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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Feb 13. 2023

돼지고기 숙주볶음

그냥 집에 있는 게 아니었다


뭐 하고 지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때마다 집에 있었다고 답한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다. 매일 아이들에게 삼시 세끼를 차려주는 게 대표적인 일과다. 가끔은 아이들이 스스로 음식을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내 손을 거쳐 식탁에 오른다.     


그러니 그동안 난 매일 밥 하고, 집을 치우고, 어떤 날은 책도 읽고 산책도 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고심 끝에 찾아서는 얼마 동안 음악도 들었다. 지금 스치는 하루의 기억들을 더듬어 보아도 안부를 묻는 질문의 답은 이러이러한 것을 했다고 하는 게 맞다.  

   

그런데 왜 그것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매일 같은 말만 반복할까? 당연한 일이라는 큰 명제가 모든 걸 덮어버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연’한 건 아니다. 반드시 해야 한다는 어떠한 규정도 없다. 그러고 보면 내가 하는 일의 대부분 역시 순간마다 생각하고 선택하고 행동으로 옮겨야 하는 것들이다. 한 그릇의 음식을 만들기 위해선 날씨와 먹을 사람의 기분, 시간과 분위기까지 고려한다.     


매일 그러하다고 할 순 없지만, 그럭저럭 염두에 두는 덕목이다. 이런 고민 끝에 탄생한 밥 한 끼는 나만 아는 익숙하지만 매번 조금씩 다른 창작품이었다. 겨울방학 동안의 셀 수 없이 해 온 많은 일을 “그냥 집에 있었어”라는 말로 끝내는 건 사실이 아니었다.     


문득 이런 마음을 갖게 된 건 점심을 준비하는 낮이었다. 언제나처럼 아이들의 의사를 묻는다. 먹고 싶은 메뉴가 있는지 확인하고 나서 그다음 내가 선택한다. 가능한 의견을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날은 내가 끌리는 것으로 한다.     


오늘은 점심은 숙주와 돼지고기 앞다릿살을 넣은 볶음이었다. 한의원에서 손가락에 침을 맞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에게 전화했다. 아침까지는 별 얘기가 없었기에 다시 확인했다. 혹시나 새로이 먹고 싶은 게 생겼는데 집에 재료가 없다면 당황스럽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햄버거로 대신하려고 했다. 우중충한 날씨 탓인지 의욕이 없다. 음식을 조리하고 나서 설거지해야 하는 상황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는 햄버거는 그리 끌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전화를 끊으려는데 끝에 아이가 살짝 고기 얘기를 꺼냈다.  

내 일중 하나인 점심 요리, 돼지고기 숙주볶음

지난주에 사다 놓은 게 있는데 그걸 요리했으면 좋겠다고. 평소보다 식사가 늦어진 탓에 집에 도착하자마자 앞치마를 둘렀다.  우선 고기에 생강가루를 넣고 익혔다. 고기가 숨을 죽이고 다 익어갈 무렵 숙주와 대파, 맛술, 간장에 굴 소스를 넣고 후다닥 볶아내었다. 여기에 청양고추와 후춧가루를 더해 고기 특유의 향이 가능한 한 사라지도록 했다.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했지만,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잠깐 침대에 누웠다. 잔뜩 흐리고 다가오는 봄기운은 아무것도 하고 싶은 않은 기분을 동반했다. 감정에 충실해야겠다는 핑계를 대고는 한 시간 그렇게 머물렀다. 하루를 시작하는 게 한의원 가는 일이었는데 한 시간 반이나 늦어지니 모든 일이 뒤로 밀렸다. 생활의 흐름이 엉켜버렸다.      


한 20여 분 손에 날개 달 듯 속도를 내었더니 음식이 완성되었다. 아이들은 밥 한 그릇을 더 떠먹을 정도로 만족했다. 설거지는 늦은 오후로 미뤘다. 에너지를 쏟았으니 부엌과 거리를 두기로 했다.  그다음 일은 청소기를 들어 온 집안을 휘저었고 테이블야자에 물도 주었다. 세탁기에 담긴 빨래도 다른 날보다 정성 들여 널었다. 


오후에 이르러 내가 한 일을 세어 보았다. 족히 서너 가지는 되었다. 내가 보낸 하루는 몇 시간 동안 몸을 움직여 가져온 결과들 안에 있었다. 집에 있었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다. 누가 시시콜콜하게 묻지 않았으니 그걸 다 말하는 것도 우습다.  기꺼이 한 일도 있지만, 힘을 내어 실천한 것들이 더 많다. 스스로 칭찬해 주고 나를 다시 들여다봐야 하는 지점이었다.      


아이에게 음식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맛있게 먹었다는 한마디만으로는 사라져 버릴 것이기에 남겨두고 싶었다. 아무것도 안 했던 하루는 없다. 아이들이 점심 한때를 몰입해서 먹은 접시 안에는 대여섯 가지의 재료가 들어갔고, 손질하는 과정을 거쳐 맛있는 요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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