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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15. 2023

말없는 대화, 전복밥과 달래장

봄날의 식탁

내게 음식은 바람이다. 그저 무심코 만든 한 그릇에서도 내 생각을 발견한다. 때로는 엄청난 메시지를 넣고 음식을 준비한다. 음식 관련 글을 많이 쓰게 되는 것도 이런 습관과 연결되었다.     


언제부턴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 좋아해야 오래 할 수 있고,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으로 다가온다. 밥을 준비하는 일은 그래서 내 생활이고 삶이다. 정말 하기 싫은 날도 있다. 부엌을 벗어나고 싶다고 혼자 발버둥 칠 때도 있지만 언제나 돌아오면 그 자리다.     


그때마다 다시 확인한다. 누군가를 위해서라는 목적보다는, 국을 만들고 찬을 준비하며 기분이 절로 괜찮아진다는 것. 언제나 지겹다고 하면서도 기꺼이 불 앞에 선다. 봄날이면 더 바쁘다.     


요즘의 나를 복잡하고 싱숭생숭하다는 말로 간단하게 정의한다. 주위에 모든 것들이 어수선하다. 아이들은 새 학년에 올라가 적응하느라 헤매는 중이다. 남편 역시 회사에서 쏟아지는 일들로 매일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전복밥과 달래장

이들의 얘기를 적절하게 들어줘야 한다. 내 귀를 활짝 열어야겠다고 마음먹지만 마음대로 안된다. 


집에 있는 사람이지만 나 역시 봄을 맞을 생각에 힘들다. 해가 바뀌어서 한참이나 지났으니 언제나처럼 나를 돌아보게 되고 불만족스럽다. 그것은 다른 가족들에게 수다스럽게 늘어놓지 않을 뿐이다.  

   

이런 것들이 가시덤불처럼 얽혀있다. 그럼에도 가족에게 힘이 되고 싶다. 그때 역시 밥을 생각한다. 전복밥. 


전복은 누구나에게 상징적인 식재료다. 어제보다는 조금 다른 특별한 밥. 몸을 생각해서 어제보다 더 쌩쌩하게 내일을 열라는 응원을 보낸다.   

  

마트에서 전복 5개를 샀다. 전복을 손질하고 내장인 게우와 전복살을 다지고 저민 다음 참기름에 볶았다. 불려놓은 쌀과 함께다.  3~4분 정도 지나면 압력솥에 물을 평소보다 적게 넣는다. 딸랑딸랑 십여 분이면 밥 하는 소리가 들린다. 뜸 들일 때 달래장을 만들기로 했다. 봄의 상징 같은 달래를 잘게 썰어 진간장과 매실청, 참기름과 깨를 넣는다.    

 

간식을 안 먹었다고 배고프다고 막내가 아우성이다. 한 그릇을 먹더니 두 그릇째다.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아이는 이제 전복밥이 의미를 조금 아는 것 같다. 

“엄마 나 이밥 먹고 힘낼 거야!”

아이도 새 선생님과 친구들과 지내느라 하루가 그리 간단치 않은 모양이다.    

  

말하는 과정에서 피곤해질 때가 많다.  말을 하는 나와 듣는 아이와 남편, 모두에게 어떠한 안정감을 주기보다는 그저 반복적인 단어의 나열에 그친다는 느낌도 받는다. 이야기를 끝냈을 때의 잠깐의 정막감 같은 고요도 부담스럽다. 그럴 땐 그저 괜찮을 거라는 눈빛으로 맛있는 밥을 내놓는 게 대화 없는 대화일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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