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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03. 2023

오롯이 충분한 딸기

행복한 맛, 느낌

딸기를 통해 한 계절을 빨리 만난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딸기는 늦봄에야 먹을 수 있었다. 이젠 딸기가 모습을 보이면 겨울이 다가왔다는 의미다. 그렇게 얼마를 보내다 마트에 딸기 상자 수가 늘어날수록 계절이 깊어진다. 그러다 노점 과일 아저씨의 트럭에서 열댓 상자는 충분히 넘을 만큼 상당한 양의 딸기가 실려 있을 때는 봄이다.     


딸기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가늠한다. 혼자만 즐기는 계절 구별법이다. 하얀 눈이 수북이 내린 겨울, 빨간 딸기를 접시에 담고 포크로 콕 찍어서 밖을 보며 먹는 기분은 ‘행복’이다. 입안에 맴도는 달콤함은 겨울의 맛처럼 다가온다.     


싸늘한 바람과 앙상한 나뭇가지, 두껍게 입은 점퍼가 익숙한 그 틈에서 딸기를 만나면 입꼬리가 올라간다. 내 입안에 도톰하고 빨간 그것이 들어가지 않더라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 딸기다.     


딸기는 생크림과 찰떡궁합이다. 언젠가 아이들과 수플레 케이크를 만들어 딸기를 올리고 먹었다. 한겨울 어느 점심이었는데 그것은 즐거운 파티였다. 벌써 몇 년이 흘렀지만, 아이들은 그때를 떠올리며, 다시 또 그렇게 하고 싶다고 한다.      

딸기와 순수롤

올해는 딸기를 늦게 만났다. 개학을 며칠 앞둔 점심이 처음이었다. 집에는 늘 엄마가 보내준 한라봉과 귤이 있었고, 선물 받은 사과와 배가 있으니 다른 과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눈부신 딸기를 볼 때마다 한 번 사다 먹어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는 지났다. 길다고 생각했던 겨울 방학이 끝날 무렵 꼭 딸기를 먹어야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방학이 끝났다는 아쉬움을 달래려는 마음이었다.     


이틀이 멀다 하고 딸기를 샀다. 김치냉장고 위에 딸기가 담긴 스티로폼 상자가 있으면 오가는 길에 보며 기분이 좋아진다. 내게 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도 딸기색은 강렬했다.      


딸기를 앞에 두고 얼굴을 찡그리며 화내거나 호통칠 사람이 있을까? 그건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딸기를 먹자는 순간에는 말의 리듬이 흐른다.      


순수롤과 딸기는 그야말로 환상의 어울림이다. 남편이 대전 성심당에서 사 온 마지막 순수롤 조각과 딸기를 먹었다. 케이크와 딸기 한 조각을 함께 맛보면 부드럽고 달콤함 뒤이어 생생한 자연의 맛이 따라온다.      


딸기는 색으로 먹는 과일이다. 겨울부터 봄까지 사람들은 딸기가 들어간 디저트에 열렬히 환호한다. 꾸미지 않아도 온전한 딸기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겨울에 딸기를 더 찾게 되는 건 오지 않은 계절에 대해 기다림이다.     


오롯이 그 자체로 마음을 이끈다. 어릴 적 먹던 딸기보다 커졌고, 색 또한 환하게 말끔해졌다. 세상이 더 세련됨을 요구하는 것처럼 딸기의 모습도 변했다. 가끔 딸기 앞에 서면 감탄하게 된다. 


가끔 농부가 얼마나 많은 발걸음과 손길을 거쳐야 추운 계절에도 꽃이 피고 열매가 달렸을까를 헤아려본다. 이건 순전히 부모님이 파인애플 하우스 농사를 지었을 때 겪었던 고단함을 옆에서 봐온 경험 때문이다. 딸기는 그 지극한 노력을 붉게 고운 모습으로 보답하고 있는 건 아닌지. 


여고시절 학교 옆 자갈밭에 길게 줄지은 딸기밭 풍경도 생각난다. 하늘이 주는 대로 비와 햇빛, 바람을 맞고 천천히 커간 딸기는 여름이라고 생각할 즈음에야 맛볼 수 있었다.  크기도 제각각이었고, 맛은 시큼한 게 많다. 지금의 딸기는 공주와 여왕이고, 그땐 순수한 시골 소녀라고 해야 할까? 딸기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화려한 모습 뒤에 스치는 건 모나거나 거친 걸 허락하지 않는 세월의 변화도 함께다. 겨울딸기는 얼음 같은 차가움을 외면하는 도도함이 머문다면 봄날의 딸기는 부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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