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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pr 07. 2023

아침 양배추롤 그 마음

관계의 틈, 복잡한 감정

     

관계라는 단어는 언제나 어렵다. 내가 원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상대방이 바라는 사이의 틈이 커질수록 고민에 빠지게 된다. 매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가족도 예외는 아니다. 

    

큰아이가 고등학교에 갔다. 입학하고 이틀 후부터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저녁 10시를 넘겨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아이의 얼굴을 보는 건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 얼마간이 전부다.      


쉼 없이 이어지는 아이의 학교생활을 안쓰럽게 보면서도 자꾸 내 기준을 강요한다. 아이의 행동에 대해 이유를 묻기도 전에 단정 짓고는 화를 낸다. 집으로 오고 나서 밤이 깊어지니 씻고 잠자리에 들면 좋으련만 휴대전화를 만지작 거리는 게 발단이었다.     


아침도 예외는 아니다. 피곤하다며 침대에 누워있는데 역시 손에는 휴대전화가 들려있다. 

“잠을 더 자지 아침부터 핸드폰 보고 있니?”

“엄마, 나 이제야 봤어. 카톡 확인하는 중이야. 엄만 내가 공부 안 하는 것 같아?”

아침과 저녁에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갈등의 이유다.     


아이의 생활이니 알아도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야 할 일이었다. 한마디를 내뱉고는 내가 더 불편하다. 아침준비에 정신이 없는데 아이가 와서 사정을 얘기한다. 학교에서 주제 실험 후에 보고서를 제출해야 해서 관련 자료를 찾고 있었다고 말이다.    

아침 양배추 롤 

난 여전히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대충 알았다고 하고 어서 학교 갈 준비를 하라고 일렀다. 어제의 마음은 이게 아니었다. 아이는 주말에도 학원과 도서관으로 향한다. 집은 그저 잠깐 머무는 곳이 되었다. 그때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뭘까 잠깐씩 고민한다.     


아이가 먹는 걸 좋아하니 나름 원하는 음식을 챙겨주려고 마음먹었다. 아침부터 냄비에서 끓고 있는 양배추 롤은 아이를 위한 요리였다. 가을이나 겨울, 추운 계절에 가끔 만들었는데 최근에 언제 먹었는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오랜만이다.     


양배추 잎을 통으로 데친 다음 돼지고기를 넣고 돌돌 말아 토마토소스에 조리는 음식이다. 돼지고기에 마늘과 간장, 생강가루, 매실청, 대파 등이 들어간 소를 만들어 놓고, 적당한 양을 펼쳐놓은 양배추에 올리고 고기가 밖으로 빠져나오지 않게 말아주면 된다.    

   

적당히 번거롭기도 해서 아침에 만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주로 저녁 식탁에만 올렸다. 

“엄마 3교시 지나니까 배에서 꼬르륵 소리 나는 거 있지. 난 아침도 잘 먹는데 정말 빨리 배고프다니까.”

아이는 매일 아침을 든든히 먹고 가지만 급식을 늦게 먹는 까닭에 일찍 허기진다는 말을 종종 했다.     


가볍게 먹는 게 아침이라지만 아이를 위해서 고기가 들어간 찬을 준비했다.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대입이라는 현실문제에 직면하면서 스스로 작아지는 경험을 많이 하는 듯했다. 여러 중학교에서 모인 다양한 아이들과 치열한 경쟁 레이스에 돌입한 셈이다. 반 친구들이 쉼 없이 공부하는 모습이 무서울 정도라고 했다.    

  

양배추말이는 아이를 향한 응원이었다. 평소보다 20분 일찍 아침준비에 나서며 정성을 기울였다. 양배추 롤은 은은한 불에서 조려야 제 맛이 나기에 다른 때보다 서둘렀다.     


그런데 이런 마음은 아침에 나눈 휴대전화를 둘러싼 몇 마디로 사라져 버렸다. 몇 분이 지나니 어느 정도 감정 정리가 되었다. 

“아까 엄마가 얘기한 건 공부를 안 한다는 게 아니라 네가 피곤해하니 휴대전화를 보기보다는 잠이라도 충분히 잤으면 하는 마음이었어. 엄마가 미안하다.”

식탁에 앉아서 아침밥을 먹고 있는 아이에게 전했다.    

  

이것도 어찌 보면 내 편의를 위해 상황을 순식간에 정리해 버리는 행동이었다. 다행히도 아이는 맛있다며 양배추 롤 3조각과 밥 한 공기를 먹고 갔다. 아이를 위한다는 건 기분 좋게 하는 음식보다도 편안함이 지속되는 환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양배추 롤이 오르는 이벤트 같은 식탁보다는 아이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는 연습을 쉼 없이 해야 할 듯하다. 그리고 정말 아이에게 솔직한 내 감정을 얘기한 것일까? 아이에게 건넨 말 역시 진심이었지만, 또 다른 이야기가 남아 있는 느낌이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아낀다는 건 내 방식대로 하는 게 아닐 텐데 말이다. 

“엄마는 네가 이걸 먹으며 하루를 즐겁게 시작했으면 했어. 그리고 네가 첫 시험을 준비하는 마음처럼 엄마도 긴장과 걱정을 하는 것 같아. 네가 제일 힘들 텐데 말이야. 이것 역시 엄마가 해결해야 할 몫인데 그걸 네게 불편한 감정으로 전한 것 같아.”    

주말 어느 시점에 아이에게 이 이야기를 해야겠다. 아이는 평소와 다름없이 2~3분을 남겨두고 스쿨버스를 타러 정신없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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