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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y 01. 2023

푸르른 네 삶을 응원하며,
말차파운드케이크

엄마의 빵 편지 

빵 만드는 일은 즐겁다. 밀가루가 덩어리가 되고 부풀어 오르는 과정은 당연하지만 매번 신기하다. 때로는 빵을 눈앞에 놓고 맛을 보는 것 이상이 의미가 섞일 때도 있다.   

  

주말에 말차가루를 주문했다. 언제부턴가 아이가 좋아하는 말차라떼와 빵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며칠 전에 아이가 말차파운드케이크 얘기를 꺼냈다. 다른 때였으면 스쳐 들었겠지만, 이번엔 꼭 사야겠다는 다짐이 찾아왔다.    

 

다음날 총알같이 배송되었다. 개교기념일로 학교를 쉬는 아이에게 월요일 아침에는 케이크를 만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토요일과 일요일 사이에 내 마음은 복잡한 가시덤불 속에서 헤매는 기분이었다. 자꾸만 내가 그려놓은 모습 안에서 아이를 보려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아이와 나 사이를 현실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엄마와 딸, 그 둘에게는 어떤 것이 있을까?  내가 우리 엄마에게 닿아있는 가슴의 결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속 시원히 내 속을 열어 보이기 어려운, 멀지는 않지만 편안하지 않은 감정이다.     


아이에게 기대란 부푼 풍선을 품고 있음을 알면서도 때로는 아니라고 부정하기를 반복한다. 아이의 삶을 온전히 개별적인 존재로 여겨야 함을 알지만, 현실에선 어렵다.       

말차파운드케이크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을 서서히 만들어서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과 욕심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를 보는 내 눈은 종종 따뜻함보다는 차가움과 평가가 뒤따라온다. 때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부정적 감정의 덩어리를 안고 살아간다.      


“엄마는 아이에게 충분한 정서적 지지자가 되어야 하는 것 같아. 그것이 고등학교 시기에는 제일 중요하고. 나도 그렇지 못했고. 그땐 나 역시 아이를 응원한다고 생각했지만, 솔직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을 때가 많더라고. 내 마음이 앞서는 때가 많았던 게 사실이야.”

힘든 일이 생길 때 연락하는 친한 대학 선배에게 아이와 갈등을 얘기하니 이런 말을 했다.    

 

그의 말을 헤아려 보면 오롯이 믿어주는 엄마가 아이에겐 필요한 때다. 그럼 난 그런 존재일까 하는 물음을 던져보면 절반 정도라는 답을 조심스럽게 할 수밖에 없다. 냉정히 살펴보면 그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   

   

믿음은 따지고 분석하는 일이 아니다. 그냥 믿는 것. 중간고사를 앞에 둔 아이는 주말 동안 도서관에 가지 않고 집에서 공부한다. 닫힌 방문을 문득 바라보면 저 너머 방 안에 있는 아이와 밖에서 문을 바라보는 정도의 틈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세상 어느 곳보다도 가깝지만, 편하게 그럴 수 없는 망설임이 머문다. 아이가 정말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을까 하는 물음이 가슴에 가득 채워졌다. 그러니 내가 방안에 들어서는 순간 아이의 반응은 확실하다.

“엄마 왜?”

“응 너무 조용해서, 물병 씻으려고 가지러 왔는데.”

둘 사이에 오갈 수 있는 지극히 간단한 대화다. 공부가 잘되는지 보러 왔다고 할 수도 있는데 그런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냥”이라고 가볍게 지나가기에는 이미 아이는 내가 하는 행동의 이유를 간파하고 있을 테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잠깐이지만 정말 어색한 순간이다.

   

이런 감정에 혼자 뒤척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말차 파운드케이크 만들어 줄까?”

“진짜? 엄마 시간 되면 해주면 좋지.”

아침에 물 마시러 온 아이에게 물었다. 아이는 내가 당연히 여유가 있다는 걸 알 테지만 먼저 조심스럽게 단서를 달고 원하는 것을 얘기한다. 서로가 느끼는 거리를 확인한다.     


운동을 다녀와서 서둘러 케이크를 만들었다. 집에 있는 재료만 꺼내었다. 밀가루와 꿀, 설탕, 우유와 계란, 식물성 기름을 넣고 반죽을 만들었다. 밀가루에 말차 가루가 더해지자 순식간에 진한 초록과 연둣빛이 나온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공원의 나무와 그늘이 만들어 내는 계절의 그림과 닮았다. 믹서기에 설탕을 갈아 슈가파우더도 준비했다. 30분 정도가 지나니 다 구워졌다. 매번 빵을 먹을 때 확인하게 되지만 파는 빵은 설탕의 함량이 엄청난 듯하다. 꿀과 설탕을 그런대로 넣었지만 역시 담백하다. 말차의 쌉쌀한 향이 아주 살짝이다.      


“엄마 케이크 정말 성공인 것 같아. 지금 잘 구워지고 있어.”

욕실 청소를 하고 있을 때 아이가 궁금했는지 오븐을 확인하고 가면서 한마디 한다. 아이의 목소리는 경쾌하고 들떴다. 케이크를 꺼내어 슈가파우더를 뿌리며 아이에게 말했다.

“엄만 너를 믿어. 삶에서 지극히 원하는 목표가 있다면 그것을 향해 가다 보면 이룰 수 있다고 해. 네가 원하는 거를 위해서 쉽지 않지만 그렇게 갔으면 좋겠어.”

별생각이 없었는데 이런 말이 순간 나왔다.    

  

동생이 주말에 찾았던 여주 여백서원에서 그곳을 지키는 괴테 연구가 전영애 교수님이 들려준 얘기라며 알려주었다. 아이에게 전하는 순간 나도 몰래 그런 믿음이 크게 다가온다.  아무에게도 얘기할 수 없을 때 기댈 수 있도록, 바람에 자꾸 흔들리지만 강한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내게 한 다짐 같다. 말차파운드케이크는 아이에게 이 얘기를 꺼내놓기 위한 작은 자리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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