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리, 바라보다

이때만 만나는 짧은 행복

by 오진미



아주 가끔 먹는 것보다 보는 일이 좋을 때가 있다. 언제까지나 고운 얼굴을 만날 수 없기에 강렬하다. 5월에서 6월의 어느 날까지만 반짝 만난다. 먼 나라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지 않아서 믿음이 간다. 푸른 공기의 청량함과 맑은 바람, 목이 빠질 만큼 기다리던 비를 가득 맞고 자랐고 열매를 맺었다. 체리의 계절이 돌아왔다. 나무에 달린 체리를 보았을 때 추억 속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들떴다.


담양 시골길을 걷고 있었다. 아주머니 한 분이 과수원에서 무언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잎이 무성한 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순간 혹시 체리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몇 년 전에 순창에서 나는 체리를 우연한 기회에 사서 먹게 되었다. 투명 상자에 담긴 체리는 말끔한 프레임이 돋보이는 한 폭의 그림이었다. 색은 노랑과 빨강, 다홍, 연두까지 여러 가지가 한 알에 모두가 담겨 있었다. 자연의 색이어서 더 예뻤다. 살짝 시큼하면서도 탱탱한 과육은 싱싱했다. 우리 땅에서 나는 체리와의 첫 만남이었다.

담양 체리

그 후 몇 년이 지났다. 그동안은 외국에서 물 건너온 체리만 가끔 장바구니에 담겨 집으로 왔다. 그때마다 수채화 물감이 만들어내는 여러 투명한 빛깔처럼 맑았던 우리 땅에서 난 체리가 생각났다.

“아주머니 혹시 이거 체리 나무 아니에요?”

일하고 있는 그분에게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나무에 달린 체리를 만나게 되어 반가웠고 신났다. 큰 잎을 가진 나무에 비해 열매는 작았다. 얼마가 지나면 붉게 나무를 물들이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나무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날 즈음이었다. 로컬 푸드에서 플라스틱 투명 팩에 담긴 체리를 보았다.

“체리가 나왔네.”

반가움에 혼잣말이 나왔다. 주저 없이 하나를 들었다. 십 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부터 체리가 궁금했다. 점심 준비를 위해 정신없이 서둘러 장을 보러 간 길이었고, 잘 살피지 않았기에 어떤 모습일지 살펴보고 싶었다. 집에 와서 식초를 몇 방울 떨어뜨려 씻고 나서는 접시에 체리를 옮겼다.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이거 담양에서 나는 체리야. 신기하지. 수입 아니니까 더 맛있을 거야.”

체리에 대한 내 설렘을 담아 아이들에게 설명했다. 아이들은 대충 흘려들었지만, 이 계절을 충분히 품은 체리가 남달랐다. 아이들은 열매에 달린 줄기 들어 입속으로 넣었다. 나도 함께 체리를 들여 맛을 음미했다. 쫀득하고 아삭하면서도 탱글탱글한 체리였다.


체리를 산 이유는 먹기 위해서였다. 솔직히 난 그것보다는 보는 일이 재미있다. 그대로 두어도 썩지 않는다면 사계절을 식탁 위에 두고서 바라만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체리가 담긴 접시는 마치 집안에 꽃을 화병에 꽂아 두고 오가며 감상하는 잔잔한 기쁨과 비슷하다. 체리의 껍질은 저마다 비슷하면서도 다르지만 서로가 어울려 새로운 색을 창조한다. 어느 것 하나 사랑스럽지 않은 게 없다. 자연이 주는 무한한 친절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큰아이에게 체리 사진을 부탁했다. 보고 싶은 날 체리가 집에 있기보다는 없을 때가 많은 것이 분명하다. 그때 앨범에서 꺼내어 체리를 만날 생각이다.

체리를 처음 만난 건 통조림이었다. 생크림 케이크가 대중화되던 시절에 종종 체리가 케이크의 장식으로 사용되었다. 생일이나 특별한 날 케이크를 앞에 둘 때면 통조림에 보관되어 있던 체리가 올랐고 그 맛이 궁금했다. 체리를 들어 입으로 가져가는 순간 얼굴이 찡그려졌다. 상상하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달아도 너무나 단맛, 그동안 알았던 달콤함과는 너무나 달랐다. 내가 사는 주변에서 자란 체리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체리가 주인공인 사진 한 장이 내게 든든한 힘이 되었던 날도 있었다. 힘들었던 날, 우울하고 누구에게도 고민을 얘기하기 싫고 꼭꼭 숨고 싶은 날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것만으로 위로가 되었다. 20대 시절 교보문고에서 산 어느 프랑스 사진가의 체리 사진이었다. 먹을 수 없지만, 사진에 담긴 체리의 영롱한 빛은 내겐 특효약이었다. 그때부터 체리가 뿜고 있는 에너지가 좋았다. 체리는 농부의 정성스러운 손길로 5월의 햇살을 맞으며 사람들을 만날 준비가 한창이었다. 아직은 멀었다 여겼는데 몇 주가 지나자 체리가 시장에 나왔다. 먹는 일에 언제나 진심인 내게 먹는 것도 아까워서 바라만 보고 싶은 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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