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진미 Feb 01. 2023

불편함이 전한 선물
베이글 샌드위치

겨울방학 특별한 점심

       

하나의 문제는 또 다른 세상을 알려주었다. 지난해말 손가락 인대가 늘어난 것이 아직도 영 신통치가 않다. 동네 정형외과 의사 선생님은 손가락을 안 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진료 때마다 강조한다. 주부에게 이 말은 당분간은 그동안 해왔던 일과 거리를 두라는 조언이다. 쉽지 않지만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중에서 밥 해 먹는 일이 문제다. 그동안과는 달리 반찬 수도 줄이고, 간단하게 한 그릇으로 가능한 메뉴를 식탁에 올렸다.      


아침과 저녁보다도 문제는 점심이었다. 아이들의 겨울방학 생활에서 낮에 먹는 밥은 하루의 모든 것을 뒤로할 만큼의 하이라이트다. 그것을 잘 알기에 가능한 원하는 것들로 차려내려 한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예전처럼은 불가능하다. 아침을 먹고 점심으로 뭘 할까? 시켜서 먹을까? 고민하는데 큰아이가 나섰다.

“엄마, 점심은 내가 할게. 베이글 샌드위치 어때요?”

당연히 대환영이다. 내 손을 거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기분 좋은 소식이었다. 

    

11시 반을 달려갈 무렵, 아이가 베이글을 꺼냈다. 냉동되었던 것을 전자레인지에서 30초 데우고 나서 반을 잘라 구운다. 치즈와 토마토를 준비하고 계란프라이 3개를 팬에서 만들었다. 양배추도 꺼내어 참깨 소스에 버무려 놓았다. 달콤한 바나나를 놓으면 좋을 것 같다며 구운 바나나도 준비했다. 차곡차곡 재료들을 올려놓고는 그만의 샌드위치를 선보였다.    

베이글 샌드위치를  위한 분주한 식탁

베이글 사이에 놓여있는 재료들이 화산이 폭발할 것 같은 기세다. 빵의 중앙에 나 있는 둥근 구멍은 자칫하면 재료들이 밖으로 나와버리는 사태를 만든다. 자주 만들었더라면 섬세하게 그런 부분을 메워가며 할 테지만 처음인 이들에게는 난코스다. 아이도 그런 상황에 맞닥뜨렸다. 양배추가 빵에서 탈출 시도를 하는 중이고, 얇게 썬 토마토 조각은 이미 접시로 나와 자유를 찾았다.     


‘이건 완전 야생의 베이글 샌드위치잖아’ 순간 딱 외치고 싶은 한마디였다. 한여름 더위와 씨름하듯 아이는 온 정신을 집중해 음식을 완성해 가는 중이었기에 마음속으로만 되뇌었다. 그러면서 어느 샌드위치 가게의 단정하고 예쁜 것을 떠올렸다. 당연히 딸아이의 베이글에 정이 갔다. 불편한 내 손가락을 염려하는 마음이 가득 담긴 소중한 것이었다. 


“엄마, 밥은 뭐라 해도 남이 해준 게 제일 맛있지?”

“응, 당연하지, 엄청 맛있어. 고마워”

아줌마들이 종종 건네는 그 한마디를 어디서 들었는지 전한다.  여러 가지가 들어간 샌드위치는 한입 먹기에도 쉽지 않았다. 손을 부지런히 움직여 보지만 여전히 밖으로 나오는 것들을 어찌할 수 없다. 그런데도 신난다. 


손가락을 쓰는 일이 조심스러워진 이후로 종종 아이가 하는 말이 있다.

“엄마, 어때요?”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에 진실한 감동이 찾아온다. 이런 아이의 마음은 도톰한 베이글과 닮았다. 소박하지만 속은 꽉 찼다. 귀여움은 덤이다. 


손가락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일이 얼마만큼의 불편함을 동반하는지 알아간다. 그리 큰 부상은 아니지만, 정상적인 반대편 손가락과 비교하며 상태를 자가진단한다. 어느 날은 괜찮은 것 같다가도 평소보다 좀 많이 움직였다 싶으면 다시 약간의 통증과 부기가 동반된다. 이제 한 달이 다 되어가니 예민해진다. 하루를 보낼 때 우울도 찾아온다.     


베이글 샌드위치는 내가 누군가에게 보호받고 있음을 알게 했다. 접시를 가득 차게 한 샌드위치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리고 언제나 내가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아이의 성장을 선명하게 확인했다. 삐죽삐죽 궤도를 벗어난 샌드위치 모양은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닮았다. 엄마인 난 가지런히 정돈된 모습으로 자라기를 바랐다. 이런 생각이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는 것도, 그렇게 되지도 않는 게 당연하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야생의 멋이 담긴 따뜻한 베이글 샌드위치

샌드위치는 모양에서 미뤄 짐작할 수 없는 깊은 맛이 숨어있었다. 블루베리 베이글의 적당한 달콤함과 채소와 치즈, 계란의 부드러움까지 한데 어울려 담백하면서도 여유로운 맛을 자랑했다. 아이의 샌드위치는 초록의 풀과 나무, 바람, 돌, 한 편의 작은 웅덩이가 있는 야생의 초원을 떠올리게 한다. 어느 한 편의 풍경만으로는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멀리서 그것을 바라보면 어느 곳에서도 몰랐던 평화와 자연의 위대함을 경험할 수 있다. 오히려 거칠어서 더 매력적인 샌드위치였다. 순수함이 느껴지는 베이글 샌드위치. 불편함은 또 다른 선물로 내게 다가왔다. 오래 기억될 겨울 낮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을 알까? 알리오 올리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