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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Feb 10. 2023

부족해서 충분한 계란 김밥

단순함을 위해 지난 시간

음식을 만들다 보면 뜻밖의 생각이 떠오른다. 매일 쉬지 않고 요리하는 주부인 내가 부엌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힘들고 지겨워서, 편한 게 좋다고 거리를 두고 싶을 때도 많지만 다시 돌아와 부엌 주변을 서성인다.     


김밥에 마음이 갔다. 김밥이라는 단어 자체가 괜스레 복잡할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래서 종종 김밥은 어렵다 여긴다. 가장 가까운 김밥집으로 달려가고 싶게 한다. 그런데 김밥처럼 단순하면서도 큰 만족을 주는 음식이 있을까 싶다.     


김밥은 최소한으로 최대의 효과라는 경제적 논리에 대입해도 손색이 없다. 점심때 만든 계란  홀로 주인공인 김밥을 통해서 이런 마음이 강하게 일었다. 어느 날 유튜브를 보다가 계란 김밥이 살짝 스쳤다.     


본격적으로 영상을 본 것도 아니다. 단지 도톰한 계란말이를 넣은 김밥도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얻어왔다. 그러다 며칠 전 점심에 그것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큰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짧은 휴식으로 여겨도 가능했기에 큰 아이가 나섰다.      


아이에게 계란말이 방법을 알려주었다. 누구에게나 처음 도전은 설레듯이 아이는 사각 팬 앞에서 떨림을 즐겼다. 계란말이와 밥, 김이면 충분했다. 밥에는 엄마가 준 참기름을 넣고 잘 섞어주었다. 계란말이에는 평소보다 소금을 더 넣었고, 참기름을 더해 밋밋해질 수 있는 맛을 풍성하게 했다.     

계란 김밥

김밥에 들어가는 게 단순하니 단숨에 6줄을 말았다. 활짝 펴 놓은 김 위에 흰 밥을 올리고 계란과 더불어 돈가스 소스와 마요네즈, 아무것도 넣지 않은 세 가지로 구분했다. 맛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흰쌀밥과 계란의 고소함이 함께 어울리는 동시에 김 향이 고르게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처음에 김밥을 준비할 때는 누구나 다 아는 재료를 염두에 둔다. 햄과 단무지, 시금치, 당근, 게맛살까지 챙겨야 할 게 많다. 재료를 따로 익혀야 하는 까닭에 손이 많이 간다. 이런 여러 과정은 큰 마음을 가져야 만들게 되는 것이란 인상이 강했다.    

 

내게 김밥은 자취를 시작하던 여고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벌써 30여 년이 다되어간다. 내 김밥은 몇 년 전부터 정말 단순해졌다. 여러 가지 속 재료를 준비하는 일은 거의 없다. 김밥 속은 두세 가지를 넘지 않는다.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드디어 계란 김밥은 그동안 김밥 여정의 가장 높은 곳에 오른 듯하다. 밥과 계란만으로도 충분했다. 다른 것들을 떠올리는 아쉬움은 없었고, 아이들과 풍성해진 점심 한때를 보냈다. 노랑과 흰색으로만 보이는 김밥 풍경이었다.     


그렇게 김밥을 만들고 사흘이 지난 지금에야 문득 떠오른다. 단순함은 먼저 그래야만 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들을 경험한 후에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 음식이나 행동까지도 대부분 사람은 널리 알려진 레시피나 방법을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래야만 덜 불안하고 괜찮은 정도에 이르게 될 것이라 여긴다. 누구에게나 안 가본 길에 대한 두려움은 존재하고 그것을 줄이고 싶은 게 모두의 바람인 까닭이다. 사는 일도 그러하지만, 음식을 만드는 일도 무관하지 않다.     


여러 가지로 채워진 김밥은 화려하다. 초록, 빨강, 노랑 등 색의 느낌을 통해 맛을 미뤄 짐작하기도 한다. 그래서 너무 소박한 김밥에 대해선 어색하고, 쉽게 손이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한두 번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 김밥을 만들고 경험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됨을 체득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계란 김밥은 어쩌면 그동안 김밥이라는 음식을 향해 걸어온 시간의 압축판이 아닐까. 김밥을 위해 손을 분주히 움직이지 않아도 가능함을 어렴풋이 알아가는 시간이 여러 겹 쌓였다. 김밥 이야기를 쓰면서 복잡함이라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단순하고 솔직함의 단계에 이르게 됨을 알았다. 그것 또한 개인의 취향이 있으니 강요해서도 안 될 일이다.     


 ‘단순 김밥’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건 한눈에 훤히 보이는 것, 이면의 의미를 따지지 않아도 되는 명쾌함으로 설명되었다. 앞으로 당근, 시금치, 나물만 들어간 여러 종류의 김밥을 만들며 맛을 찾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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