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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Feb 27. 2023

핫케이크

말의 무게를 알아가는 일

일요일 아침에 핫케이크를 만들었다. 저녁에 한 약속 때문이었다. 아이들은 먹고 싶다는 말에 그냥 알았다고 답했다. 하룻밤을 자고 나면 후회할 일을 별생각 없이 답했다. 


동네 별다방이 문을 여는 시간에 맞춰 나가려고 했다. 몇 주 전부터 맡은 일이 있는데 아직도 시작을 못 했다. 마감 기일이 다가오니 마음이 급해지는 것에 비해서 집에서는 집중이 안 된다. 혼자서 작업할 공간이 필요했다.     


아이들에게는 개학을 앞둔 마지막 휴일이었다. 일어나서 무거운 눈꺼풀을 깜박이며 잠시 망설였다. 바쁘다는 이유로 다음 기회로 미룰까 하다가 벌떡 일어났다. 스스로 불과 몇 시간 전에 일을 너무 가볍게 뒤집어 버리는 게 불편했다.     

집밥, 핫케이크

눈짐작으로 밀가루와 설탕, 소금, 우유와 계란, 베이킹파우더를 넣고 반죽을 만들었다. 여유가 있으면 모양도 예쁘게 생각할 일이지만 팬을 꽉 채울 만큼 가득 넣었다. 이른 시간 내로 끝내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팬에 한 번 굽고 다시 한번을 더하니 핫케이크가 다 만들어졌다. 무엇을 했다고도 할 수 없을 만큼 간단하게 끝났다. 아이들은 전날 사 온 딸기와 꿀을 찍어 먹기로 했다. 첫맛을 보고는 즐거운 표정들이다.    

 

몇 분 전 내 마음의 방향을 틀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큰 힘을 들이는 일도 아닌데 번거롭다는 이유로 약속을 깼다면 아이들의 아침 미소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순간의 선택에 뿌듯했다.       

    

바쁜 일상은 밥 준비하는 그때를 부담스럽게 한다. 여유를  바라는 까닭에 때로는 비용을 지불하고 편리함과 빠른 속도와 맞바꾸기도 한다.  나 역시 아침에 계란 프라이에 간장과 참기름으로 쓱쓱 비벼 먹는 것으로 대신하려고 했다.   

   

카페에 도착시각과 계획했던 시간의 차이는 30분이 늦어진 게 전부였다. 책임 있는 행동을 하는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 일은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을 삼가려 한다.

     

어느 날 문득 공허하게 사라지는 말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온 이후부터다. 단지 순간 기분에 취해서, 혹은 상대방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서 쉽게 내뱉는 말이 모여서 나의 일부분을 만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에게 핫케이크를 접시 가득 만들어 놓고 집을 나선 건 좀 더 단단해지는 내 일상의 틈을 채우는 일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매일의 집밥은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일 수도 있겠다. 


식당에서 먹는 밥과 간편한 밀키트, 혹은 믹스로 만든 것들에 비해 집밥에는 비교적 화학적인 것들이 끼어들 틈이 적다. 별맛이 없다고 느낄 수 있는 요리가 집밥이 매력이다. 집에서 재료를 조합해 만든 핫케이크 역시 너무 담백했다.      


아이들은 그것에 더 열광한다. 다시 돌이켜보면 간단하게라는 목적으로 단시간에 먹는 음식들은 우리에게 너무 복잡한 맛을 전한다. 집밥은 담백함과 단순함을 떠올리게 한다. 살아가는 모습도 이처럼 가볍게 가볍게 이어졌으면 좋겠다. 핫케이크를 통해서 집밥을 바라보게 되었다. 여러 생각이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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