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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Apr 25. 2023

소시지 빵

집 빵에 담긴 생각들

토요일 늦은 저녁에 모닝빵을 만들고 나서 이틀만이다. 허리가 며칠째 아파서 한의원에 다녀왔다. 다음으로 미뤄야 할지 고민하다 밀가루가 담긴 통을 꺼냈다. 빵을 만들고 싶었다. 학교 가는 아이에게 오후에 먹고 싶은 간식을 물었다.

“엄마, 나 소시지 빵.”    

 

오늘은 소시지 빵으로 하자. 언제나처럼 다른 이들의 비법을 살짝 엿보기로 했다. 유튜브에서 내게 맞는 영상을 골라 재료 계량과 순서만 눈으로 읽히고는 머릿속에 저장해 두었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도수 치료를 받았지만, 별 차도가 없다. 통증은 심하진 않지만 신경을 쓰기 시작하니 더 잦아지는 느낌이다. 오랫동안 이어지는 불편하고 힘든 감정이다. 아주 가끔이지만 이런 날이 찾아오면 하루를 보내는 게 정말 쉽지 않다. 보이지 않는 진통이 나를 점령하는 듯하다.

    

그래서 더 밀가루를 만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혼란한 마음을 붙잡고 싶어서 스테인 레이스 볼에 우유와 이스트, 설탕을 넣고 열심히 휘저었다. 기름을 넣고 다시 열심히 저었다. 집에 버터가 없기도 했지만, 포도씨유로 대신해도 맛이 괜찮았다.      

소시지 빵

볼에 170g의 밀가루를 넣어서 가루가 날리지 않도록 잘 섞었다. 어느새 덩어리로 뭉쳐진다. 비닐을 덮고 30분이 지나자 넓은 도마에 반죽을 펴고 열심히 치대었다. 그러고는 다시 30분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전자레인지에 물컵을 놓고 3분 정도를 돌려서 온기가 돌도록 한 다음 한 시간을 그대로 두었다.  

     

반죽이 꽤 부풀어 오를 즈음에 넓게 펴서 데쳐둔 소시지와 황색 체더치즈를 넣어서 돌돌 감았다. 영상에서 보았던 것처럼 소시지 빵 4개가 만들어졌다. 아이가 소시지 빵을 좋아해서 빵집에서  종종 샀지만 소시지 특유의 냄새와 짠맛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다.  


빵집에서 만났던 빵은 케첩과 여러 향신료가 뒤엉켜있다. 그 자체로 복잡해 맛을 그려볼 여유를 주지 않았다.  뜨거운 여름날 기세가 꺾일 줄 모르는 태양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입안으로 직행한다.

 

빵이 갈색으로 구워졌다. 몸이 힘들어서 그런지 무슨 맛있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아이가 먹고 싶다고 한 거였으니 주인이 찾아오면 알게 되겠지 싶었다.     


늦은 오후에 들어설 무렵 집에 온 아이는 빵을 한입 베어 물고는 보고는 놀란다. 이 빵이 원래 이런 거였냐는 눈치다. 내 손을 거친 빵은 우리 집에서 집밥 같은 집 빵의 이미지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이 빵은 내 마음 어딘가 숨어 있는 인정욕구도 함께 묻어있다. 저녁에 동생에게 빵 사진을 보내며 툭 건넨 말을 되뇌다 알게 되었다. 

“빵 만드는 것처럼 공부도 잘했으면… ”


지나는 말이었지만 아직도 흘려보내지 못한 아쉬움이었다. “만약에 이랬더라면”의 가정법이 삶에서 많아질수록 현재에 불만족한 것들이 어디에선가 불쑥불쑥 싹을 틔운다. 지금처럼 일상의 작은 균열이 생길 때면, 생각이 많아지면서 절로 내 가슴속 이야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동생에게 했던 한 마디는 생활 어느 한편에서 내가 썩 괜찮아 보일 때 과거의 나와 비교하며 습관처럼 튀어나온다.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더 열심히 해서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난 일이기에 애써 그렇게 말하며 아쉬움과 미련을 달랠 뿐이다.    


매일 새로운 빵에 도전하는 건 집이라는 안전장치가 탄탄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무엇을 이뤄야겠다는 마음보다도 단지 빵 만드는 게 좋아서다. 그리고 언제나 맛있다고 나름의 긍정적인 말을 건네는 가족들이 있다. 집이라는 공간에선 무한정 허용되는 열려 있음의 아름다움이다.     


나이가 들어도 인정욕구는 끝이 없다. 어떤 제약이나 한계를 지우지 않아도 되는 집안이라는 울타리에서 어릴 적 꿈꿔온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고등학교 시절 요리책을 보고 어른이 되면 내 손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을 그렸다. 빵이 주인공이 되어 요즘 내 부엌을 종종 찾는 이유다.     


당분간은 이런 기분으로 지냈으면 좋겠다. 호기심이 생기고 생각을 작게라도 펼쳐 보이며 그것을 타인에게 전할 수 있는 것. 빵을 만드는 것처럼 그런 하루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러다 보면 타인에게 쏠린 내 존재가 자연스럽게 나로 자리 잡으며, 생각도 좀 더 담백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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