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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y 24. 2023

고기 말고 초록을 먹자

부지런해야 만나는 여름 밥상

“저녁에 먹고 싶은 거 있어?”

아침에 빼놓지 않고 가족에게 묻는다. 누군가가 무얼 먹겠다고 하면 그것을 빼먹지 않고 만드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반복되는 건 주부의 일이 깊숙이 배어버린 탓일까?     


아침에 막내에게 물었더니 없다고 했다. 불고기를 얘기했다. 요즘 너무 자주 먹었다며 관심 없는 눈치다. 그럼 뭘 먹어야 할까? 혼자 고민을 했다. 수요일은 모두가 빨리 집으로 오는 날이어서 평소보다 신경이 쓰인다.


그때 생각난 게 제철 채소다. 꼭 어떤 것이라고 정하기는 어렵지만 여러 가지 채소들을 한자리에 모아놓는 것도 좋겠다. 오랜만에 동네에서 좀 규모가 있는 마트에 갔더니 두부와 도토리묵이 세일이다. 묵은 아이가 꽤 좋아하는 음식이다.   

  

집에 돌아와 냉장고에 장 본 것을 정리해 놓으니 뿌듯하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정말 소소한 것들이다. 당근에 깻잎, 쌈 배추, 열무, 버섯, 두부, 도토리묵이다. 이것들을 대충 섞어 무엇을 만들어 보면 썩 괜찮은 저녁이 예상되었다.     

여름 초록을 찾아 나선 밥상 

고기를 멀리하는 아이의 반응도 낯설다. 지난주에 이어 어제도 탕수육을 먹었으니 그럴 수도 있지만 이젠 채소를 먹겠다는 마음이 찾아온 것인가? 너무 앞서나간다. 고기 말고 다른 걸 찾는듯한 아이의 모습에서 잊고 있던 일상을 돌아봤다.     


엄마들 사이에선 ‘고기는 진리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인즉슨 고기반찬만 내놓으면 아이들이 잘 먹기에 반찬 걱정을 안 해도 된다는 것. 그리고 한 걸음 더 들어가면 고기처럼 요리하게 편한 것도 없다.     


물론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라면 상황은 달라지겠지만 구워 먹기는 그리 준비가 필요하지 않다. 볶음요리도 집에 있는 적당한 양념을 넣고 익히면 끝이다. 호불호가 없기에 그런대로 무난한 식사시간이 지나간다.     


그런데 다시 고기가 아닌 거로 고개를 돌려보면 다르다. 풀이라고 얘기하는 야채들은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 물로 잘 씻어야 하고 데친 후에 무치거나 볶기에도 제맛을 내기 위해서 적절한 양념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 땅에서 난 것들이니 된장이니 간장 이런 것들과 잘 어울린다. 손이 많이 가는 찬들이다. 양념 선택을 잘못하면 채소가 지닌 특유의 향을 살리지 못하거나 제맛을 느끼지 못할 때도 있다.   

   

지난 주말에 동생과 오빠네 집에 다녀왔다. 마침 감잣국이 상에 올라와 있었고 옛날을 떠올렸다.     

“여름이면 감잣국에 집 뒤에 있는 텃밭에서 상추 따다가 간장이랑 참기름, 깨에 마늘 다진 것 조금 넣어서 무치면 그게 최고 반찬이었잖아.”

아버진 감자 농사를 얼마 동안 꽤 많이 지었기에 감자 철이 되면 언제나 밥상에 감자가 올랐다.  듬성듬성 썬 감자에 조선간장으로 간한 국은 담백하면서도 달큼한 맛에 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다. 


이뿐이랴 귤나무 아래서 자란 깻잎도 그랬다. 고춧가루와 간장, 참기름, 양파 등을 넣은 양념장에 깻잎을 하나씩 올려서 만든 깻잎 김치는 한동안 밥상을 채워주었다. 그것을 먹으며 다른 게 먹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다. 

 

이젠 그 반찬은 쉽지만 마음먹어야 한다. 오히려 고기반찬은 별 의미 없이 만들면서도 나물이나 채소를 올리는 일은 인색했다. 그건 밥상에 대한 진심을 담는 일이 조금은 버거웠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남편과 큰아이는 늦게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니 막내와 내 식탁은 어느 때부턴가 간단하게 꾸며졌다. 채소가 없는 생략된 적이 많았다. 혹시 젓가락이 가지 않더라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반찬이 필요했던 시간이었다.     

열무와 쌈 배추를 넣고 겉절이를 담갔다. 도토리묵도 무쳤다. 양파와 상추, 당근, 쑥갓을 넣어 간단하게 했다. 깻잎 김치도 후다닥 만들었다. 특별한 재료를 준비하지 않아도 집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능해서 마음먹기에 달린 음식들이다.      


여름이니 양념을 특별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묵 양념은 진간장에 매실청, 깨와 고춧가루, 마늘 조금을 넣고 잘 섞어준다.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더하면 아삭한 채소 맛이 그대로 전해오는 한 그릇 음식이 탄생한다. 다른 채소에도 곧잘 어울리는 만능 간단 양념이다.     


채소를 먹는 일은 그러고 보니 부지런해야 할 듯하다. 농사짓는 농부라면 집으로 가는 길에 밭에서 쑥 뽑아 오거나 뜯으면 되지만 도시에선 장을 보는 일이 필수다. 적당량을 마련해 두는 지혜로운 살림이 필요하다. 고기가 없어서, 더 맛난 식탁이 차려졌다. 바지런함이 만든 저녁 밥상을 일상으로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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