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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r 30. 2023

정성을 맛봄

미나리 달래 택배

    

동네 곳곳마다 벚꽃이 하루가 다르게 피어난다. 아침보다 저녁 가로등 불빛 아래 꽃 무리는 또 다른 세상을 안내한다. 꽃과 함께 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택배를 받고선 또 다른 봄을 만났다.    

 

“친구가 달래랑 미나리를 한 바구니 가득 주더라고. 보내줄까?”

전화기를 타고 온 퇴근 후 언니의 목소리가 한층 상기되었다. 특별한 선물을 받아서 기쁨에 들뜬 것처럼. 

“응, 보내줘. 나야 주면 좋지.”

공짜는 좋다. 먹을거리는 언제나 환영이다. 그리고 하루 이틀이 지났다.  

   

단골 택배사 문자 메시지다. 오후면 언니가 말했던 그것이 도착한다는 예고다. 봄날 오히려 마음은 가라앉아 음악을 듣다 보니 오전이 지났다. 집을 치우고  쉬고 있는데 택배 도착을 알리는 벨소리다.     


문을 열고 보니 한라봉 상자 하나가 문 앞에 놓여 있다. 얼른 들어서 부엌으로 들고 와서 열어보았다. 봄동, 쑥갓, 상추, 미나리와 달래다. 전화를 타고 들리는 언니의 목소리가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미나리와 달래 반찬

신문지에 미나리가 다소곳이 정리된 채로 돌돌 말렸다. 달래도 같은 모습인데 양이 상당하다. 엄마와 언니가 집에서 한참을 먹고도 남을 정도임이 틀림없었다. 


까만 제주의 흙이 묻어 있는 달래는  마트에서 보는 가녀린 것들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튼튼했다. 미나리는 언니 친구가 사는 동네 냇가 근처에서 캔 것이라는 데 싱싱하고 깨끗했다.      


제철 먹거리가 가득했으니 신나면서도 한편으론 부담이다. 내 손을 거쳐야 식탁에 오르고 제 구실을 한다. 그냥 두면 소리 없이 색이 바래고 먹을 수 없게 된다. 이제 내가 봄을 정성껏 맞이해야 할 시간이다.     


생활 속의 봄은 농부가 밭을 갈아 한 해 농사를 준비하듯이 바삐 움직여야 하는 때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보기 좋은 시절로만 흘러간다. 달래를 대여섯 번 이상 찬물에 씻어 흙을 털어내었다. 엄마가 알려준 방법대로 간장과 매실청, 고춧가루만을 더해 달래를 버무렸다. 여기에 지난겨울에 말려둔 무말랭이도 더했다.     


달래 향과 함께 쌉싸름함이 입안 가득 해지며 얼얼하다. 무말랭이의 쫄깃함은 달래와 균형을 이룬다. 미나리는 우선 초무침을 만들었다. 깨끗하게 씻고 끓는 물에 데친 다음 초고추장으로 쓱쓱 버무렸다. 상쾌한 미나리 맛과 달콤 새콤한 양념맛이 뒤이어 따라온다.     


어제저녁부터 아침까지 봄나물과 씨름 아닌 씨름을 했다. 자연 속에 머물던 녀석들을 깨끗하게 세상의 눈높이에 맞추는 작업은 단순하지만 꼼꼼해야 한다. 고무장갑도 끼지 않은 채 하다 보니 손이 얼음장이다. 그래도 직접 손을 거쳐야 작은 티끌이 잘 보인다. 


그렇게 해서 데쳐내면 생각보다 양은 줄어 그간의 노고에 허탈해진다.  그건 아마도 자연의 본래 모습 같다. 과하지 않고 적당한 것, 부풀어 있기보다 내실 있게 소박하게 있는 그대로 살아내는 것. 


아침상에 고향의  초록 봄 찬을 올렸다. 다들 바쁜 시간이라 그런지 별 감흥이 없다. 원래 봄나물에 그리 마음을 쓰지 않기에 기대할 것도 없다. 혼자만 뿌듯해진다. 달래와 미나리는 아침밥상의 봄을 피웠다.  

  

언니 친구의 수고로움이 우리 집까지 봄을 맛보게 했다.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는 그는 참 부지런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분이라고 들었다. 서귀포 시내에 주택을 짓고 사는데 한편에 텃밭을 가꾸어 배추며 무며 온갖 야채들을 길러서 먹는 것은 물론 나누는 일에도 열심이다.     

달래와 미나리

그는 주변에서 마련할 수 있는 먹거리를 준비하는 일에도 쉼 없이 나서서 달래도 그런 성정이 모아진 결과물이었다. 내 가족이 아닌 다른 이에게 나눠줄 만큼의 무엇을 마련하는 일은 보통 정성으로는 어렵다.


마음을 모으고 몸을 움직여야 하기에 마트에서 얼마를 주고 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렇게 해서 물 건너 내게로 온 봄 야채들이었다.  식탁에 고향의 향기가 어렸다.  

   

봄은 그저 감상하는 것이라 여겼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축제 소식에 한번 가볼까 하는 여행계획을 세우다 멈춘다. 멀리서 봄을 바라보는 일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더불어 봄의 맛을 느껴보는, 봄을 오감으로 경험하는 수고로움도 필요한데 말이다.     


우리 집 봄은 언니의 친구가 전한 달래와 미나리의 향으로 찾아왔다. 

"얼마 동안 머물다 갈 그것과 함께 봄을 꼭 안아주고 포근하게 보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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