 떡 볶음

by 오진미

냉장고 냉동실은 망각의 공간이 된다. 의식하고 있다고 잘 챙기지 않으면 오랫동안 그저 보관하게 되는 곳. 그중에서 떡이 그랬다. 입이 심심해서 찾지 않으면 몇 달 때로는 해를 넘길 때도 있다.


아이에게 엄마표 간식을 내놓은 지가 오래다. 무심코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지퍼백에 보관된 떡이 보인다. 남편이 석가탄신일에 절에 가서 받아온 절편이었다. 떡은 더운 날 탓인지 적당히 말라 버렸고 별생각 없이 냉장고에 두었다. 이제 이것으로 뭔가를 만들어야겠다.


딱딱해진 떡을 살아나게 하는 건 시간과 기름이었다. 끓는 물에 데치거나 전자레인지를 활용하는 것도 좋지만 약한 불에 팬을 올리고 떡을 무심코 두는 방식을 택했다. 무엇이든 억지스럽지 않아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떡을 요리하는 과정에서도 당연한 일이다. 떡은 기름에 살짝 구워지는 동안 살짝 부풀어 오르고 쫄깃한 식감이 살아나겠지만 그때를 위해서 이 순간을 잘 보내야 한다.


떡만으로는 아쉽다. 달달한 무엇을 첨가하면 누구든지 좋아할 맛이다. 케첩, 그리고 고추장과 다진 마늘에 요리 당을 넣어 소스를 만들었다. 팬에서 노릇노릇 구워진 떡은 심심하다고 뭔가를 기다리는 듯하다. 잘 섞은 양념을 부은 다음 주걱으로 고루 저었다. 언제나처럼 하나를 들었다.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한 매운맛에 윤기가 흘렀다. 쑥절편이 중심을 이룬 떡은 흰떡과 어울려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진한 쑥 기운은 한 여름 무성한 숲 같다.

막내가 단짝 친구와 방에서 노는 중이다. 수박과 함께 방금 만든 것을 건넸다. 아이들은 누구에게도 들키기 싫은지 문을 꼭 닫고 수다를 떤다.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했을지는 몇 분 있다가 그릇을 보면 알게 될 일이다. 아이들은 언제나처럼 한 시간을 놀고 헤어졌고 그릇은 텅텅 비었다. 간식은 합격이었나 보다.


떡은 집에 없는 것 같지만 항상 있다. 남편은 사무실에서 누군가가 답례품으로 떡을 돌리는 일이 있으면 남은 것을 챙겨 온다. 처음에는 뜻밖의 선물처럼 반가웠지만, 요즘은 별 마음이 없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얼마 안 되는 것을 아는 이들에게 주기도 그렇고 아이들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주를 이루는 것은 콩과 밤, 대추 등이 들어가는 영양 찰떡이다. 받자마자 비닐에 쌓여 냉동실로 직행이다. 언제 꺼낼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꼴이다.


그런데 이것이 가끔 이상하게도 마음의 평화를 준다. 모든 게 멈춰 버린 듯한 냉동실 문을 열고 떡을 넣을 때는 집에 정말 먹을 것이 없을 때 꺼내 먹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은행에 얼마간의 여윳돈을 맡긴 넉넉함과 비슷하다. 그렇다고 이것을 꺼내서 먹는 일은 그리 많지 않지만, 마음은 부자다. 무언가를 소유하는 일도 이런 감정이 일정 부분 작용하는 게 아닐까 싶다. 꼭 필요하지 않아도 두고 있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것. 그것이 떡이다.


떡 한 봉지를 꺼내니 냉동실에 조금 더 여유가 생겼다. 공간은 비어 있어야 살아 숨 쉰다. 떡은 딱딱한 얼음덩어리처럼 있으면 별 의미 없을 것이지만 간식으로 아이들을 찾았다. 새로움은 익숙한 것에서 고개를 돌려 조금 옆으로 기웃거려 보는 것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5월 우리 집을 찾았던 떡이 6월이 돼서야 제 얼굴을 보여주었다. 아이들 방에서 빈 접시를 가져오며 혼자 즐겁다. 잠들었던 내 오후를 깨워주는 건 내가 만든 떡볶음 한 접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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