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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pr 29. 2023

첫 식빵

빵 생활

나의 첫 식빵을 완성했다. 이 봄은 빵을 만드는 계절로 기억될 듯하다. 이틀에 한 번꼴로 빵을 만든다. 매일 어떤 빵을 만들면 좋을지 찾아보고 고민한다. 몰랐던 빵의 세계로 들어가는 동안은 잊고 있던 성실함이 살아난다.      


일찍 일어나 이것저것 검색하다  쉬운 레시피를 발견했다. 손을 열심히 움직여 반죽하지 않아도 되는 법이라고 나와 있다. 이런 정보를 접할 때마다 다른 이들의 부지런함과 탁월함에 놀란다. 재료를 어떻게 계량했는지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어두고는 아침을 준비했다. 그때부터 설레었다.     

첫 식빵 

한의원 진료를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밀가루와 다른 재료들을 꺼내고 식빵 만들기에 돌입했다. 내가 본 영상에서는 통 식빵 두 개를 만들지만 난 하나만 만들기로 했다. 집에는 식빵들이 없다. 파운드케이크 틀로 대신하려는데 이것 또한 하나뿐이다.      


계란과 버터가 전혀 들어가지 않는 빵. 그게 괜찮을까 싶지만 도전하기로 했다. 밀가루와 이스트, 설탕과 소금, 우유와 식물성기름이 필요했다.   

   

우유를 전자레인지에 1분 정도 데운다. 우유에 드라이 이스트(1 티스푼), 설탕(1 티스푼), 포도씨유 (2큰술)를 잘 섞은 다음 소금을 넣은 밀가루(235g)에 넣고 가루가 날리지 않게 저었다.  전자레인지에 물이 담긴 작은 컵을 2분 정도를 돌려준 다음, 반죽이 담긴 볼을 면포를 덮고 한 시간 동안 두었다. 꺼내어 기름 바른 틀에 반죽을 붓고 한 시간을 두었다가 180도의 오븐에 35분을 구웠다.     


식빵은 생각했던 것보다 훌륭했다. 전문가의 솜씨와는 비교하기 어렵지만 내 기준으로는 이 정도면 되었다 싶다. 그동안 먹었던 식빵과는 다른 느낌이다. 맑은 기분이 드는 빵. 폭신함과 함께 깔끔함이 뒤이어 찾아왔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빵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원해서 만드는 빵이지만 누군가의 반응을 살피는 일이 재미있다. ‘내가 좋으면 그만이야’를 외치면서도 부족한 게 있나 보다. 타인의 동의를 자연스럽게 구하는 듯하지만 강요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아이들은 식빵에 박수를 보냈다. 처음에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고 한 조각 맛을 본 다음에는 “엄마, 이젠 빵을 정복해 가는 중이네”라며 과분한 인사를 건넸다.     

샌드위치를 위해 모인 이들과 식빵 4조각

저녁은 밥으로 먹겠다고 했던 아이는 마음을 바꿔 샌드위치로 했다. 오후에 만들어둔 식빵을 두 조각 잘라 배 조림을 바르고 구운 파프리카와 양배추, 계란프라이에 소시지, 치즈까지 올렸다. 이 모든 걸 모아놓으니 이리저리 삐죽 나오는 것들이 있지만 양손으로 빵을 잡고 부지런히 먹었다.      


식빵을 만들고 난 다음날 빵에 대한 마음을 살폈다. 매번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해석해 보는 건 아니지만 유독 정리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빵은 한두 조각만 남은 상태다. 가족들이 찾는 빵이어서 기뻤다. 

   

남편과 동네 근처 로컬푸드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 길에 휴대전화 메모지에 적었다. 빵은 내게 스스로 잘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여겨질 때 나를 확인시켜 준다. 


빵을 반죽하면서는 미래의 걱정과 불안정한 오늘의 내게 숨 쉴 틈을 준다. 식빵을 만드는 두 시간을 훌쩍 넘기는 동안 빵이 잘 구워지는지 살피며, 오븐을 오갔고 틈틈이 신문을 읽었다. 하나의 목적으로 출발한 일이 다른 생활로 이어진다. 빵을 굽는다는 건 앉아있는 나를 일어나게 하고, 베라다 식물을 살피고, 집에 꽂혀있는 책 제목을 보게 한다.     


식빵을 만들며 시작과 과정, 마무리의 3단계를 찬찬히 만난다. 대충 하면 딱 그만큼만, 서툴지만 정성과 관심을 기울이면 그럭저럭 어제보다 진일보한 빵이 탄생한다. 이건 어떤 빵집을 갈 때도 느껴지는 기분이다. 기계적으로 만들어진 것과 공이 들어간 빵은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제빵사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다가온다. 물론 주관적인 생각이기에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대부분의 일상도 이와 비슷하다. 원칙보다는 상황에 따른 변화를 기꺼이 반기는 내게는 재료를 계량할 때 유연하게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베이킹이 질리지 않는 이유다. 그렇게 해도 새로운 빵을 만날 수 있어서 언제나 기대감이 높다. 집에서 홀로 빵 굽는 저편에는 관계에 대한 바람도 담겼다. 내 손을 거친 빵으로 가족이나 친구에게 말보다는 깊은  속 뜻을 전하고 싶다.   

   

금요일 오후의 빵 굽던 시간은 저녁에서야 마무리되었다. 내게 빵은 먹는 것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빵은 잘 이해되지 않았던 어느 부분의 솔직한 나를 만나는 지점이기도 했다. 빵 생활은 당분간 계속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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