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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Feb 02. 2023

새벽에 빵 굽기

마음이 이끄는 즐거움


“엄마 내일 아침에는 수프에 빵 먹을까 봐.”

늦은 저녁 학원을 마친 아이와 동네 산책로를 함께 걸을 때였다. 아이가 아침밥 얘기를 꺼냈다. 며칠 전 선물 받은 인스턴스 옥수수 수프가 있었다. 내가 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기에 그냥 지났다.     


요즘은 저녁 10시 반을 지날 무렵에는 잠자리에 든다. 연말부터 계속 몸이 이래저래 탈이 나는 까닭에 마음이 심란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잠을 잘 자는 것이 우선이었다.  새벽 4시 반 무렵에 깨었다. 내 생활의 늦잠은 아주 드문 일이기에 특별할 것도 없다. 눈을 뜨고 멀뚱멀뚱 천장을 보다가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 빵을 만들어야겠다는 것. 어제 딸아이가 말한 것도 생각나면서 새벽에 빵을 만들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하는 베이킹은 그야말로 초보자의 마음대로 만들기다. 그도 그럴 것이 신경 써서 계량하지도 않고 재료 역시 가능한 집에 있는 것들로만 챙긴다. 지금의 상황을 예상이라도 하듯 어제 유튜브 채널에서 간단하게 발효 빵을 만드는 레시피를 사진으로 찍어 두었다.

      

휴대전화를 들어 저장해 둔 자료를 보며 밀가루와 드라이 이스트, 소금과 설탕 우유의 양을 살폈다. 얼마간 묵혀두었던 저울을 꺼내어 밀가루와 나머지 재료들을 개량했다. 얼마간의 시간을 두고 발효시키는 빵은 손의 수고가 필요하다. 인대가 늘어난 오른쪽 손가락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이고 하지 말았어야 했다.     

새벽에 만든 빵과 옥수수 수프

오른손이 어려우면 왼손이 있었다. 볼에 재료들을 넣고 왼손으로 치대는데 어색하다. 잘 쓰지 않는 손은 생각처럼 잘 움직이지 않았다. 어설픈 내 모습을 관찰하며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할까 하는 물음을 던졌다. 


빵을 굽는 일은 즐거움이었다. 타인과 관계하지 않아서 신경 쓸 일이 없다. 부드러운 밀가루를 조몰락거리는 깜깜한 어둠의 시간은 홀로 편안했다. 오랜만에 빵 만들기에 나서게 된 건 나도 모르게 복잡했던 가슴이 이끌었던 게 아닐까? 허전함과 답답함이 머물 때 가루에서 덩어리가 되고, 모양을 갖춘 빵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시원함과 동시에 잠시 일상을 보낼 에너지를 얻어간다.   


처음부터 제대로 된 빵은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부담이 없었다. 적당히 반죽하고는 휴지 시간을 한 시간 10분 정도 가졌다. 어떤 종류의 빵이라는 목적도 없었기에 대충 모양을 잡았다. 6시 반 무렵에 6개의 빵을 구웠다.      


아이는 7시 무렵에 일어났다. 빵을 보고는 놀라는 눈치다. 예고 없이 만들어 식탁 위에 두었다. 함께 먹겠다는 수프도 준비했다. 버터나 다른 무엇이 안 들어간 빵이었기에 달콤함과 짠맛이 어우러진 수프와는 잘 어울렸다.     

  

아이는 빵을 보고 감동했다. 아이는 냉동실에 둔 베이글을 먹을 계획이었는데 갓 구운 빵이 앞에 있으니 뜻밖의 행운을 만난 듯 놀란 눈치다. 아침을 준비하다 고개를 돌려 식탁 앞에서 반응하는 모습을 보고는 오롯이 아이만을 위한 빵을 구운 게 아니었기에 살짝 미안했다. 어제 나눈 짧은 대화 속 ‘빵’이 촉매제가 되었으니 오히려 아이에게 감사했다.     


새벽 빵을 만드는 일은 나를 깨우는 일이었고 쉼이었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으며 내가 중심이 되어 이끌어 가는 놀이 같았다. 몇 개 남았던 빵이 낮 무렵에 벌써 자취를 감췄다. 아이들과 차를 마시며 조금씩 나눠 먹은 까닭이다. 빵이 올려졌던 접시를 보며 일상은 어쩌면 빵을 구운 새벽의 강한 열정처럼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들의 연속 같다. 갑자기 새벽에 빵을 만드는 어느 빵집에 들러 긴장과 설렘을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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