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턴트와 집밥 사이

엄마표 점심에서 탈출을 고민하던 날

by 오진미


난 밥 잘해주는 엄마다. 알라딘의 요술램프 지니처럼 먹고 싶은 것을 말하면 어느새 뚝딱하고 차려낸다. 물론 아주 어렵거나 재료를 구하기 어려운 것들은 나중에 할 것들로 예약해 두지만 말이다. 언제나 그러하듯 엄마의 음식은 집밥의 전형이다. 해가 뜨기도 전에 엄마는 김을 사각으로 작게 자르고 야채와 어우러진 주먹밥을 싸놓고 풀 베러 갔다. 어느 날은 잡채밥을 , 방학이면 분홍 소시지에 핫도그를 만들어 주었다. 엄마는 음식으로 기억되었다.


엄마를 보면서 몸으로 배웠나 보다. 부족해 보이고 어설프지만 새로운 음식을 도전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다. 최근 인상 깊게 봤던 맛터 사이클 다이어리라는 TV 프로그램의 신계숙 교수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음식 맛의 90%는 정성과 노력입니다.”

뻔하지만 언제나 진리다. 그럼에도 일상은 가끔 이탈을 꿈꾸게 한다. 아이를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부지런한 엄마에서 조금은 비껴나 있고 싶다.


마트에 갔다. 나를 유혹하는 상품들이 종류와 브랜드별로 차곡차곡 잘 정리돼 있다. 최근에 나온 주목받는 아이템부터 몇십 년을 사랑받아온 라면 등 모두가 자기를 선택해 달라고 아우성이다. 잠깐 만두코너에 멈췄다. 상비약을 갖추듯 챙겨놓기에 고기만두 두 봉지를 카트에 넣었다. 이번엔 햄과 어묵 등이 즐비한 코너를 지나치고 냉동식품에서 돈가스를 집어 들었다. 냉동실에 저장해 두면 든든한 위기관리 음식이다. 간편 유부초밥을 살까 망설이다 맘을 잡고 닭봉 한 팩을 담고 집에 왔다.


“내일 점심 메뉴로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볼래. 엄마가 내일 아침에 또 고민하기 싫거든.”

“엄마 내일은 유부초밥에 양념 닭봉 튀김 어때요?”

그렇게 한 끼 메뉴가 전날부터 결정되었다.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아뿔싸다. 내가 내 발등을 찍은 것 같은 기분이다.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손이 많이 간다. 간단히 때우고 싶은 깊은 욕망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다. 애들에게 물어보지 않고 알아서 하면 될 것을 왜 그랬을까 나를 잠깐 탓했다. 좋은 엄마는 일찌감치 포기했고 나쁜 엄마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다녔다. 그렇지만 진짜 마음은 좋은 엄마를 그려가며 방황하고 있었다.



점심은 항상 이런 갈등의 시간이다. 얼마를 주고 사람들의 입맛을 파고든 조리식품으로 식탁을 차릴지 아니면 엄마표 음식을 주인공으로 내세울지 선택의 기로에 선다. 항상 파는 건 별로라고 여겼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요리를 한다는 건 적당히가 어렵다. 몸을 부지런히 놀리고 작은 것에도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노력한 만큼 결과로 멋진 식탁을 차렸지만 다음이 문제다. 음식을 담았던 그릇들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설거지와 뒷정리라는 또 다른 산이 남았다. 몸은 지치고 마음 아래 가라앉았던 감정들이 날개를 단다. 아이들에게 짜증 내고 갑자기 목소리가 커지며 화가 얼굴까지 올라왔다. 즐거웠던 시간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대안은 힘들이지 않은 음식으로 행복한 시간을 만들기다. 오로지 핸드메이드 집밥이 최고라는 고집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식품 회사에서 최적의 레시피로 잘 만든 혹은 유명 식당 셰프의 솜씨가 오히려 식탁을 화려하게 꾸며줄 수 있다. 물론 비용의 문제가 발생하지만 말이다.


어제의 점심도 이런 고민 끝에 팔을 걷어붙였다. 집에 재료가 있으니 한번 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얘기를 꺼내놓고서 못하겠다고 하면 실망할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오롯이 나를 바라보면 마음은 편하고 싶지만 엄마라는 타이틀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 냉동 유부를 데친 다음 간장과 맛술 매실 요리당을 넣어 조린다.

- 집밥에 참기름을 넣고 버무린 다음 유부 속을 채웠다. 인스턴트 유부초밥 대신이다.

- 닭봉 10개를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었다. 뜨거운 물에 소주를 조금 넣고 살짝 데쳐내고 나면 찬물 샤워를 한다.

- 밀가루 옷을 살짝 입힌 다음 중 약불로 팬에서 구웠다. 달콤한 양념을 만들 차례다. 다진 마늘과 고춧가루, 고추장, 매실청, 설탕, 콜라를 조금 넣고 잘 섞은 다음 보글보글 팬에서 끓였다. 닭봉을 넣고 버무리면 매콤 달콤 닭봉 조림 완성이다.

족히 50분은 걸렸다. 닭고기가 익는 동안 유부초밥을 만들었다. 오늘도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멀티플레이어 등장이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아이들이 음식 궁합이 잘 맞는다고 난리다. 후다닥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식사다. 아침 일찍 만들어 둔 복숭아 조림 몇 조각을 후식으로 꺼냈다. 아이들이 또 한 번 손뼉 친다. 달콤하고 시원한 복숭아가 입안을 기분 좋게 한다면서 말이다.


다시 2차 전에 돌입했다. 기름 가득한 팬이며 그릇들을 정리하고서야 점심시간은 끝났다. 이때는 몸이 그리 지쳤는지를 몰랐다. 저녁 9시를 넘겼을 뿐인데 하품이 쏟아졌다. 소파에 누웠다가 다시 카펫이 깔린 거실 바닥에 쿠션을 베개 삼아 널브러졌다. 이것도 마땅치 않다. 다시 방으로 가서 침대에서 이른 잠을 청했다. 내일도 같은 고민에 빠질듯하다. 지나침이 없는 중간, 인스턴트와 집밥 사이를 잘 오가야 한다. 내 몸을 아끼고 마음의 평화를 위하는 일에 무게를 두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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