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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06. 2023

베이글

처음이어서 괜찮다는 마음

별생각 없이 덤벼보는 것. 해가 거듭될수록 그런 것들은 점점 사라진다. 그리 과감하게 도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가끔 가슴속에선 뭔가를 해야 한다고 나를 부추긴다.     


하루를 보낼 때 그냥 보내면 안 될 것 같다. 그것은 무언가로 이끄는 길이 된다. 적어도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을 정도면 괜찮다. 토요일에 베이글을 구운 이유다.

 

유튜브를 보는데 영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한 번 해볼까 하는 게 전부였다. 쉽고 어려울 것 없는 그저 손을 조금 움직이면 가능한 일이었다. 집에 있는 밀가루와 이스트, 소금, 설탕, 미지근한 물만으로 가능했다. 

      

재료를 섞고 한 시간 부풀어 오를 만큼 기다리고 다시 모양을 만들어 15분을 더했다. 그러고는 영상을 잘못 확인한 결과  30분을 더 보내야 하는데 건너뛰었다. 마지막 굽기 전에 끓는 물에 잠깐 데치고 오븐에 넣으면 마무리되었다.     


울퉁불퉁 잘 다듬어지지 않은 베이글이다. 모양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그리 정성을 기울이지 않았다. 대충대충 했는데 역시나 완성 후에도 그런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반죽을 열심히 치대었는지 그런대로 속은 발효가 잘되었다.      

그냥 만든 베이글 

내 첫 베이글이 탄생했다. 기대나 평가 없이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니 끝이 났다. 모양은 그리 예쁘지 않지만 베이글이란 이름을 불렀을 때 “그렇구나”하고 인정할 정도다. 그저 베이글인 것.    

  

여러 빵 중에서 새로운 하나를 알았다. 경험하지 않은 일을 해보는 것.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기에 그저 영상을 따라가며 어설프지만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는 과정은 나름 설렌다. 세상살이에서 이처럼 가볍게 할 수 있는 것들이 몇이나 있을까?      


베이글을 온 가족이 하나씩 먹고 나니 두세 개가 남았다. 특별한 이야기가 없었던 걸 보니 그럭저럭 먹을 만했던 모양이다. 가볍게 한 것이었으니 보통의 덤덤함이 머문다. 실패를 줄이기 위해 철저하게 계량하거나, 꼼꼼한 준비 없이 밀가루를 반죽했던 것에 비해서는 성적이 나쁘지 않다.   

  

분명한 건 두 번째 베이글을 구울 때는 지금보다 더 발전된 모습을 보일 거라는 것. 어떤 일에서 일정한 단계를 뛰어넘고 바로 해법을 찾으려 할 때가 많다. 그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 여기고 따라가지만, 머리가 생각한 것을 몸이 기억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성과에 매달리지 않으니 그저 바라보게 된다. 잘하고 못함으로 구별 지으려 하지 않는 사실만을 바라볼 때의 기분은 가볍다. 이런 내 모습은 비단 먹는 일에서만 쉽게 허락된다.      


이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는  불안함, 조급함이 따라온다. 내가 정해놓은 그림이 아니어서 불편하다. 초보의 베이글에 한없이 너그러운 것처럼 다른 것들에도 이런 따뜻한 시선이 머물렀으면 좋겠다. 이제 시작하고 있는 이에게 처음부터 부족함이 없는 모습을 바라는 건 너무 가혹한 것인데… 왜 그게 어려운지 곰곰이 생각을 따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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