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끼로 미안함을 전합니다
아침을 먹었다. 이제 내게 또 하나의 숙제가 남았다. 3시간을 훌쩍 넘긴 즈음에 해야 하는 일이다. 매일 해도 그때마다 새롭다. 점심때 무엇을 먹을까에 대한 고민이다. 아침은 짧은 시간에 음식을 차려야 하고, 저녁은 학원가는 아이와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다. 그래서 점심은 하루 중 가장 편안히 식사하는 시간이다.
내가 딸아이 마음에 불을 질렀다. 언제나 그러하듯 후다닥 아침을 먹고, 온라인 수업 준비를 하다가 요즘 이슈인 의사 파업 얘기가 나왔다. 방에 있던 아이가 갑자기 나오더니 말을 거든다.
“엄마 우리나라에도 공공의대가 있었던 것 같던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힘이 가득 들어간 목소리로 아이를 나무랐다. 정확하지도 않은 사실을 확인도 없이 사실처럼 말한다고 폭풍 훈계를 시작했다. 요즘 들어 자극적으로 쏟아내는 정보들을 모두 그대로 수용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절대 그럴 일이 아니었다. 아이가 갑자기 눈이 빨개지더니 눈물을 뚝뚝 흘린다.
“엄마 난 그게 아니라, 그런 내용을 본 것 같다고 말하는 거예요. 단지 그것뿐인데...”
남편도 옆에서 거든다. 내가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며,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정확하게 알면 끝날 일이라며 노트북을 켜고 검색한다. 물론 아직 국내에 공공의대가 설립된 적은 없었지만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한바탕 훑고 지나간 태풍 마이삭이 우리 집에 휘몰아쳤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보니 모두가 나의 어리석음이었다. 감정의 꼬리를 잡지 못하고, 그동안 못마땅하게 여겼던 아이의 행동을 그냥 뒤집어 씌워버렸던 거다. 여느 때 같으면 그냥 지나갈 일이었다. 그런데 이토록 흥분해서 말을 쏟아낸 나를 돌아보았다. 부끄러웠다. 엄마의 감정을 아이에게 내던졌다.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싶다. 십 여분 동안 벌어진 상황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남편이 언제나 그러하듯 조분조분 설명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아이는 그냥 내가 뒤흔든 나무 아래서 아무 대책 없이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무서웠으리라.
그렇게 아침을 보내고 나니 몸의 기운이 증발해 버린 듯했다. 집안 분위기도 찬 바람 쌩쌩 불 듯 냉랭했다. 당장 수업이 시작되는 시간이라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기록한다. 아이의 마음은 널뛰기하듯 불편했을 거라 짐작해 본다. 시계가 10시 반을 지난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으니 손을 놓고 있을 시간이 없다. 점심을 준비해야 했다. 어색함을 무릅쓰고 아이에게 물었다.
“점심에 먹고 싶은 거 없어?”
“엄마 리조또 어때요? 오랜만에 생각나서요.”
아무 생각 없이 알겠다고 대답하고 방을 나왔다.
아이에게 사과하지 못했다. 아직 마음이 크지 못한 엄마 때문에 아이가 겪었을 아픔에 잠깐 먹먹했다. 점심을 해야겠다. 재료를 준비해 놓은 게 없으니 있는 것만 모아놓고 만들어 보기로 했다. 말려놓은 표고버섯을 꺼내어 물에 불렸다. 고기나 새우, 조개 등 평소에 리조또 재료 대신 모든 걸 버섯에 맡기기로 했다. 그냥 쌀보다는 입에 씹히는 맛이 좋은 보리쌀을 덜어내 한번 씻고 물에 불려두었다. 다시마 두 조각을 볼에 담고 육수도 준비했다.
11시 반을 넘어가는 시간에 마늘을 편으로 썰었다. 적당히 살 오른 마늘은 가능한 많이 넣는 게 좋다. 여기에 버섯도 적당히 채 썰었다.
-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적당히 열이 오르면 마늘을 놓고 1~2분 정도 볶는다. 표고버섯도 함께 넣어 마늘향이 함께 배도록 한다.
- 불려놓은 보리쌀이 등장할 차례다. 팬에 부은 다음 잘 저어둔다.
-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나면 다시마 육수를 넣고 뚜껑을 닫은 채 중약 불로 10분 정도 둔다. 잠깐씩 저어주면 들러붙는 것도 막을 수 있고 골고루 잘 익는다.
- 다시 남은 육수를 붓고는 저어서 10분 더 기다린다. 보리쌀을 먹어보고, 적당히 잘 익고 있는지 확인한다.
- 마지막으로 집에 있는 우유를 취향에 따라 붓는다. 난 반 컵 정도를 넣었다. 우유의 고소함이 보리쌀에 적당히 스며들 정도면 된다.
- 여기에 생크림을 넣으면 좋지만 없는 관계로 먹다 남은 크림 스파게티 소스를 활용했다. 밥 숟가락으로 다섯 스푼 넣었다.
제법 리조또 모양을 갖춰간다.
온 집안에 부드러운 크림 향과 고소함이 감돈다. 아이들이 반응하기 시작한다. 소금을 조금 넣고 휘휘 젓고는 그릇에 담으면 끝이다. 소박한 리조또가 그런대로 괜찮은 맛이다.
음식을 차려놓고 아이 얼굴을 보았다. 배가 고팠는지 제법 맛있게 먹는다.
“엄마 맛있어요. 버섯이 고기 맛인데.”
먼저 말을 건넨다. 고마운 마음이다. 그렇게 점심 한 끼를 해결했다. 처음에 의욕에 불타서 요리를 하다가도 정리할 즈음이면 버거울 때가 종종 있다. 아침부터 혼자 힘을 뺐으니 더 그러했다. 마음 한구석에 담아놓은 그것이 여러 생각에 잠기게 했다.
엄마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까? 나를 돌아본다. 리조또 같이 언제나 부드러운 엄마면 좋으련만… 보리쌀 같이 톡톡 터지는 유쾌함과 즐거움을 가진 엄마, 조금은 무던한 듯 언제나 한결같은, 표고버섯 같은 엄마이고 싶다. 리조또를 먹으며 아이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누구의 말처럼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하는 날들이다. 아이들이 부모의 감정에 스며들어 불안하지 않도록 해야 할 일이다. 꼭 붙들고 있어야 할 마음이다. 한참이 지나서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