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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pr 06. 2023

행복한 혼밥, 쌈장 비빔밥

나를 위한 일상 만들기

점심때 혼자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 얼마 전부터 생각만 하고 있다가 드디어 실행해 옮겼다. 쌈장 비빔밥이다.  집에 있는 주부들은 보통 가족의 식사를 챙기는 일에  집중한다. 평일에는 아침과 저녁이 바쁘고 점심만이 비어있다. 동시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때다.     


다른 이들이 집을 비웠으니 이 시간이야말로 나를 위해서 집중할 것 같지만 이런저런 핑계로 묻어둔다. 그냥 집에 있는 것으로 간단히 먹는다.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야지 하면서도 그런 움직임은 언제나 더디다. 집안일과 스트레스에 힘들다 보면 이해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매번 지나쳐버리는 건 아닌 것 같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게 내가 살아가는 일이다. 어렵고 막연할 수 있지만 바라는 게 있다면 이를 위해 노력하고 꾸준히 일상 안으로 데려와야 한다. 하지 않으면서 안 된다고, 매일 그 자리라고 탓하며 무언가를 바라는 건 모순이다.


며칠 전에 쌈장을 새로 만들었다. 시판되는 건 달고 맛이 강해서 멀리한다. 집에서 마늘과 양파, 파, 청양고추와 깨소금, 고춧가루를 넣고 만들었다. 나만의 쌈장 법칙은 집에 있는 채소 중에서 어울리는 것을 골라 가능한 한 많이 다져서 넣는 것.     

쌈장 비빔밥

초록을 많이 넣을수록 깊은 맛이 난다. 된장 자체가 많은 소금기를 머금고 있기에 심심한 채소를 통해서 짠맛을 중화시키고 부드럽게 한다. 날것으로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것들이 장을 만나면 묘한 하모니를 이룬다.      


한 주 동안은 충분히 먹을 만큼이 되었다. 특유의 된장 향에 채소가 섞이니 고소한 맛이 강해진다. 숟가락으로 살짝 맛을 봤는데 만족이다. 봄은 준 자연의 선물이 쉼 없이 나오는 때다. 달래, 풋마늘, 냉이 등 봄나물이 쌈장을 완성해 내는 훌륭한 주인공이다.  

  

집에도 엄마가 보내준 미나리와 위층 언니가 준 상추와 봄동 등 여러 가지가 가득하다. 이것을 썰어놓고 비벼 먹는 상상을 했다. 머릿속으로 그 맛이 살며시 전해왔다. 고추장이 전하는 텁텁함보다는 가벼우면서도 잘 어울리는 담백한 단맛 같은 게 그려졌다.     


비가 오다 갠 낮은 새싹이 자라기에 좋은 날이다. 쌈장 비빔밥을 위해 우선 당근을 볶았다. 당근이 기름을 만나면 달콤함과 아삭함이 배가 된다. 여기에 상추를 적당히 썰었다. 고추장에 버무린 멸치도 조금 넣었다. 마지막에 들기름과 쌈장을 올렸다.     


밥과 채소들이 서로에게 어울리도록 숟가락을 움직였다. 당근의 주황이 검 갈색이면서도 초록인 상추와 만나 예쁜 빛을 낸다. “그래 이 맛이야!”라는 탄성이 나지막이 나왔다. 은은하고 부드러운 된장 맛에 야성미 넘치는 들기름 향이 맞닿아 입안에서 춤췄다.    

 

당근을 씻고 채 썰어 볶기까지 약 5분, 상추 서너 잎을 냉장고에서 꺼내 씻고 써는데 3분, 그리고 재료를 그릇에 담는데 일 분 정도 걸렸다. 정확히 타이머를 맞추고 확인하진 않았지만 10분도 안 되어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잠깐의 움직임으로 내 앞에 비빔밥 한 그릇이 놓였다. 떠올리는 것으로도 입맛을 다실 정도로 원하면서도, 모르는 척 지나가 버렸던 지난날은 내게 미안한 일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핑계 삼아 다음에 하자고 넘겼다. 아침에 끓여둔 김칫국을 데워 따뜻한 국물과 함께 했다. 혼자 행복한 점심이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식탁에 혼자 앉았지만 무슨 말이 든 들어주는 오랜 친구와 마주해서 먹는 여유로운 평화가 흘렀다. 기다리던 비가 어제 종일 내렸다. 의욕이 없다고 아우성치던 감정들이 비와 함께 땅 속 깊은 곳으로 스며들었던 건가?     


쌈장 비빔밥, 나만의 레시피가 탄생했다. 고기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맛. 조화로움과 묵직하면서도 즐거운 가벼움이 그 속에 담겼다. 나를 돌보려는 내가 그릇에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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