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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pr 26. 2023

스파게티 속엔 울 엄마 DNA가 있다

아이를 향한 밥상 어디에서 왔을까

막내의 운동회가 있었다. 옛날처럼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달리기 하고 부채춤을 추는 축제는 아니다. 학년별로 날짜를 달리해서 주로 학교 강당에서 진행된다. 막 입학한 1학년 때는 학부모가 가기도 하지만 그 이후에는 아이와 선생님 중심으로 종일 운영되는 체육 시간 같은 분위기다.    

 

아이는 며칠 전부터 설레었다. 자기 반이 일등 해야 한다며, 혹시 경기에서 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까지 할 정도로 관심이 대단했다.      

“엄마, 우리 반 우승했어.”

상기된 얼굴로 거실로 들어서는 아이가 흥분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아이는 친구들과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과 경기 중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 언제나처럼 수다를 떨었다. 그러고 나서는 반복되는 물음이 있다.

“저녁에 뭐 먹을래? 먹고 싶은 거 있어?”

“엄마, 면 먹어도 될까? 스파게티 어때? 나 그거 먹고 싶은데.”     


평일 저녁식사는 둘 뿐이다. 그래서 늦은 오후에 접어들면 항상 아이에게 메뉴를 묻는다. 내가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기도 하지만 이 시간만큼은 아이에게 마음을 향하고 싶다.  냉동실에는 대패삼겹살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것을 꺼내어 마늘과 함께 볶은 다음 스파게티 소스와 면수, 우유를 넣고 소스를 만들었다. 난 저녁 생각이 없었기에 1 인분의 면을 삶고는 후다닥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시판 소소의 위엄 때문인지 아이는 한입 먹고는 엄지 척이다. 대패삼겹살의 적당한 기름이 토마토의 톡 쏘는 달콤 시큼함과 어울렸다. 맛이 궁금해서 아이의 포크를 빼서 들어 면 몇 가닥을 입에 넣었다. 예상보다 부드러우면서도 고기의 느끼함이 없다. 보통의 토마토 스파게티지만 깊은 끝맛에 끌린다.     

아이의 저녁, 대패삼겹살 스파게티 

저녁 설거지를 하다 아이의 먹거리에 꾸준한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엄마 생각이 났고, 엄마가 해 줬던 여러 음식이 떠올랐다. 다른 건 자신할 수 없지만, 밥은 아이들에게 정성 들여 만들어 준다.  먼저 원하는 것을 묻고, 그것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     

이런 내 모습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릴 적부터 봐온 엄마가  내게 머물러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밭으로 나가는 게 생활의 전부였던 엄마였다. 아침 일찍 나가 저녁 어스름이 질 때야 집으로 돌아오는 고단한 삶이었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길 때면 엄마는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고, 경험시켜 주었다.      


가끔 서귀포시장에 가는 날이면 장을 봐와서 평소에 만나기 힘든 음식들을 선보였다. 어느 땐 짜장 소스를 사 와서 짜장면을 만들어 주었다. 어느 여름 방학에는 분홍 소시지가 끼워진 앙증맞은 핫도그를 선보였다. 여름 방학이었는데 피아노 학원에 갔다 와 보니 부엌에서 엄마가 뭔가를 튀기고 있었다.


기름 냄새의 고소함에 이끌려 가보니 나무젓가락에 밀가루 반죽이 묻혀있고 노릇노릇 튀겨지고 있었다. 그건 핫도그였다. 시골아이에겐 들어봤지만 먹어본 적 없는 것이었다.     

“아침에 잠깐 텔레비전에서  <오늘의 요리> 보는데 이런 게 나오더라. 그래서 한번 해봤어.”

엄마 따라 오일장 날에 가서 가끔 만났던 핫도그가 내 앞에 있었다. 부드럽고 달콤한 빵 속에 있는 소시지를 먹을 수 있는 엄마의 미니 핫도그는 별세계 음식이었다.   

  

“엄마, 삼촌 결혼식 때 먹었던 그거 있잖아. 안에 달걀이 들어가 있고 고기로 둘러싸여 있는 거. 나 그거 먹고 싶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건 ‘스카치에그’였다. 잘 다져진 고기에 생강과 마늘 등 향신료로 맛을 내고 안에 삶은 메추리 알이나 달걀을 고기가 감싼 다음 빵가루를 입혀서 튀겨 내는 것으로 누구에게나 환영받았다. 단지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게 단점이었다.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들었다가 잊지 않고 있었다. 시내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자취하던 시절이었다. 엄마가 살펴주러 올 때면 가끔 이것을 만들어 주었다. 농부의 부엌살림에선 여유가 없었고, 그나마 시간을 내어 오는 작은 내 부엌에서 가능했다. 엄마는 자주 할 수 없는 요리였기에 통에 가득할 정도로 만들어 놓았다. 난 그것을 아끼면서 며칠을 두고 도시락 반찬과 간식으로 먹었다.    

 

엄마는 언제나 묵묵히 부엌을 지켰다. 특별히 좋은 날이 아니어도 시간만 나면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했다. 엄마에게서 심각하게 고민하는 얼굴을 그리 본 적이 없다. 삶이 평탄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당연한 일인 듯, 평정심을 유지했다.     

 

엄마의 부엌은 고요했지만 음식과 연기, 달그락거리는 소리로 활력이 넘쳤다. 남편, 시어머니와의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도 부엌에서는 평화를 유지하려 애썼던 것 같다. 엄마는 근심거리를 붙들고 있기보다는 그 자리를 지키면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에너지를 모아 밥상을 차렸다.  

    

지금 돌아보니 그건 내가 엄마에게서 받은 가장 큰 선물이었다. 어른이 되어보니 담담히 상황을 받아들이고 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은 당연한 게 아니었다. 작은 외부의 요인에 의해서 흔들리는 나를 볼 때마다 엄마의 단단한 마음의 깊은 뿌리를 헤아려본다.     


아이에게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는 건 이런 엄마의 모습이 내 안에 가득했기 때문이 아닐까?  밥을 준비할 때면 특별한 목적의식을 갖고 애쓰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몸이 먼저 움직인다. 그 비밀은 엄마의 삶을 바라보고 커 온 엄마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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