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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10. 2023

냉이마요덮밥 한 그릇

봄날의 점심

먹는 일은 마음을 따라간다. 봄의 향기를 맛으로 느낀다면 복잡한 감정의 무게를 조금 덜어준다. 혼자만의 밥, 대충 먹기보단 생각하고 그것을 그려보고, 한 그릇의 음식으로 구체화시키는 작업으로 위로받는다.    

 

나를 돌보는 일에 타인의 관심과 사랑을 바랄 때가 있다. 우울이라고 정의하고 투정을 늘어놓거나 그 시기에 불편한 일상을 나열한다. 그건 그저 지나는 바람처럼 흘러가 버리는 것일 수 있는데 그것들이 핵심인 것처럼 크게 부풀려진다.  

   

이때 정말 자신을 바르게 봐야 할 때다. 누구를 탓하기는 쉽지만 그건 문제를 피해 가는 가장 간편한 법이다. 정신을 차리고 솔직 깊이 자신 안으로 들어가야 할 때다.      


봄이라는 사실을 피하고 싶을 만큼 며칠 새 날씨가 따뜻하다 못해 덥다. 날씨는 복잡한 감정에 날개를 단다. 오히려 이럴 땐 겨울의 찬 바람을 한바탕 맞고 싶다. 의욕이 없다 여기면서도 살아나는 게 있다. 맛있는 것을 찾는 호기심이다. 무얼 먹으면 기분이 좋아질까?      


기분을 변화시키는 일 중에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건 수다와 먹는 일을 통한 정화작용이다. 점심으로 냉이와 마요네즈가 떠올랐다. 어제저녁때 먹다 남은 참치마요를 활용해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같은 건 지겹고 기분을 변화시키는데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냉이마요덮밥

  

새로운 것을 찾으려 할 때 법칙 같은 게 있다. 정말 새로운, 없던 것을 세상에 내놓는 일은 지극히 어렵다. 그저 생각만으로 그칠 수 있다. 가까운 곳에 있지만,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걸 만들어 내면 그것만으로 새것이다.     


흰쌀밥 위에 아침에 무쳐놓은 냉이 무침을 잘게 썰어 놓았다. 겨울 동안 흰 눈을 맞고 자란 쪽파를 아주 작게 송송 썰어 놓았다. 여기에 고소함을 더한 땅콩 멸치볶음도 올렸다. 마지막은 참치마요, 청양고추를 하나 썰어 놓은 것을 위에 올리는 일이다. 그리고 간장과 맛술, 설탕이 어우러진 소스도 한두 숟가락 뿌린다.     


냉이 향이 오래 머문다. 이런 맛을 내가 그동안 알았나 싶다. 참치와 마요네즈의 극강의 고소함 뒤에 향긋하고 시원함, 새싹이 세상에 나오는 듯한 청량함과 용기 있음이 느껴지는 독특한 냉이 향이 오래도록 감싼다.    

  

어찌 보면 절대 부드럽지 않은 것들이 조합이다. 청양고추는 톡톡 튀는 강한 매운맛의 상장처럼 불린다. 쪽파 또한 특유의 향에 달콤한 매운맛이 있다. 여기에 냉이까지 더하면 개성 강한 이들이 제소리를 낸다. 결코, 숨죽이거나 가만가만하지 않다.   

   

그때 등장한 게 마요네즈다. 서로 다른 초록이 조화를 이룬 채소들을 존중하면서 하모니를 만들어 낸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라고 해야 할까? 불협화음 대신 어울리게 하고 저마다의 색들을 펼쳐 보이게 하는 것. 참치마요의 위력이었다.     

 

냉이는 곧 봄이다. 로컬 푸드에서 사 온 냉이는 어찌나 뿌리가 드세고 길었는지 땅속에 자리를 잡아 어떤 풍파가 있어도 단단히 견딜만했다. 그것은 입안에서도 쉽게 부드럽지 않았다. 오래 천천히 시간을 두어야 진심을 보여주었다.      


숟가락에 힘을 주어 열심히 비볐다. 서로가 어떻게 어우러지는지도 모르지만, 각자의 모습 대신 서로가 서로에게 친구가 되었다. 그것이 맛을 내는 비법인지도 모르겠다. 잠깐은 기분이 좋았다.      


마음의 허함 때문인지 무언가를 먹고 싶던 본능적인 욕구가 진정되었다. 그럼 괜찮아진 걸까? 모든 게 그리 빨리 해결되는 마법은 세상에‘ 없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런데도 감사하다. 내 손을 거쳐 만든 한 그릇이 나를 돌봐주었다. 내가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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