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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pr 10. 2023

김밥과 라면

집에서도 괜찮은 휴일 보내기

무엇을 먹을지에 대한 계획과 실행력은 내 생활에서 가장 앞서가는 부분이다. 부엌은 그리던 것을 펼쳐놓는 작은 현실의 운동장이다. 뒤따라오는 이를 의식해 곁눈질하거나 속도를 낼 필요도 없다. 그저 내가 정해놓은 그때까지 완성해서 식탁에 올리면 된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그런 일상이 압축된 날이었다. 꽃구경 가거나 다른 외출 계획이 없다. 어디를 가지 않아도 휴일을 그럭저럭 괜찮게 보낼 수 있음을 배우는 중이다. 큰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달라진 우리 집 풍경이다.     


남편은 밀린 일을 하기 위해 종종 사무실로 나가고 큰아이는 학원과 도서관을 찾는다. 바쁜 이들과 달리 비교적 여유로운 막내와 난 동네 카페에서 케이크를 먹으며 책을 읽고 수다를 떤다. 동네 공원을 한 바퀴 돌며 주위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도 확인한다.     


이런 평범한 하루에서 다른 모습으로 찾아가는 건 밥상이다. 주말에 무얼 먹어야 할지 금요일 저녁부터 머릿속에 저장되었다. 한 끼는 조금 다르게 먹는 것. 이것으로 봄날의 휴일을 보내기로 했다.    

대패 삼겹살 김밥과 라면

 

토요일 점심은 김밥과 사발면으로 했다. 김밥은 생각해 둔 것이었고 라면은 막내로부터 시작되었다. 햇살은 보이는데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김밥이 다른 때보다 뻑뻑했다. 

   

마침 장을 보고 온 뒤라 집에는 넉넉한 사발면이 있었다. 

"엄마 라면도 같이 먹을까?"

아이의 한마디는 망성일 없는 당연한 결론에 이르게 했다. 새로운 메뉴 추가에 어느 누구도 거부하지 않았다. 물을 붓고 3분이면 끝이다. 김밥과 라면 참으로 놀라고 온 조합이다. 누가 이걸 가장 먼저 먹어보았을까?      


라면은 손만 몇 번 움직이면 가능하지만, 김밥은 다르다. 아무리 간단한 김밥이라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순서를 나름의 방법으로 지켜야 한다. 김밥의 주인공은 대패삼겹살과 무장아찌에 상추로 정했다. 이런 조합은 최근에 종종 대패삼겹살을 먹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일반적인 삼겹살에 비해 대패삼겹살은 얇아서 지방층과 살코기를 바삭하게 맛볼 수 있다. 고기를 먹는 즐거움과 부담감 사이에서 고민하기보다는 좀 더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특히 굽는 시간이 줄어드니 음식을 준비하는 처지에선 편리하다.     

 

채소와 적당히 어울려 먹으면 얼마 먹지 않아도 고기를 먹었다는 만족감이 상승하고 몸에도 무리가 없다. 그러다 보니 햄의 대용으로 이것을 놓게 되었다. 몇 년 전부터 김밥에 햄을 사용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화학조미료의 맛이 강한 시판 햄 향이 불편했다. 다른 것을 넣어도 김밥은 언제나 실망시키지 않았다.


흰 밥 위에 상추와 대패삼겹살 두 세 조각을 올리고 마지막에 무장아찌를 더해준 다음 돌돌 말았다. 김밥 안에 들어간 고기는 상추와 장아찌에 둘러싸여 강한 고기 맛 대신에 고소함만이 살짝 스친다. 짠맛 강한 장아찌를 넣었지만 단무지만큼의 단짠맛은 없다. 이런 담백한 김밥에는 라면이 잘 어울렸다.     


라면 국물에 김밥을 찍어 먹으면 김 속 밥알이 살아난다. 집밥이지만 공원에서 예상에도 없던 점심을 먹는 기분이었다. 

"이 조합은 언제나 진리야."

아이의 말은 짧지만 강렬한 최고의 찬사였다. 여기저기서 라면 먹는 후루룩 소리가 들린다.   

  

밥을 먹는 건 삶의 또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의 초대다. 어느 날 친구들과 먹었던 분식점 김밥과 라면이 생각났다. 회사 다닐 때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살짝 빠져나와 편의점에서 먹었던 한 끼도 이와 비슷했다. 워킹맘으로 어둠을 헤치고 새벽 출근 하던 날 허기진 배를 달래준 것도 이것이었다.      


내가 먹는 김밥과 라면, 아이들의 그것, 남편의 그것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기억될 것이다. 지난날 어느 공간에서 먹었던 김밥과 라면이 떠올랐다. 그때도 지금처럼 먹는 순간 짧은 달콤함과 먹기 전에 입맛을 다시며 상상만으로도 즐거움이 바람처럼 일어났다. 


나아가 지금과 그때의 난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하는 엉뚱한 고민으로도 이어졌다. 과거 김밥을 만났던 장소는 편의점과 회사 옆 작은 분식집, 지하철 계단이었다면 현재는 내 손을 거친다. 내 삶의 여러 환경의 변화를 담고 있는 풍경이다. 단순하지만 크게 달라진 나도 함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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