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감이 광목에 물들던 시간
몸이 계절을 알아본다. 긴바지를 챙겨 입었다. 색은 바래 붉은 갈색에서 희뿌연 회색인가. 아니면 흐린 하늘과 땅이 만나는 어디쯤에 있는 색이다. 내가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갈옷이다.
5년 전 어느 여름이었다. 여름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제주 친정집에 갔다. 언제나 그러하듯 엄마는 갈옷을 입고 새벽부터 부지런히 밭을 다녀왔다. 낡은 듯하면서도 언제나 그대로인 옷이 신기했다.
“엄마 갈옷 좋아? 매일 보면 엄마 일하러 갈 때 그것만 입더라.”
“여름에 이 옷만 한 게 없지. 땀 냄새도 안 나고 몸에 달라붙는 일도 없고 웬만해선 해지지도 않고 얼마나 튼튼한지 몰라.”
옷장에서 뭣을 열심히 찾더니 바지 하나를 던져 주신다.
“입어봐라. 입어야 얼마나 좋은지 알지.”
무심코 입었다. 엄마와 수년을 함께 했던 바지라 적당히 부드럽고 몸을 살짝 감싸주는 느낌이 참 좋았다.
갈옷은 여름은 물론이거니와 사계절 사랑받는 아이템이다. 아주 추운 겨울만 멀리할 뿐이다. 복잡해진 마음을 정리하며 스르르 편안하게 잠을 청할 때도 이 옷이 도움을 준다. 좀 과장해서 몸에 닿는 감촉이 나를 위로해 준다. 집에서 책을 읽거나 일할 때도 걸리적거리지 않는다. 적당한 온도로 몸을 보호해 주는 편안함이 특별하다.
처음엔 입기가 어색했다. 마을 어귀에서 만났던 동네 할머니 모습도 떠오르고 시골 아낙이 된 것 같은 생각에 잠깐 머뭇거렸다. 어린아이였던 시절 갈옷 입은 엄마의 모습이 부끄러웠던 적이 있다. 뭔가 세련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농부와 주부로 멀티 플레이어가 돼야 했던 엄마에게는 최고의 선택이었는데 말이다.
몇 년째 갈옷과 친구가 되었다. 오늘은 마음이 이상하다. 갑자기 엄마가 떠오르면서 2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생각났다. 엄마는 참 따뜻한 분이다. 먼저 베풀 줄 알고 남에게 주는 것은 무엇이 됐던 제일 좋은 것으로 마음을 다한다. 파인애플과 한라봉을 첫 수확하던 날에도 맛있는 것들로 친척은 물론 이웃과 나눴다. 이런 엄마니 시어머니인 할머니를 어떻게 대했는지는 쉽게 가늠이 된다. 언제나 한결같았다. 남편의 어머니이기에 며느리로서 도리를 극진히 했다.
엄마와 할머니는 편하지 않은 관계였다. 할머니는 오히려 어머니의 삶 속에서 가장 힘든 것들을 던져 준 분이기도 했다. 4남매를 키우고 몸이 약한 남편의 건강을 챙기며 농사짓기도 벅찬 삶이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할머니의 갈옷 몸빼를 종종 만들어 드렸다.
시간과 정성이 쌓여야 가능한 일이었다. 갈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들이는 일이 우선이다. 6월부터 8월까지 높은 곳에 달린 땡감을 장대로 따서 감을 절구로 빻고 그 물을 광목에 적셔 염색한다. 하루에 두 어 번씩 물에 적셔 햇살 잘 비추고 바람 잘 드는 곳에서 말리고 다시 적시는 작업을 수차례 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이 과정을 게을리하면 고운 빛의 갈옷을 만나기 힘들다. 갈옷은 이런 끊임없는 노동의 결과다.
어머니는 그 천으로 할머니 몸빼를 만들었다. 언제나 손이 모자라는 농사일에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낡은 재봉틀에 앉았다. 시간을 담은 나무자로 본을 떠서 바지를 완성했다. 할머니는 바지를 받아 들고도 엄마에게 고맙다는 한마디가 없었다. 언제나 그러하듯 아무 소리 없이 무덤덤하게 받아 들뿐이었다. 사춘기 중학생이 되자 이런 할머니를 이해하기 어려워 엄마에게 자꾸 불평했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다. 며느리인 엄마의 역할을 할 뿐이라는 것. 지금도 그 깊은 마음을 헤아리기 쉽지 않다.
“엄마, 힘든데 왜 그래요. 엄마도 쉬고 해야지. 할머니가 알아서 할 수 있잖아.”
“얘는 할머니니까 우리가 해드려야지. 누가 그러겠니.”
칭찬에는 인색했던 할머니였다. 엄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를 대하는 일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면 제일 먼저 드리고, 시장에 가서도 비녀가 보이면 말하지 않아도 챙겼다.
“생의 마지막 여정을 보내는 할머니를 보니 마음이 아프다. 누구에게 안 좋은 소리 한번 못하는 고운 분이신데…”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보다도 한 여성으로 할머니의 삶을 안타까워했다.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를 만나고 온 어느 날 엄마의 말에 어찌 저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싶었다. 지아비를 먼저 보내고 혼자 살아가는 일이 버거운 엄마였다.
이제 내가 엄마의 정성이 만들어낸 갈옷을 입는다. 무심코 거닐다가도 문득 스친다. 내가 입고 있는 갈옷은 엄마의 삶이 깃들어 있다. 이 옷은 조금이라도 일을 더 해야겠다고 과수원을 누비던 엄마와 함께였다. 때로는 비가 내리는 날 밭에서 집으로 걸어오는 엄마의 느린 걸음을 묵묵히 받아주던 친구다. 가끔 갈옷을 입고 있으면 엄마의 향이 잔잔히 퍼져가는 느낌이다. 우리 막내가 내 곁에서 살짝 피부를 쓸어가며 품으로 안기는 기분이다.
2년 전 초가을 택배를 받았다. 여러 가지 푸성귀가 가득한 상자 아래에 비닐로 싸인 무엇이 있었다. 열어보니 빳빳하기가 마른 다시마같이 느껴지는 갈옷이었다. 붉은 벽돌색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빛나는 갈색이었다. 엄마가 고이 아껴둔 감물 든 광목을 꺼내 만들었나 보다.
“엄마 갈옷 새로 만든 것 같던데 감물 들였어요?”
“네가 좋아하니 작년에 물들인 천이 있길래 만들었다. 잘 입어라.”
땀이 옷 속으로 스며들 때 갈옷을 입으면 더위가 사라진다. 익지 않은 떫은 감이 안고 있는 타닌 성분이 광목에 스며들어 옷을 뻣뻣하게 한다. 바람이 바지 사이 공간을 오가며 춤춘다. 자연이 선물해 준 옷이다.
엄마는 새벽일을 마치고 와서는 물들인 옷감이 고운 색이 배도록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으리라. 햇빛이 옥상 정중앙에 자리를 잡을 때면 아픈 다리를 이끌고 계단을 올라 갈천을 말리고 거두기를 반복하며 인내의 과정이 만들어 낸 옷이다. 할머니를 위해 만들었고 멀리 시집간 딸이 편안하게 살기를 기원하며 옷을 지었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갈옷에 엄마의 생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태풍이 지났다는데 피해는 없는지 전화를 해야겠다. 엄마의 목소리를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