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리는 밥
기본과 보통, 일상의 틀을 이루는 중요한 가지다. 세상 바라보기 또한 이것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다른 무엇보다 안정적이란 기분 때문이다. 그럼 이 둘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내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어서 꺼내 놓지 않는 무한한 바람과 욕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무엇일 거다.
매일 밥을 한다. 일 년 중 밥을 건너뛴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내가 생각하는 기본이 되는 보통 밥상은 어떤 것일까? 아침을 준비하다 문득 이것에 관심이 생겼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머릿속에 내가 그리는 모습을 펼쳐보기로 했다.
보통은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다는 의미. 기본은 무엇을 이루는 바탕을 뜻한다. 제일 먼저 언제나 집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재료가 떠올랐다. 누구에게나 부담 없는 것들이었다.
시장에 나오기 시작한 햇양파와 당근, 계란과 두부를 냉장고에서 꺼냈다. 당근과 양파는 채 썰어서 소금을 넣고 볶았다. 계란은 우유를 넣어서 스크램블에그로 했다. 두부는 먹기 좋은 크기로 들기름에 구웠다. 여기에 어제 만들어 놓은 쑥갓나물까지 더했다. 보리밥과 얼갈이된장국도 함께다.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아침을 먹는 큰아이가 식탁에 앉았다.
“엄마, 진수성찬이네.”
아이가 다른 때와는 달리 반찬 수가 많아서 그런지 놀라는 눈치다. 아이는 좋아하는 두부와 계란을 중심으로 아침을 먹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빈 식탁을 바라보며 혼잣말했다.
"이게 보통의 밥상인가? 아닌가? 특별할 것도 없는데 특별해 보이네."
내가 바라는 보통과 평범함의 속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는 ‘이 정도는 돼야 괜찮아’라는 기준을 적용한 또 다른 세상이 있었다.
아침반찬으로 나온 것들은 누구나 쉽게 조리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지만 이것을 한자리에 내놓는 것은 간단치 않다. 비용보다는 반찬의 가짓수만큼이나 여러 번의 손놀림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따라줘야 한다. 정성과 부지런함 없이는 어렵다.
어찌 보면 가끔 만드는 갈비찜이나 육개장, 전복밥 등 별식보다도 힘든 게 매일 먹는 집밥이었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게 한결같음을 유지하는 건 큰마음먹고 만드는 음식보다도 어려울 수 있다. 한 그릇의 묵직한 요리가 있다면 다른 것 없이 충분하지만 일반적인 밥상에는 조화가 필요하다.
김치와 나물, 멸치볶음과 계란말이, 국 등에 이르기까지 서로가 어울릴만한 대상이 존재해야 한다. 이것 또한 한편으론 다분히 의식적이다. 밥은 계란프라이 하나만으로도 가능하고, 조미김 한 봉지를 뜯어서 김치와 먹어도 맛있다. 한 가지 반찬이 상에 올라도 허기짐을 어루만져 주는 훌륭한 한 끼가 된다.
그날의 상황에 따라서 변화 가능한 게 집밥이다. 그럼에도 내가 그려보았던 보통의 집밥은 쉬운 게 아니었다. 누구나 가능하지만 언제나 모두에게는 어려울 수 있는 것. 이것이 보통이라고 여기는 지점이 생각의 함정인 듯하다. 보통의 밥상은 이미 이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매일 만들고 만나는 식탁에선 보통의 밥상은 가끔만 가능하다. 그럼에도 그것을 듣기 좋은 말로 일반화시켜 ‘보통’이라고 정의했다. 보통의 속살을 살펴보면 편안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업주부라는 사회의 시선에서 내 역할을 잘 해내야 한다는 무게가 자리하고 있었다. 남편과 아이의 시선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이것 또한 자연스럽다 여기면서도 불편한 시선이 떠나지 않는다.
남편과 막내는 오늘의 밥상을 두고도 별 반응이 없다. 기대할 만한 것들이 식탁 위에 놓여 있지 않다는 객관적인 증거일 수도 있다. 나만의 생각을 식탁에 풀어놓으며 보통과 기본을 다시 그려본다. 그건 아마도 잘 정의되지 않는 삶의 방향과 닮았다.
보통의 밥상은 평범함을 벗어나 이상적인 식탁을 향하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이어야 보통이 빛날 듯하다. 일반적이라는 단어의 뜻에 함몰되어 겉모습에 점령당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내게 솔직해지는 밥, 그것이 문득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