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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Feb 09. 2023

할머니의 호떡

감동 주는 맛에 대해


   

며칠째 코가 막혀 고생하는 아이의 이비인후과 진료가 끝났다.  집으로 가려는 중에 호떡 포장마차가 보였다. 며칠 동안 호떡집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주말에 다녀왔던 여행에서도 그랬다. 광장시장 어느 한 편에 어디가 끝인지도 모를 만큼 긴 줄이 보였다.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은지 궁금해하고 있을 무렵 종이컵에 무언가를 들고 나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것은 호떡이었다.    

 

가끔 관심사가 생기면 한동안 그것들이 먼저 들어온다.  1월 제주에서 만났던 호떡 할머니 때문이었다. 평생 호떡을 만들고 파는 일에 매달렸을 것으로 보이는 할머니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제주시 동문시장을 둘러보고 집으로 가기 전에 호떡을 하나 먹기로 했다. 시장을 돌다 보면 어디쯤엔가 호떡과 빙떡을 파는 가게가 서너 곳 이상이 모여 있는 공간이 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그곳의 주인이다.      


가게마다 사람들 몇몇이 앉아 있다. 할머니의 굵은 손이 부지런히 움직이더니 호떡이 다 구워졌다. 종이컵에 담긴 것을 받아 드는데 이상한 그릇이 눈에 띄었다. 스테인리스 국그릇을 엎어놓은 모양에 위에는 둥근 손잡이가 붙어 있었다. 순간 궁금증이 일어 꼭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할머니 이 건 뭐 하는 것에요?”

“이걸 덮으면 호떡이 빨리 익고, 촉촉하게 지져지는 거야.”

할머니의 답이 돌아왔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옆 가게로 눈을 돌렸다. 다른 호떡집들에서도 쓰는 도구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다른 곳에는 그런 게 없었다. 아마 할머니가 생각해서 주문해 둔 것이었나 보다.    

제주 동문시장 할머니 호떡과 덮개

호떡이 참 맛있었다. 호떡을 집에서 만들어도 봤지만, 그것과는 깊이가 다르다. 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레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구분된다. 호떡을 살짝 감춘 스테인리스 덮게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맛을 전하는 일등공신 인지도 모르겠다. 


호떡 굽는 할머니의 얼굴과 손은 주름이 깊게 패었다. 뜨거운 열기 앞에서도 집중해서 호떡을 뒤집는 사이에서도 손님이 오면 잠깐의 미소도 잊지 않았다. 작은 일회용 그릇에는 오백 원과 백 원 동전이 훤히 보였다. 간혹 시장에서 마주하는 풍경이지만 오랜만에 보니 정겹다.      


플라스틱 넓은 그릇 안에는 어제 만들어 놓은 것 같은 호떡 반죽이 잘 부풀어 있다. 손에 기름을 적당히 묻혀서 툭 떼어내고 조물조물한 후에 소를 넣고 모양을 만든다. 달궈진 넓은 사각팬에서 익기 시작하면 누르개로 적당한 힘을 주어서 둥근 모양을 만든다. 너무 서두르지도 않고 적당한 호흡이 머무는 손놀림에 눈이 갔다. 적당히 익어갈 무렵에는 호떡 뚜껑을 덮어둔다. 속까지 은은하게 익어가고 겉은 촉촉한 맛을 낸다. 


할머니의 호떡이 완성되었다. 입으로 가져가는 순간 찍 하고 설탕 시럽이 나오며 부드러운 떡과 어울린다. 살짝 입안이 데었지만 그 순간이 호떡을 먹는 묘미다. 할머니의 호떡은 엄마의 집, 내가 태어난 고향에서 지내는 짧은 한때의 여유와 따뜻함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다녔던 호떡 골목이 전과 다르게 보였다.       


호떡을 충분히 느끼고 난 후에는 그것을 만든 할머니를 잠시 바라보았다. 한 길을 쉼 없이 이어가는 어르신의 모습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중년에 들어서면서 어떤 누구의 삶도 쉽지 않음을 느낀다. 그래서 타인에 대해서 말하는 일은 어렵고 조심스럽다. 막연하게 그려볼 뿐이다. 할머니에게 호떡은 삶을 지탱해 주는 든든한 것이었고, 아이를 키우며 한 가정을 일으켜 세우는 데 도움을 준 고마운 것이라는 것. 호떡을 만드는 어르신의 모습에서 하루를 살아가는 잔잔한 열정을 만났다.       


그리고는 어렵고 힘든 시간을 하루하루 몸으로 버티어내며 살아왔던 삶이 아니었을까 감히 미뤄 짐작할 뿐이다. 그 여정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비바람 부는 날에도 시장 한 귀퉁이에서 고소한 기름 냄새를 풍기며 호떡을 만드는 어르신에게 시선이 머문다. 호떡은 어디서나 먹을 수 있지만, 그곳에서만 느껴지는 맛의 비밀은 내 머릿속으로 상상해 보는 삶의 기록이 더해져 뭉클하다. 따뜻한 어느 날에 그곳에 가면 할머니와 호떡에 대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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