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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Dec 11. 2022

옥수수빵과 엄마의 하루

어린 시절 엄마의 곁을 그리며

매일 집안 정리와 더불어 고민은 먹을거리다. 그중에서 오후에 중요한 건 아이들 간식.  아이들은 아침에는 학교 급식 메뉴를 보고, 그날의 즐거움을 찾는다. 집으로 돌아온 늦은 오후에도 이런 마음은 이어진다. 언제나 충분히 만족시켜 줄 수는 없지만 가끔은 아이들의 마음을 따라가게 된다. 옥수수빵을 만들기로 했다.  동네 마트에서 옥수수 캔 하나를 사 왔다. 머릿속에도 레시피가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인터넷에서 살폈다. 쓱 훑어보니 내 방식대로 해도 될 것 같다. 달걀 하나와 우유에 설탕을 넣은 다음 잘 섞어 주었다.  밀가루를 종이컵으로 두 컵 반 정도를 볼에 담고 베이킹파우더를 더한 다음 반죽에 옥수수와 잘 섞었다. 오래전 사둔 베이킹 컵에 반죽을 적당량 넣고 옥수수를 다시 알알이 보이도록 올렸다. 그러고 나서  찜통에서 15분을 기다리니 빵이 완성되었다. 적당히 부풀어 오르고 노란 옥수수가 어울린  모습이 꼭 봄날의 개나리다.     

봄날이 생각나는 옥수수빵 

아이들은 옥수수빵에 놀랐다. 예상에 없던 간식이었기에 반기며 맛있게 먹었다. 그리 힘이 들어가지도 않는 일이었다. 그저 몇 번의 움직임만으로도 가능했다. 내가 어릴 적 기다렸던 엄마의 모습과 닮았다. 집에서 여유롭게 이런저런 일을 하다가 학교에 갔다 오면 반가운 얼굴로 나를 반기는 엄마를 바랐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부모님은 아이들과 살아가기 위해서 밤낮으로 밭과 과수원을 오가며 일했다. 오직 쉼이 허락되었던 건 비 내리는 날이었다. 이마저도 과수원에 창고가 있고, 하우스 농사를 할 즈음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땅이 빗물로 질퍽거리고 밖은 우산을 들 수 없을 만큼 억수 같은 비가 내리쳐도 하우스와 창고는 다른 날보다 더 일하기 좋은 상태를 만들어 주었다.     


어른이 되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도 가끔 이런 꿈을 꾼다. 오롯이 나를 기다려주고 수다를 떨 만큼의 여유가 있는 엄마를 경험했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내 마음에 갈증 같은 엄마의 사랑, 엄마를 기다리는 오랜 기다림의 불안함 같은 게 사라질까? 지금 돌아보면 엄마는 세상 누구보다 자신의 삶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살아내었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게 아니고, 그렇게 하루를 잘 보내야 밝은 미래가 있을 거라는 확고한 믿음 같은 게 있었던 것 같다.   

   

엄마는 이런저런 가슴에 감정들을 담아두고 그것에 빠져있을 만큼 여유가 없었다. 매일 몸을 움직이는 일이 기다렸다. 밭은 농부의 발걸음을 기억한다는 말이 있다. 이상하게도 과수원에만 가면 할 일이 태산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랬다.    

 

중년이 되어보니 나도 엄마처럼 살 수 있을까? 싶다. 지금 난 엄마보다 육체적으론 편하다. 옆과 앞을 돌아볼 시간이 많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종종 여러 걱정을 안고 살아간다. 어린 시절, 아침부터 오후까지 엄마의 부재는 당연했다. 엄마의 하루는 선택할 수 없는 범위의 것들이었다. 불가능해서 그렇게 희망했고, 채워지지 않던 그때였다. 지금 내가 빵을 만들 수 있는 것도 상황적으로 집에 머물러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어찌 보면 과거의 그리움보다는 그땐 그렇게 살아가는 게 당연하다는 현실 논리로 바라보면 내 가슴이 먹먹해지거나 아쉬울 게 없다.   

찜통에 들어가기 전 반죽에 알알이 옥수수가 박혀있다

엄마의 삶과 내 모습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 그러니 모든 게 다를 수밖에 없다. 가끔은 내가 아이들에게 빵을 만들어 줄 여유가 허락된 게 감사하다. 그리고 만들고 나면 그것이 가지는 놀라운 변화에 다시 한번 혼자 감탄한다. 베이킹파우더를 만난 밀가루는 적당히 부풀어 올랐다. 어쩜 내 삶도 이 빵처럼 예쁘게 피어났으면 좋겠다.     


올해가 벌써 며칠 남지 않았다.  시간을 흘려보낸다는 마음이 들 때면 싸한 아픔이 있다. 생각들이 여러 가지를 만들어 길게 뻗어간다. 그때마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불쑥 튀어 올라 나를 움직이게 한다. 노란 옥수수빵도 그랬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한 일이었지만, 가슴속 나를 따라가 보니 아주 오래전 엄마를 향한 마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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