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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y 19. 2023

새벽녘 소보로빵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던 너

따르릉 소리가 들린다. 쉬는 시간이다. 수업하던 선생님이 책을 들고 교실을 나가는 순간 내 몸은 이미 반대쪽에 있는 뒷문으로 향했다. 달려야 한다. 따끈한 온기가 사라지기 전에 만나고 싶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줄에 서서 차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건 불안하다. 방법은 부지런히 있는 힘껏 달리는 일이었다. 소보로빵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고등학교시절 매점에는 소보로빵을 팔았다. 2교시가 끝나면 어김없이 노란 플라스틱 상자에 빵이 수북이 쌓여있다. 누가 그것을 다 사 먹을까 싶지만, 순식간에 사라진다. 천천히 걸어가거나 다른 사람들을 살피다가는 빵을 차지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다.   

   

소보로빵은 여고 시절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었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자리를 잡고 앉지만 공부는 어려웠다. 매일 여러 과목의 수업은 이어지고 그런 만큼 공부 분량도 늘어갔다. 따라가기가 버거운 현실 앞에서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성적 걱정이 마를 날이 없던 내게 매점 빵은 기다려지고 찾고 싶은 소중한 것이었다.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될 거라는 엄마의 응원은 막연했다. 그때 난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역량의 정도를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그건 꾸준히 최선을 다하다 보면 가능할 것이라는 이야기에 내가 해당하지 않음이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불확실한 미래가 점점 다가왔다. 피할 수 없는 압박감 속에서 소보로빵을 먹는 시간만큼은  행복했다. 한입 앙 베어 물었을 때의 달콤함과 바삭함도 좋았다. 그보다 더 매력적인 건 빵 냄새였다. 바람에 실려 교실로 올라오는 버터향이 은은한 그건 마음이 먼저 매점으로 향하도록 했다. 갓 구운 빵 냄새는 그림책 <구름빵> 속  한 장면인 하늘을 나는 기분과 닮았다.     

새벽에 만든 소보로빵

빵 만드는 일과 친구가 되어가는 중이다. 무슨 빵을 만들까 생각하다 소보로빵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먹고 싶다고 했지만, 돌아보니 내 10대를 감싸 안고 있는 빵이었다. 일요일 저녁 피곤이 몰려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깰 수 있다면 소보로빵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빵에 대한 내 진심은 달콤한 잠마저 달아나게 했다. 새벽 4시를 조금 넘길 무렵 눈이 떠졌다. 그때부터 빵 만들기에 들어갔다. 조용히 재료들을 꺼내놓았다. 미리 예습해 둔 영상을 다시 한번 살폈다. 기본 빵을 만드는 건 그동안 몇 번 해본 것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단지 소보로를 만들고 빵에 묻히기는 처음이었다.      


어둠은 소리에 생명을 더한다. 아주 작은 바스락 소리도 크게 들린다. 낮에는 의식 없이 몸을 움직이지만 새벽에는 조심스럽다. 중력분과 드라이 이스트, 물과 우유, 소금, 설탕을 넣어 섞은 다음 실온에 꺼내둔 버터를 넣어 반죽을 하고 발효에 들어갔다.   


그동안 버터와 밀가루 설탕, 소금을 넣고 소보로를 만들었다. 땅콩버터가 있어야 하는데 집에 없기에 생략했다. 대신 샐러드에 넣었던 아몬드 가루를 넣었다. 빵이 발효를 거친 후 오동통하게 부풀어 오르자 찬물에 살짝 반을 적신 다음 소보로가 잘 달라붙도록 힘껏 눌러 주었다.      


오븐에서 구워지는 동안 빵에 찰싹 붙어 납작했던 소보로거 열을 받고 부풀어 오르는 모습이 귀엽다. 20여 분이 지나니 소보로에 거친 표면이 살아나며 제법 모양을 갖췄다. 식탁에 빵을 올려놓고는 혼자 감탄했다.   

   

소보로빵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그리 찾지는 않았다. 빵집에서 만났을 땐 투명비닐 안에 담겨 있어서 낯설었다. 구운 지 몇 시간은 지난 터라 생기가 잃은 듯했다. 빵 크기도 고공행진 하는 물가 탓인지 많이 작아졌다.


그러다 내가 구운 빵을 통해서 그때를 소환했다. 앞치마를 두른 매점주인아줌마가 산을 이룬 소보로빵  중에서 하나를 건네주던 그때가 생생했다. 밖은 어둠을 몰아내고 해가 뜨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난 아이들이 식탁 위에 놓인 빵을 보고 깜짝 놀란다. 온기가 머문 빵 하나를 들어서 먹는다. 월요일은 적당한 긴장이 흐른다. 아이들이 빵을 먹는 잠깐 동안 그 무게가 줄었을까? 두 시간 후면 만나는 친구들에게 전할 빵을 챙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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