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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pr 27. 2023

짜장국수 먹다 생각난 그날

아버지와 첫 짜장면

글을 정리하다 보니 저녁시간이 되었다. 아이도 방에서 숙제를 하다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보다. 저녁 6시 반이 가까워질 무렵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엇이든 만들어서 저녁을 먹어야 했다. 시간이 걸리는 복잡한 음식은 엄두조차 안 난다. 그럴 에너지도 없다. 그때 짜장이 생각났다. 집에 있는 양파와 양배추를 볶은 다음 춘장을 넣은 걸쭉한 짜장 소소를 밥에 올려 먹는 ‘짜장밥’을 하기로 했다.     


소스를 만들기 위해 야채를 채 썰고 기름에 볶았다. 마침 동그랑땡을 위해 사온 다진 돼지고기도 더했다. 볶음이 마무리되자 다른 그릇에 덜어놓고 춘장을 기름에 볶았다. 춘장 포장지 뒷면에도 그리해야 맛있다고 쓰여 있다.  

    

야채는 간을 하지 않았다. 시판 춘장은 맛이 너무 강해서 다른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자칫 잘못 더하면 짠맛에 가려 제맛을 느끼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짜장소스는 볶은 춘장에 야채와 고기를 넣고 잘 섞어준 다음 녹말물을 부어주고는 보글보글 끓이면 끝이다.    

짜장국수 

 

마지막으로 설탕을 적당량 넣어야 한다. 조리법에도 설탕이 필요하다고 나와 있다. 이 달콤한 것이 소스에 들어가는 순간 부드럽고 진한 맛이 배가 된다. 이제 이것을 밥에 부으면 짜장밥이다. 저녁을 먹고 나니 내가 한 번  정도 먹을 만큼 짜장소스가 남았다. 이걸로 혼자만의 짜장면을 만들어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운동하고 돌아와 쉬고 나니 점심때다. 집에는 중화면이 없다. 망설임 없이 소면을 꺼내어 삶았다. 면 굵기가 가늘어서 3분이면 마무리된다. 남은 짜장소스가 진해 조금의 물을 더해서 데웠다. 흰 국수면 위에 소스를 더하니 짜장면 완성이다.  

   

정확히는 짜장국수다. 어제저녁에 기대했던 맛과 비교하면 거리가 있다. 면은 생각보다 많았고, 소스는 묽어져서 싱겁다. 신경 써서 오이까지 채 썰어서 올렸는데도 부족함을 채우지 못한다. 짜장면은 중국집에서 먹어야 제맛이다. 그동안 짜장을 만들 때마다 느끼는 건 아무리 열과 성을 다해도 식당에서 먹는 맛을 따라가기가 힘들다는 것. 중국집 불맛이 없는 탓일까?     


음식에 대한 기억은 맛매 이전에 누구와 어떤 공간에서 먹었는지가 중요한 열쇠다. 아버지와 함께 갔던 나의 첫 중국집이 떠올랐다. 서귀포시내에 있던 <태화장>이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충치치료를 위해 두세 번 치과를 다녔다. 어느 날은 아버지가 밥을 먹고 가자고 했다. 어딘지도 모른 채 아버지를 따라가 보니 도로변에 자리 잡은 작은 중국집이었다. 아버지는 짬뽕을, 난 짜장면을 시켰다. 


짜장면과 관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운동회날이나 졸업식을 떠올렸다. 난 학교와 집이 코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기에 운동횟날에도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넉넉지 않은 시골살림과 하루를 밭에서 보내는 농부의 가족에겐 외식은 그림의 떡이었다.  


그때 아버지와 간 식당이 내겐 첫 외식이었고 짜장면을 처음 만난 날이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은 좋지만 한편으론 긴장이 찾아왔다. 아버지는 밥상에서 유난히 식사 예절을 강조했다. 수저 잡는 법부터 먹는 자세 등 아무 말 없이 지나는 일이 드물 정도로 무언가를 알려주려 했다. 그럴 때마다 밥상은 부담스럽고 때로는 별로 기분이 안 좋은 시간으로 변했던 그동안의 일들에서 비롯된 불안이었다.      


중국집에서도 혹시 아버지에게 한소리를 듣는 게 아닐까 마음이 쓰였다. 검은색 소스가 튀는 게 신경 쓰였고 젓가락질이 서툴렀기에 면이 마음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그럼에도 젓가락을 움직일수록 그릇은 비워갔다. 아버진 별말이 없었다. 


아버진 아침 일찍 과수원에 가서 농약을 치고 집으로 돌아와 씻고는 나와 함께 정신없이 버스에 올라탔다. 언제나 해야 할 일이 많은 농촌생활이었기에 빨리 다녀와서 오후 늦게 해야 할 또 다른 밭일을 남겨 두고 있었다.  점심을 챙길 겨를도 없이 이른 오후 진료를 위해서 나선 길이었다.  


설렘으로 다가온 첫 짜장면이 어렴풋이 그려졌다. 야채와 고기는 잘게 다져져 소스에 버무려졌다. 굵은 면이 후루룩 입안으로 들어가면 달콤하면서도 고소함에 기분이 좋았다. 맛에 이끌려 먹다 보니 불편함이 작아졌다. 그제야 여유가 생겼는지 파스텔톤의 파란 타일이 박힌 식당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먹은 짜장면이 어른이 될 때까지 아버지와 단둘이 먹은 첫 중국음식이자 마지막이었다. 고등학생 때 자취생활을 시작으로 어른이 되어 결혼할 때까지 휴가 때를 제외하고는 집에서 충분히 지내본 적이 없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고, 아버지는 언제나 농사일로 바빴다. 결혼하고 잠시 아버지가 우리 집에 머물렀지만 그때는 아버지의  건강이 허락하지 않았다.    

  

아련해진 아버지와 짜장면 먹던 그날을 더듬어 보았다. 빨리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도 되었지만 왜 중국집으로 데려갔을까. 단지 짜장면 한 그릇을 딸과 먹는다는 생각에 머물러 있을 아버지가 아니었다.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중시 여겼던 아버진 중국집이 어떤지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와 보낸 시간은 정말 짧았다. 학생 일 때도, 어른이 되어서도 각자의 삶 안에서 지내다 가끔 보는 얼굴이었다.  음식을 함께 먹었던 추억은 맛이라는 선명한 이미지를 통해 그날의 풍경과 정서가 가슴 안에 저장된다.  난 음식을 사이에 두고 아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내가 만들어 놓은 창으로 보고 싶은 데로만 향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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