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은 시간으로 만들어진다
금요일이면 만났다. 시곗바늘이 3시 하고도 50분을 넘어갈 즈음 문을 ‘똑똑’ 두드린다. 수줍은 미소를 건네며 인사한다. 일주일마다 보는 얼굴이다. 1년을 그렇게 보냈다. 한주라도 안 보면 섭섭할 정도로 정이 쌓여갔다. ‘심심 서당(心深書堂)’에서 그림책을 읽고 얘기를 나누는 친구들이다. 초등학교 2~3학년 남매와 우리 집 막내가 함께 하는 자리다. 아이가 크기 전에 책을 함께 읽는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 시작된 일이다.
5월 첫 만남의 긴장은 아직도 생생하다. 마음이 콩콩 뛰면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마저 들었다. 아이들은 유치원을 다녔다. 엄마의 품이 세상의 모든 것이던 때다. 첫날부터 쭈욱 엄마와 함께 우리 집을 찾았다. 내가 먼저 시작한 일이니 물러설 곳이 없었다. 천천히 책을 읽었다. 애들 역시 첫 만남이 어색한지 책에 집중하지 못하는 눈치다. 손을 꼼지락 대거나 엄마 손을 만지작거린다. 그럼에도 책은 금세 다 읽었고 아이들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졌다.
“오늘 읽은 책에서 기억나는 장면 말해줄래요?”
아이들이 얼음 하듯 갑자기 조용하다. 멀뚱히 서로의 눈을 쳐다본다. 예상은 했지만 대략 난감하다. 이 분위기를 전화시킬 무엇이 필요했다. 내가 나서기로 했다.
“그림이 기분 좋게 하지. 내가 이런 집에 살고 싶다.”
그림책을 오랜만에 정독했고 다시 또 읽으니 그림이며 이야기가 천천히 내게 말을 거는 느낌이다.
그렇게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보냈다. 애들은 초등학생이 됐다. 한 달에 네 번, 쉼 없이 만났다. 말을 아끼고 아끼던 아이는 서 너 달이 지날 무렵부터 단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또 그렇게 몇 달을 보내고 1년이 지났다. 이제는 문장으로 말한다.
“저는 욕심쟁이 딸기 아저씨가 그래도 귀여운 것 같아요. 나중에는 이웃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법도 알고요.”
‘욕심쟁이 딸기 아저씨’라는 책을 읽고는 자신의 마음을 분명히 표현한다. 가랑비에 옷 젖듯 아이는 커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손을 번쩍 든다. 세 명의 아이들의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를 내게 들이민다. 제발 나를 뽑아주세요 하는 간절한 눈빛이다. 그러다 작은 갈등이 생긴다. 언제나 먼저 멋있게 말하고 싶은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이다. 이때는 어쩔 수 없이 반강제적으로 순번을 정했다. 오늘은 오른쪽부터 다음 시간에는 왼쪽부터다. 모든 게 과정이고 배움이 되는 순간이다.
처음에는 소박하게 시작했다. 집에서 책을 읽지만 함께 모여서 공유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럼에도 흔들리지 말아야겠다고 여겼던 건 마음을 나누는 일이었다. 모임 이름을 심심서당이라고 한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바라보는 게 전부가 아님을 그림책을 통해서 경험하게 하는 일이다. 다른 생각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몸에 익혀주고 싶었다. 더불어 책 속 이야기로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일상을 돌아보고 그림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을 뜨게 해주고 싶었다. 물론 아이들은 부지불식간에 말하지 않아도 알아가는 게 신통할 따름이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림을 자기만의 색깔로 바라볼 줄 아는 게 아이들이었다.
작가들의 기발한 상상력이 더해진 그림책은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뻔한 정답을 내놓기도 하고 때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기발한 얘기도 오갔다. 일 년을 보내고 2년이란 시간을 달려갈 때 조금 힘들어졌다. 내 의지로 시작한 일이었음에도 매번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고 몇 번을 읽고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활동하는 과정이 버거웠다. 어느 금요일은 애들이 등교 후 침대에 가만히 누웠다. 심심서당 준비를 하나도 하지 않은 날이라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어야 했지만 싫었다.
“오늘은 몸이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하루 쉴까?”
“그냥 집에 있는 책으로 대충 하고 말까.”
혼잣말을 몇 번이고 하다 말았다. 그렇게 30분을 뒤척거렸을까. 쉰다는 얘기를 듣고 실망할 아이들의 얼굴이 그려졌다. 벌떡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선생님 오늘은 무슨 책 읽어요? 지난번에 읽은 책 수업시간에도 나왔어요.”
처음에는 아줌마라고 하던 호칭도 어느 순간에 선생님이 되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한 두 달이 지나니 애들이 선생님하고 부른다. 처음 그 소리를 듣던 날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함께 책을 읽는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으로 불러 주니 책임감도 커졌다. 같은 아파트에 살기에 멀리서 내 얼굴이 보이면 달려와 인사한다. 그러다 지난 2월 코로나 소식이 심심찮게 들렸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연락을 했다.
“우리 심심서당 어떡하죠. 코로나가 신경 쓰여서요.”
“저도 좀 마음에 걸렸어요. 우리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쉬면 어떨까요?”
며칠 망설임 끝에 연락했는데 같이하는 엄마도 고민이 많았나 보다. 이렇게 긴 방학이 시작됐다. 그때만 해도 봄이면, 여름이면 끝날 거라고 여겼다.
“안녕하세요.”
심심서당 귀염둥이 하은이다. 코로나로 오랜만에 등교했던 날이다. 하교 후 동네 정자에서 막내와 놀고 있었다. 있는 힘을 다해 방방 뛰다가 그네를 타다가 애들은 밖에서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다. 그러다 집으로 갈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 우리 언제 만나요? 다시 만날 수 있죠? 코로나 괜찮아지면 심심서당에서 다시 책 읽는 거죠?”
아이의 말이 ‘쿵’하고 가슴에 꽂힌다. 그래 우리는 만났어야 했는데 그동안 못 만나고 있구나. 많이 기다렸구나 하는 생각에 미안해졌다.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약속’을 마음속 깊이 잊지 않고 있음에 고마웠다. 아이들과 이렇게 하는 거야 하고 약속이라는 단어를 꺼내놓지 않았었다. 당연히 금요일이면 만났고 그렇게 사계절을 보내다 보니 습관처럼 굳어졌다. 약속은 시간이 겹겹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