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운 섬 그 풍경들 - 다시 가고픈 잔칫날
바람의 기운이 달라졌다. 시원하다. 카디건을 걸치면 포근한 정도의 적당한 온도다. 그리도 멀리하고 싶던 여름이 가을에게 손을 내밀기 시작했나 보다. 저녁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와서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이런저런 생각에 머물다 선명해진다. 잔칫날 풍경들이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어렵고 조심스러운 시절 때문인지 옛날 그 시간이 그립다.
#바다와 육지의 하모니 잔칫상
차 한 대가 달릴만한 길을 사이에 두고 친척들이 모여 살았다. 마을 초입 큰아버지 집에서 시작해서 한집 건너면 작은할아버지 또 한집을 건너면 큰 할아버지와 삼촌네가 나온다. 초등학교 2학년쯤이었을까. 큰 할아버지의 딸, 사촌 고모의 결혼식이 있었다. 결혼식 날이 정해지면 몇 달 전부터 어떤 음식을 대접할 것인지가 최대의 관심사다. 그러다 결혼식을 3일 정도 앞둔 날부터는 그야말로 본격적인 음식 준비가 시작된다.
고향 섬 제주에선 결혼식날을 잔칫날이라 불렀다. 이날을 위해 이틀 전부터 잔치를 벌였다. 하루하루가 결혼을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고 축하받는 자리인 동시에 반가운 만남의 자리였다. 집에서 손님을 맞이하기에 결혼을 앞둔 주인공들이 어떤 공간에서 성장했는지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었다. 손님을 위한 상차림은 자식을 결혼시키는 부모의 지극한 마음을 담아내었다.
누구네 집은 어떤 음식을 준비했는데 맛은 어떻다는 둥 잔치가 끝난 후에 동네에서 한동안 회자될 정도였다. 그러니 없던 것도 있게 만드는 나름의 노력이 잔칫상에 깃들었다. 바다와 육지의 모든 것을 한상에 펼쳐 놓았다. 제주 섬 맑은 바다에서 나는 성게와 소라, 싱싱한 생선은 물론이거니와 요즘 사랑받는 흑돼지와 온갖 야채들이 총출동되었다.
지금은 옛 잔치 풍경을 만나기 힘들다. 며칠간의 번거로운 일을 제 일처럼 맡아서 챙겨줄 사람들도 없거니와 편리함과 간소함을 쫓는 시대 분위기 역시 한몫하지 않았나 싶다. 이제는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식당으로 모인다.
#돼지고기와 하얀 쌀밥, 마을이 함께 하던 날
30여 년 전만 해도 집에서 모든 잔치를 꾸려갔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김치 담그기와 돼지고기 준비다. 양돈장 혹은 동네 이웃에서 잘 자란 돼지 몇 마리를 동네 어른들이 끌고 가서 잡아온다. 도축장에서 전문가의 손을 거치는 요즘의 기준에서 본다면 낯선 풍경이다.
잔칫날이면 밭에서 땅을 일구던 농부들이 손을 걷어붙였다. 경운기를 끌고 가서 과수원 혹은 인적 없는 깊은 숲 냇가에서 귤 담던 컨테이너에 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도막 내서 오면 집 한편에서 큰 가마솥을 걸어놓고 삶을 준비를 한다. 한쪽에선 건하게 취한 듯 보이는 이웃을 종종 만난다. 우왕좌왕 정신없는 시장통 같다. 신기하게도 그 속에서도 질서가 있다. 가까운 마을 사람들이 맡은 일을 하다 보면 무리 없이 시간이 흐른다.
돼지고기는 사람들의 마음 표현이었다. 가까운 친척이나 잘 대접해야 하는 손님이 오면 고기를 챙겨주는 일이 다반사였다. 어려웠던 시절, 고기 먹는 일이 힘들었기에 생겨난 풍습 아니었을까? 이 과정에 고기를 삶고 썰어주는 ‘도감’이라는 나이 지긋한 장인이 큰 역할을 했다. 담배 한 개비를 물고 일하던 이름 모를 도감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고기와 더불어 양대 산맥을 이뤘던 하얀 쌀밥도 잔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밥하는 일에 정통한 어른을 ‘솔밑할망’이라고 부르며 사람들이 좋아하는 밥맛 지키기에도 정성을 기울였다. 잔칫날 솔밑할망은 뜨거운 불 앞에서 땀을 흘리며 큰 나무주걱으로 큰 솥을 온 힘을 다해 저었다. 그래서인지 집에서 먹는 밥과는 다른 잔칫집만의 맛있는 밥맛이 기억난다. 밥알은 살아있고 씹을수록 달콤한 특별함이었다.
잔치의 성대한 막이 오르던 날 점심은 돼지뼈를 푹 고아내고 여러 가지 부속물을 적당히 넣은 몸국이 주인공이다. 그 시절 내가 맛을 알았을까 싶다. 싱싱한 고기로 했으니 적당히 풍겨오는 돼지 특유의 냄새가 싫지 않았던 건 분명하다. 바다 깊은 곳에서 자란 모자반과 메밀이 만나 묘한 맛을 낸다. 한 숟가락 국물과 고기를 먹으면 돼지의 어느 부위인지도 모를 만큼 묘한 맛이다. 그때만 먹을 수 있는 특별식이었다.
지금도 선명한 건 손님을 대하는 정성이다. 육해공 산해진미가 차려졌지만 돼지수육 접시를 장식했던 동그란 달걀전이 선명히 그려진다. 접시에 노란전을 깔고 나면 먹음직스러운 돼지 수육이 올려진다. 손님을 위한 깊은 마음씀이었다. 사람들은 고기 맛을 우선으로 여겼지만 난 팬케익 같은 둥근 모양의 단아한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단지 노란색만으로는 지겹다 느꼈던 탓인지 미나리 잎 하나를 위에 올려놓는 센스까지 더해졌다. 마치 봄을 연상시키는 장식이다. 고기보다 먼저 마음이 갔던 한 송이 꽃 같다.
잔치가 열리는 동안 친척집으로 출퇴근한다. 학교 가기 전 분주한 그곳에서 아침을 먹고 다시 집으로 와서는 잔칫집으로 향한다. 평소 왕래가 없었던 먼 친척에서부터 이름 모르는 사람들이 오가는 풍경이 재미있었다. 언제나 엄마를 찾으면 생기는 맛있는 음식들이 있었다.
# 동네 최고 스타일스트가 차린 신랑-신부상
결혼식의 하이라이트인 신랑 신부를 위한 음식은 특별했다. 누가 봐도 예쁘고 먹음직스럽게 상을 꾸밀 줄 아는 이들이 동네마다 있었다. 요즘으로 치면 푸드 스타일 리스트라는 명칭이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다. 한동네에서 잔치가 겹치는 일은 없었기에 이날만큼은 이분들을 초빙해서 상을 차리도록 했다. 큰 돔을 삼색으로 장식하고 온갖 과일과 떡, 스카치 에그 또한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삶은 달걀을 다진 쇠고기로 감싸고 빵가루를 입힌 다음 튀겨내는 영국 간식이다. 어떤 이유로 섬 잔치상에 오르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대표적인 메뉴였다. 소고기 대신 마련하기 편한 다진 돼지고기를 사용해 한 소쿠리를 만들었다.
3일간 잔치가 이어졌다. 첫날은 음식을 준비하고, 이튿날은 손님을 맞이하고 대접하는 날, 마지막 결혼식 날은 신랑과 신부를 맞이했다. 결혼식 당사자가 신부인 집은 이른 아침에 신랑상을 차렸다. 신랑이 주인공인 집은 예식이 끝난 다음 집에서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상을 장식했다. 그때 가장 하이라이트는 예나 지금이나 특별한 날을 축하하는 케이크였다. 지금은 생크림 케이크가 대부분이지만 버터크림이 대세이던 시절이었다. 하얀 크림 위에 분홍꽃과 초록잎의 장미꽃이 장식된 케이크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일 년을 보내도 단 한 번도 맛볼 수 없는 그것에 온 정신이 집중됐었다.
“엄마 나 저 케이크 먹고 싶다.”
“엄마 케이크 좀 얻어 주면 안 돼?”
엄마를 졸라 보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날 잔치의 안주인만이 상에 오른 케이크를 어찌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었다. 신랑과 신부가 행복한 얼굴로 사진을 찍고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지나면 가까운 친척끼리 나눠먹는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시간이 지나고 집에서 뒹굴 거리던 내게 엄마가 뭔가를 비닐에 들고 왔다. 이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것이었지만 단번에 무엇인지 직감했다.
“와아! 케이크다.”
손가락으로 크림을 입에 대어 본다. 달달하면서도 부드럽다. 세상에 이런 맛이 있을까 싶다.
그렇게 정신없던 잔치가 끝나면 어린 마음에도 허탈했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싫었다. 언제부턴가 자취를 감춰버린 잔칫날, 다시 그 속으로 가고 싶다. 맛난 음식과 적당히 흥분된 분위기, 실수도 눈감아 주던 기분 좋았던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