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없는 집밥의 비법은
누군가의 요리를 보고 있으면 눈이 번쩍 뜨인다. 주말에 아이들과 텔레비전을 보다가 <백패커>라는 요리 프로그램을 만났다. 화면에선 어느 암자의 점심을 준비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절이라는 특성 때문에 고기를 대신해 두부가 맹활약했다. 짜장면과 두부탕수가 나오자 사람들은 요리를 준비한 백종원의 탁월함에 대만족이었다.
같이 보던 아이들도 맛이 궁금하다고 난리다. 부도수표를 날리듯 언젠가 만들어 먹자고 얘기하고는 프로그램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떴다. 그 후 자연스레 텔레비전 속 음식에 대한 관심은 점차 사그라졌다. 이제 남은 건 내 몫이다. 어쩌다 마음이 동하면 한번 해 보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림의 떡으로 남는다.
이상하게도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있던 오후에 며칠 전 봤던 그것이 떠올라 자꾸 아른거렸다. 매일 비슷한 것들이 대강의 간격을 두고 식탁에 오르는 것 같아 마음이 쓰일 즈음이었다. 꼼꼼히 보지 않았으니 레시피가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 건 당연했다. 분명한 건 두부를 갖고서 만들었다는 것, 딱 거기까지다. 탕수육을 만들었던 경험을 살리기로 했다.
두부를 깍둑썰기해서 전분을 묻힌 다음 기름에 노릇하게 튀겼다. 집에 있는 오이와 사과, 양파를 넣고 소스를 준비했다. 물과 간장, 매실청, 식초, 요리당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케첩을 넣고 잘 저어주고는 보글보글 끓인다. 마지막에 전분 물을 넣어야 하는데 두부에 쓰느라 남은 게 없다. 그래도 케첩의 끈적함은 그럭저럭 괜찮은 농도를 만들어 주었다.
기름 속에서 샤워를 마친 두부는 ‘겉바속촉’이다. 아무 간하지 않은 두부만으로도 충분했다. 저녁을 먹기 직전 따뜻한 김 나는 소스를 뿌려주었다. 두부탕수를 만든 날은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아직이었다. 어서 굵은 빗줄기가 내 앞에 나타났으면 좋으련만 기약할 수 없는 답답함이 머무는 오후였다.
“아이고 허리야, 어깨야! 무릎도 아프고 온 몸이 쑤신다.”
한의원에 침을 맞으러 가는 일을 즐겼던 할머니 말이 생각났다. 나도 나이를 숨기긴 어려운지 이런 날은 몸이 왠지 더 불편하다.
그럼에도 두부를 사 오고 탕수를 만드는 일을 할 때는 정신이 맑았다. 또각또각 두부를 썰고 하나씩 차례로 이어진다. 아이들 앞에 한 접시를 내놓고서는 알게 되었다. 내가 음식을 만드는 일을 꾸준히 할 수 있었던 건 시작과 끝맺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라는 것. 부지런히 만들고 나서 소담스럽게 담아내면 어느새 그릇은 자연스럽게 비워진다. 때로는 더 먹고 싶어 아쉬워하는 이도 있다. 가능한 범위에서 먹거리를 준비한다는 생각 역시 밥을 준비하는 무게를 덜어준다.
새로운 걸 배우기 위해 처음에는 자료를 찾아보고 의욕적으로 덤비다가도 쉽게 지친다. 이에 반해 요리는 대부분 영상으로 접하거나 사진으로 알게 된다. 간단한 설명이 곁들여지기에 무언가를 고민해야 하는 일이 없다. 보는 것이 정답이다. 재료가 없다면 빼거나 다른 것을 더해도 큰 무리가 없다. 백종원 스타일의 두부탕수가 동기를 부여했지만 결말은 손가는대로 흘러갔다.
다른 사람의 요리를 볼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무수한 아이디어가 떠다닌다. 잠깐 머물렀다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날아가 버리는 풍선 같다. 그중에서 어느 하나를 만들기 위해 팬에 다진 마늘을 넣고 볶고 다른 재료를 더하는 순간은 내게 행운이 찾아오는 때다. 두부탕수의 다른 버전도 만들어 보고 싶다. 이 마음이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