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진미 Dec 26. 2022

한겨울 하트 기름떡

겨울간식 - 맛으로 기억되는 시간

팬에서 노릇노릇 구워지는 기름떡

음식은 추억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날이 추워지는 겨울이면 다른 어느 계절보다도 그런 느낌이 강하다. 하얀 눈과 칼바람 부는 힘든 날씨를 녹여주었던 것들. 따뜻함과 함께 오순도순 모여 손을 보태고 만들었던 정겨움이 묻어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면서 기억 속에 담긴 그때를 오늘에 그려보는 나만의 작은 위로다.     


아이들에게 기름떡을 해주기로 했다. 기름떡, 이름도 재미있다. 떡 만드는 과정은 이름과 연결되었다. 찹쌀가루를 미지근한 물에 반죽한 다음 밀대로 밀어서 틀로 찍어내고, 식용유를 두른 팬에  노릇노릇 구운다. 다 익은 떡 위에 설탕을 뿌리면 금세 녹아서 촉촉해진다. 찹쌀의 쫄깃함에 자꾸 손이 가는 음식이었다.     


기름떡은 어린 시절 제삿날이면 종종 해 먹었던 제주도 고유 음식이다. 제사상에도 올렸고 오랜만에 모인 친척들과 함께 나눠 먹었다. 그러다 잊고 지냈다. 세월이 흐를수록 제사 음식 또한 간단하고 편리함을 좇아가는 게 당연했다. 옛날처럼 모여 함께 음식을 준비하는 풍경도 사라진 지 오래다. 이날을 준비해야 하는 이들 역시 몸을 움직이는 일이 불편해질 만큼 세월이 흘렀다. 제삿날이 다가오면 부담스러움과 걱정이 앞선다. 그런 무게 앞에서  음식들도 조금씩 사라져 갔다.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11월, 겨울의 초입이면 아버지 제사가 있다. 그때 기름떡을 만들었다. 조카가 먹고 싶다고 해서 아주 오랜만에 가족이 모여 손을 더했다. 얼굴도 알지 못했던 조상의 제사는 내게 맛난 음식을 먹는 날이었다. 그러다 아버지의 제사는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얽혀 들었다. 그럼에도 시간의 흐름은 이런 섬세한 마음들이 무뎌지게 했다. 

 

제삿날에 엄마가 전날에 갈아둔 찹쌀가루를 들고 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전기 팬에 엄마가 반죽한 것들을 하나씩 올리고 구워갔다. 다 익고 나면 설탕을 뿌렸다. 맨 처음 한 것을 맛을 보니 딱 어릴 때 먹었던 그 느낌 그대로였다. 둥글면서 가장자리가 뾰족한 틀이 있어야 하는데 구하지 못해서 손으로 둥글게 만들었다. 그땐 몰랐던 기름떡의 묘한 매력이 내게 다가왔다. 떡은 단순하지만 순수하고 복잡하지 않은 담백함이 설탕의 달콤함과 잘 어울렸다.    

하트 기름떡  풍경

우리 집 아이에게도 몇 년 전에 만들어 주었다. 그러다 해를 몇 번 넘기고 나서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찹쌀을 8시간 불린 다음 동네 떡집에서 가루로 갈아왔다. 이른 아침 5시 무렵에 찹쌀 2킬로그램을 씻는데 우유 빛나는 쌀뜨물 색에 놀랐다. 참 고운 흰색에 버리기가 아까워 화분의 주기로 하고 따로 두었다. 정통 기름떡 틀이 없으니 쿠키 만들 때 쓰던 하트 틀을 사용하기로 했다. 우유와 미지근한 물을 넣고 반죽해서 밀대로 밀고 틀로 찍어내는 데 하트가 하나둘 늘어났다.  하얀 하트를 처음 만나는 날이었다. 어색할 것 같은 그 색이 참 곱다.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하나씩 담기 시작했다.

“적당한 간격을 두고 떡을 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 붙어버리고 모양이 안 예뻐.”

얼마가 지나야 엄마의 말이 생각났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떡이 옆으로 퍼져나가며 하트의 모양은 희미해졌다. 간격이 조금이라도 붙어있으며 떡은 어느새 자기들끼리 친구가 되어 있었다. 두 번째부터는 떡과 떡 사이에 간격을 많이 두었다. 그래서 처음보다는 제 모습을 잘 유지했다.      


“엄마 뭐 만들었어? 밖에서부터 기름 냄새가 나는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큰아이가 기대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접시에 하나를 올려주니 금세 감탄사가 나온다. 아이 얼굴에 행복한 함박웃음 꽃을 피웠다. 언제부턴가 큰아이는 새로운 먹거리를 마주하면 레시피를 묻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간단히 알려주었다. 흘려보내는 이야기지만  커서 어른이 되면 되뇌며 요리하는 즐거움을 알았으면 싶다. 나 역시 어릴 적에 엄마가 특별한 음식을 해줄 때면 방법을 물었다. 

“이거 알고 모르고 가 없다. 정말 간단해.”

엄마는 그러면서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엄마의 입말을 통해서 경험한 것들이  내 식탁을 이루는 근간이 되었다.      


기름떡으로 아이들과  나의 순간을 특별하게 만들었다. 맛으로 기억되는 엄마와의 한때였으면 좋겠다. 얼마 전부터 음식을 만드는 과정 마다가 삶의 지혜처럼 다가오는 날이 많아졌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증거일까? 기름떡은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살아가는 모습과 닮았다. 기름떡을 오랜만에 불러왔으니 추운 겨울은 심심하지 않겠다. 냉동실에는 아직도 잠자고 있는 찹쌀가루가 가득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옥수수빵과 엄마의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