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향한 밥상 어디에서 왔을까
막내의 운동회가 있었다. 옛날처럼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달리기 하고 부채춤을 추는 축제는 아니다. 학년별로 날짜를 달리해서 주로 학교 강당에서 진행된다. 막 입학한 1학년 때는 학부모가 가기도 하지만 그 이후에는 아이와 선생님 중심으로 종일 운영되는 체육 시간 같은 분위기다.
아이는 며칠 전부터 설레었다. 자기 반이 일등 해야 한다며, 혹시 경기에서 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까지 할 정도로 관심이 대단했다.
“엄마, 우리 반 우승했어.”
상기된 얼굴로 거실로 들어서는 아이가 흥분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아이는 친구들과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과 경기 중에 벌어진 일들에 대해 언제나처럼 수다를 떨었다. 그러고 나서는 반복되는 물음이 있다.
“저녁에 뭐 먹을래? 먹고 싶은 거 있어?”
“엄마, 면 먹어도 될까? 스파게티 어때? 나 그거 먹고 싶은데.”
평일 저녁식사는 둘 뿐이다. 그래서 늦은 오후에 접어들면 항상 아이에게 메뉴를 묻는다. 내가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기도 하지만 이 시간만큼은 아이에게 마음을 향하고 싶다. 냉동실에는 대패삼겹살이 조금 남아 있었다. 그것을 꺼내어 마늘과 함께 볶은 다음 스파게티 소스와 면수, 우유를 넣고 소스를 만들었다. 난 저녁 생각이 없었기에 1 인분의 면을 삶고는 후다닥 스파게티를 만들었다.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시판 소소의 위엄 때문인지 아이는 한입 먹고는 엄지 척이다. 대패삼겹살의 적당한 기름이 토마토의 톡 쏘는 달콤 시큼함과 어울렸다. 맛이 궁금해서 아이의 포크를 빼서 들어 면 몇 가닥을 입에 넣었다. 예상보다 부드러우면서도 고기의 느끼함이 없다. 보통의 토마토 스파게티지만 깊은 끝맛에 끌린다.
저녁 설거지를 하다 아이의 먹거리에 꾸준한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엄마 생각이 났고, 엄마가 해 줬던 여러 음식이 떠올랐다. 다른 건 자신할 수 없지만, 밥은 아이들에게 정성 들여 만들어 준다. 먼저 원하는 것을 묻고, 그것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
이런 내 모습은 어디에서 왔을까? 어릴 적부터 봐온 엄마가 내게 머물러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밭으로 나가는 게 생활의 전부였던 엄마였다. 아침 일찍 나가 저녁 어스름이 질 때야 집으로 돌아오는 고단한 삶이었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길 때면 엄마는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고, 경험시켜 주었다.
가끔 서귀포시장에 가는 날이면 장을 봐와서 평소에 만나기 힘든 음식들을 선보였다. 어느 땐 짜장 소스를 사 와서 짜장면을 만들어 주었다. 어느 여름 방학에는 분홍 소시지가 끼워진 앙증맞은 핫도그를 선보였다. 여름 방학이었는데 피아노 학원에 갔다 와 보니 부엌에서 엄마가 뭔가를 튀기고 있었다.
기름 냄새의 고소함에 이끌려 가보니 나무젓가락에 밀가루 반죽이 묻혀있고 노릇노릇 튀겨지고 있었다. 그건 핫도그였다. 시골아이에겐 들어봤지만 먹어본 적 없는 것이었다.
“아침에 잠깐 텔레비전에서 <오늘의 요리> 보는데 이런 게 나오더라. 그래서 한번 해봤어.”
엄마 따라 오일장 날에 가서 가끔 만났던 핫도그가 내 앞에 있었다. 부드럽고 달콤한 빵 속에 있는 소시지를 먹을 수 있는 엄마의 미니 핫도그는 별세계 음식이었다.
“엄마, 삼촌 결혼식 때 먹었던 그거 있잖아. 안에 달걀이 들어가 있고 고기로 둘러싸여 있는 거. 나 그거 먹고 싶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건 ‘스카치에그’였다. 잘 다져진 고기에 생강과 마늘 등 향신료로 맛을 내고 안에 삶은 메추리 알이나 달걀을 고기가 감싼 다음 빵가루를 입혀서 튀겨 내는 것으로 누구에게나 환영받았다. 단지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는 게 단점이었다.
엄마는 내 이야기를 들었다가 잊지 않고 있었다. 시내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자취하던 시절이었다. 엄마가 살펴주러 올 때면 가끔 이것을 만들어 주었다. 농부의 부엌살림에선 여유가 없었고, 그나마 시간을 내어 오는 작은 내 부엌에서 가능했다. 엄마는 자주 할 수 없는 요리였기에 통에 가득할 정도로 만들어 놓았다. 난 그것을 아끼면서 며칠을 두고 도시락 반찬과 간식으로 먹었다.
엄마는 언제나 묵묵히 부엌을 지켰다. 특별히 좋은 날이 아니어도 시간만 나면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했다. 엄마에게서 심각하게 고민하는 얼굴을 그리 본 적이 없다. 삶이 평탄한 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당연한 일인 듯, 평정심을 유지했다.
엄마의 부엌은 고요했지만 음식과 연기, 달그락거리는 소리로 활력이 넘쳤다. 남편, 시어머니와의 끊임없는 갈등 속에서도 부엌에서는 평화를 유지하려 애썼던 것 같다. 엄마는 근심거리를 붙들고 있기보다는 그 자리를 지키면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에너지를 모아 밥상을 차렸다.
지금 돌아보니 그건 내가 엄마에게서 받은 가장 큰 선물이었다. 어른이 되어보니 담담히 상황을 받아들이고 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은 당연한 게 아니었다. 작은 외부의 요인에 의해서 흔들리는 나를 볼 때마다 엄마의 단단한 마음의 깊은 뿌리를 헤아려본다.
아이에게 스파게티를 만들어 주는 건 이런 엄마의 모습이 내 안에 가득했기 때문이 아닐까? 밥을 준비할 때면 특별한 목적의식을 갖고 애쓰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몸이 먼저 움직인다. 그 비밀은 엄마의 삶을 바라보고 커 온 엄마의 딸이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