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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an 19. 2023

마음을 알까? 알리오 올리오

겨울방학 점심 예찬

      

방학의 하루는 빨리 흐른다. 아침이면 가방을 메고 학교로 가던 아이들이 종일 집 안에 머문다. 내 자유가 얼마 동안 사라지고 아이들의 시간표에 맞춰 생활하게 되는 시기. 엄마들의 집 생활이 최고조에 달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방학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학교의 계획에 따라서 이뤄지는 당연한 일이라고만 여겼다. 몇 해 전부터는 다시 돌아오기 힘든 소중한 시간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과 한 공간에 머물 수 있는 충분한 여유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여러 가지로 아쉬움과 불안이 가중되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면도 많다. 그저 아이들을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는 것. 늦잠 자는 막내의 모습도 귀엽고 아침부터 노래를 부르며 자전거를 타며 홈트레이닝을 하는 큰아이의 열정도 부럽다.      


아이들을 볼 때마다 지나쳐 버린 내 모습을 발견한다. 그것이 긍정적일 때는 뿌듯하지만 그와 정반대일 때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다시 나를 돌아본다. 이미 아이들에게 각인된 엄마의 모습은 쉽게 바뀌기 어렵다는 것도 잘 안다. 단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 한다는 사실만이 존재할 뿐이다.  

   

내가 못하는 것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그건 얼마 동안만 유효하다. 대부분은 금세 거품처럼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 그보다는 좋아해서 즐겁게 하는 것, 마음과 몸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일로 아이들과 대화하고 싶다.  

   

요리는 이런 내 마음을 담는 소중한 활동이다. 매번 점심마다 다른 음식으로 아이들과 마주 앉아 먹는다. 동네 친구는 일주일 방학 식단을 만들어 놓고 그것에 따라 한다고 하는데 내게 이런 치밀함은 없다.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난 아침을 먹고 나면 점심 메뉴를 묻는다.    

  

재료가 집에 있는지 우선 확인하고 없으면 기꺼이 마트로 간다. 설거지를 끝내고 두세 시간 후에 벌어지는 일이다. 뻔한 일상이 지속하는 것 같아 귀찮을 때도 있지만 요리는 다른 것보다는 쉽게 다가가게 되는 것이라 다행이다.       


어느 집이나 그렇듯 점심은 가볍거나, 어느 시점에 인기 있는 메뉴로 정한다.

“엄마, 나 알리오 올리오 먹고 싶어.”

아침 무렵에 큰아이가  말했다. 막내 역시 면 종류를 좋아하기에 수요일 점심으로 낙점되었다.    

  

이 파스타는 이름에 모든 게 담겼다. 알리오(마늘)와 올리오(기름) 두 가지가 핵심이다. 특히 올리브유 특유의 향과 맛이 성공을 좌우한다. 여기에 파스타 면을 삶았던 면수를 적당히 더하면 가볍지만, 무게가 느껴지는 부담스럽지 않은 한 끼가 완성된다.    

수요일 점심 알리오 올리오

손가락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그동안 아이들이 몇 번을 얘기했지만, 뒤로 미뤄두었다. 조금씩 회복 중이어서 만들어 보기로 했다. 복잡할 것 없는 요리과정 때문에 점심을 준비하는 내내 마음이 가볍다.   

  

스파게티 면을 삶고 올리브유를 넉넉히 두른 팬에 저며 썬 마늘을 볶는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빨강 노랑 파프리카와 새우를 더했다. 마지막으로 면수를 넣고 면과 함께 섞어준 다음 새우젓으로 간하면 마무리된다.    

 

보름달처럼 둥근 볼에 음식을 모두 담았다. 앞접시를 두고 각자가 먹을 만큼만 덜어서 먹기로 했다. 떡볶이를 먹듯 편한 상태로 점심을 즐겼다. 며칠 전에 사둔 베이글을 살짝 구워 올리브유에 찍어 먹었다.     

“엄마, 대박이다. 이때까지 먹은 알리오 올리오 중에 최고야.”

“오늘은 올리브유를 충분히 넣으니까 빵도 맛있다. 마늘 올려서 먹어봐.”

아이들이 부지런히 감상평을 늘어놓는다.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먹는 걸 좋아한다. 거실 중앙에 낡은 상을 펴고 화이트 러너를 깔았더니 분위기가 살아난다. 아이들은 부지런히 먹다가 화면 속 장면을 보고 웃고 다시 포크를 들어 면을 돌돌 말아서 입속으로 가져간다.   

   

그리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모두가 행복하다는 걸 안다. 마지막 새우 한 알까지 다 먹었다. 그릇에는 노란 올리브유 흔적만이 남았다. 여름 한나절 소나기가 지나간 것처럼 순식간이었지만 하루를 통틀어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다.     


무엇을 확인하려 할 때 말을 통해서 선명히 듣고 싶어 한다. 지금 당장 정확하게 답변할 수 없는 것들, 한 번의 짧은 대화 속에서 해결 불가능한 것들을 빨리 정리하려 한다. 그 순간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적당히 서로가 장막을 두른 채로 말하고 대충 결론을 내어버린다. 그리고는 불편한 무엇이 내내  가슴속에 남아있다.

 

아이와 관계에서도 종종 이런 일을 맞닥뜨린다. 그럴 때마다 상처 입고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런데 서로가 얼굴을 마주하고, 먹고 싶은 것을 나누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불편한 상황에서 서로를 잘 이해하는 바탕이 될 거라 여긴다.


아이들은 엄마가 부지런히 움직여 음식을 만들어 상에 내어놓을 때의 수고로움을 잘 안다. 방학이라는 시간은 같은 공간에 있기에 이것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다. 아이들은 음식조리 과정을 옆에서 바라보거나, 먼발치에 있어도 소리와 냄새로 얼마의 시간이 흘러야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아는 까닭이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 것. 알리오 올리오를 만들어서 먹는 일, 이것이 아이들과 나누는 오감으로 이뤄진 대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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