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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Dec 28. 2022

가볍게 호떡

겨울날 간식 – 함께 한다는 것

추워지면 밖으로 나가는 일이 귀찮다. 그와 더불어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마음 또한 강렬해진다. 일요일 오후에 찹쌀 호떡을 만들었다. 몇 년 전에 한두 번 경험한 일이었다. 망설일 것도 없었다.  미지근한 우유에 드라이 이스트와 설탕을 잘 녹인 다음 찹쌀가루와 강력밀가루를 담은 그릇에 부었다.  주걱을 들어 잘 섞었고 다시 식용유를 조금 부어서 반죽에 기름이 녹아들도록 했다. 그러고 나서 한 시간 두면 호떡 반죽이 적당히 부풀어 오른다.   

겨울 찹쌀 옥수수 호떡

호떡은 뭐니 뭐니 해도 입이 델 것 같은 뜨거운 설탕 시럽 맛이 압권이다. 조금 더 특별해지기로 하고 옥수수와 설탕을 섞었다. 모차렐라 치즈도 함께다. 호떡 반죽은 다른 빵반죽에 비해서 많이 질다. 그래서 필수적으로 손에 식용유를 적당히 발라야 달라붙지 않고 모양을 만들 수 있다.


적당한 크기로 볼에 있는 반죽을 떼어낸다. 그것을 손바닥에 올려 둥근 빵 모양을 만들고 나서 가운데를 움푹 파이게 한 다음 설탕 버무린 옥수수를 한 숟가락 담았다. 그런 다음 꼭꼭 싸매서 기름을 적당히 두른 팬에 올린다. 잠깐의 숨을 고르고 나면 누르게로 꾹 눌러준다. 그러면 오돌토돌 울퉁불퉁했던 반죽이 제모습을 드러낸다.     


쏴 아하며 호떡과 기름의 뜨거운 만남이 이루어진다. 중간 불로  노릇해지도록 굽고, 뒤집어 처음처럼 누르면 호떡은 점점 납작해지면서 빨리 익어간다. 다 익은 호떡을 막 팬에서 꺼내어 호호 불어 한 입 베어 물면 어느 한쪽에서 뜨겁지만 달콤한 거부할 수 없는 시럽이 쏟아진다. 다시 호떡의 깊은 속살을 느껴본다. 찹쌀의 쫀득함에 우아함이 느껴진다. 

팬에서 익어가는 따뜻한 호떡

동네 중심에 있는 포장마차 호떡가게 보다도 맛있다고 자부한다. 제법 모양도 괜찮은 호떡을 차곡차곡 접시에 쌓으며 어디에서도 느끼지 못한 뿌듯함을 경험한다. '내가 이렇게 잘 만들었다니 난 정말 훌륭한 엄마야'라고 자평하고는 가슴속에 저장해 둔다. 

   

“엄마, 우리 나중에 호떡 장사해도 걱정 없겠다.”

중학생 큰아이가 호떡에 대한 감상을 전한다. 

“우리 둘이 하면 정말 어렵지 않고 할 수 있겠다.”

막연히 지나는 말이지만 그 순간에는 그리 든든할 수가 없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까닭이다. 농담처럼 건네는 말과 현실의 이야기는 분명히 다르겠지만 마음이 따뜻해졌다.    

누르게로 꾹~ 호떡 단장하기

함께 하는 일은  어떤 형태의 무게든지 줄어들게 하는 마법이 있다. 이런 삶의 지혜를 종종 잊고 산다. 특히 전업주부인 내게는 뭐든지 혼자 해야 한다는 태도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다른 가족들보다는 시간이 많다고 나를 규정짓고는 내가 해야 하는 게 집안일이라고 정의한다. 쉬는 날은 그래서 더 빨리 지친다. 식구들은 다들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지만 내 일은 시간별로 대부분 일정하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내놓고도 때로는  웃지 못하는 이유였다.     

아이와 함께 만든 호떡은 즐거운 오후한때로 이어졌다. 추운 날 기름 냄새는 고소했다. 서로가 맡은 일을 해내었기에 빨리 끝냈다. 힘을 오래 들이지 않으니 가볍다. 딱 식구들이 먹을 만큼이면 족했다. 모두가 작은 상에 모여 앉아 호떡을 하나씩 들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음식을 식구들과 함께하는 건 눈빛과 표정을 교환하며 서로를 진심으로 대하는 시간이다. 이때만큼 평화로운 때를 찾기가 힘들다. 호떡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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