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첫날의 특별한 점심
시간이 약이다. 어제까지 쨍쨍하고 습하던 날은 오늘은 온데간데없다. 잠결에 빗소리가 들린다. 뚝 뚝 작은 리듬을 타고 새벽부터 날 깨운다. 무더운 여름이 이제 작별 인사를 하려나? 태풍 소식에 귀를 쫑긋하면서도 하루를 보낼 생각에 마음이 복잡하다. 작은 우리 집이 학교요 도서관이요 회사가 되는 첫날이다. 애들이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듣기 시작한 건 올 초부터였으니 한참이나 지났다. 처음에는 낯설고 어떻게 하나 마음이 답답했지만 혼란스럽던 시기가 지나니 이젠 자연스럽다. 어쩌다 학교 가는 일이 어색할 정도다.
다시 변화가 찾아왔다. 하숙생처럼 오가던 남편의 재택근무가 시작됐다. 데스크톱과 노트북, 막내의 교육방송이 동시에 돌아간다. 이곳저곳에서 분주하다. 나는 빨래를 끝내고 탭북을 켰다. 뉴스를 검색하고 메일을 확인하고 매일 반복되는 일과다. 그러던 중 오늘부터 점심에 새로운 온 손님, 남편이 생각났다. 그동안은 애들 위주로 차리던 점심이었다. 어제는 삶은 계란과 군만두가 함께 하는 떡볶이였다. 언제나 아이들은 엄지 척이다.
입사 후 처음으로 집에서 일을 하는 남자. 그를 위한 한 끼를 준비해야겠다. 지난주 온라인으로 주문한 것 중에 닭 한 마리가 있다. 아침부터 미리 손질해 두었다. 농사일에 언제나 바빴던 부모님이 생각났다. 지금이야 과학영농이니 기계 화니 상황이 그래도 예전보다 좋아졌지만 농부의 노동이 농사의 전부이던 시절이 있었다. 농부에게는 휴일이 없다. 비가 오나 눈이 내리는 한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몸을 움직여야 했다. 이마저도 하우스라는 새로운 농사법이 생겨나고 기후가 변덕스러워지면서 사계절 흙과 함께 해야 했다.
# 마당을 뛰놀던 녀석, 밥상에 오른 날
아무리 좋은 기계도 쉼 없이 돌리게 되면 고장 나기 마련이다. 새벽부터 늦게까지 일해야 했던 부모님은 언제나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며 힘들어했다. 그럴 때마다 손쉽게 몸을 위한 보양식으로 닭고기를 먹었다. 사방이 자연이니 암탉이 알을 품으면 자연스럽게 병아리가 나왔다. 과수원을 휘젓고 돌아다니던 닭은 얼마를 지나면 금세 커갔다. 아침이면 으레 수탉이 꼬끼오 소리를 내며 울었다. 이 집 저 집에서 합창을 한다. 누가 맞춰놓지 않아도 울리는 자동 알람이다.
어느 날은 밭에 다녀오신 아버지가 닭들이 어디 갔냐고 묻는다. 오늘이 그날이다. 닭이 우리를 위한 기꺼이 몸을 내주어야 하는 시간이다. 그렇다고 날쌘 그들이 가만히 붙잡힐 리가 만무하다.
“꼬오꼬 꼬꼬 꼬꼬댁 꼬꼬꼬”
몇 차례 닭들이 거친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아버지의 노련한 솜씨로 만든 그물에 걸려들었다. 물을 끓이고 닭을 손질한 다음 큰 솥에 들어간다.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푹 익은 맛있는 백숙이 되었다. 집 뒤 우영은 물론 과수원에 있는 깻잎이며 상추, 콩 잎, 풋고추가 양푼에 가득 담겼다. 그늘진 평상 위를 시원한 바람이 지난다. 한여름 무더위를 식혀주는 곳으로 최고의 피서지다. 양은 둥근 밥상 위에 백숙과 열무김치를 올려놓으면 저녁 준비 끝이다. 닭고기를 채소에 올려 쌈장을 한 젓가락 더했다.
“아이 맛있겠다. 열심히 뛰어다닌 녀석이라 살이 쫄깃해. 이제야 몸이 좀 살 것 같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무 근심 없는 가장 편안한 미소였다.
# 수탉과 오일장
닭에 대한 추억을 떠올려 보니 오일장이 생각난다. 장은 시골 사람들의 온갖 살림살이를 채워주는 중요한 공간이면서 농사지은 것들을 내다 팔아 생활의 여유를 갖다 줬던 고마운 곳이었다. 엄마와 함께 버스를 타고 오일장을 찾았다. 평소와 다르게 우리와 함께 한 친구가 있었다. 적당히 살 오르고 늠름해 보이는 수탉을 바구니에 놓고 보자기로 도망갈까 단단히 묶었다. 20여분을 가는 버스 안에서도 꽥 꽥 소리를 내기도 하고 발버둥 친다. 그러다 장에 도착하자마자 닭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엄마는 얼마를 주고 닭을 팔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수탉은 특별한 의식에서 사용됐던 것 같다. 그때만 해도 동네에서는 심심찮게 무당들이 굿하는 소리가 들리던 때였다. 그때마다 등장하는 게 수탉이었다. 집을 지을 때 기둥을 세우고 보를 얹은 다음 마룻대를 올리는 의식인 상량식에도 멋진 수탉이 있었다. 엄마는 수탉을 그렇게 팔고 다시 살이 오른 암탉 두 마리를 샀다. 그날이 복날이었다.
#아빠를 위한 닭다리
11시를 훌쩍 넘기는 시간이다. 마음이 바빠진다. 물에 불려 두었던 마늘을 부지런히 깠다. 그러면 끝이다. 깔끔하면서도 진한 국물을 만들기 위해 마트에서 파는 삼계탕용 모둠 팩을 샀다. 당귀며 오갈피, 엄나무, 황기, 당귀 등 다양한 재료가 주머니에 들어가 있으니 각 각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다. 편히 즐겁게 만들어야 음식도 맛있다는 내 평소 생각 때문이다. 시간을 단축하기에는 최대 도구인 압력밥솥도 꺼냈다. 평소에는 큰 냄비에 한 시간은 족히 푹 끓이지만 여러 상황을 고려해 오늘은 속전속결이다. 닭이 잠길 정도로 적당히 물을부은 다음 삼계탕 재료 팩과 마늘, 집에 있는 감자와 대추 몇 알을 넣고 뚜껑을 닫았다. 처음에는 센 불로 끓이니 솥에서 딸랑딸랑 익어가고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러기를 15분 정도 중간 불에서 끓이면 끝이다. 김이 빠지기를 기다리고 뚜껑을 열었다. 적당히 한약 냄새가 올라오면서 닭의 고소한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닭을 옹기 접시에 담았다. 불려둔 찹쌀을 솥에 넣어 죽을 만든다.
“엄마 이 무슨 냄새야?”
“와아 닭고기다. 아빠가 있으니 뭔가 다르다. 완전 특별식이야.”
식탁에서 언제나 고기는 진리라는 생각이 통하는 날이다. 아이들 얼굴이 환해진다. 닭다리는 예나 지금이나 존중을 표하는 음식이다. 큰 아이가 아빠에게 건넨다.
뭔가에 홀린 듯 정신없이 먹는다. 손과 입이 바빠진다. 온 가족이 휴일도 아닌 평일에 함께 점심을 먹는 일이 얼마나 될까. 내일을 기약하기보다 오늘을 살고 싶은 요즘이다. 만원도 안 되는 가격의 닭 한 마리를 놓고 온 가족이 웃을 수 있으니 먹고사는 일의 위대함을 발견한다. 아이들에게 지금의 시간이 어떤 추억으로 기억될까. 나를 이루는 대부분은 녹록지 않았지만 부모님의 그늘 아래서 지냈던 시간이다. 요즘 그때가 절절하게 다가온다. 아이들이 죽을 달라고 한다. 닭백숙의 마무리는 역시 죽 한 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