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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y 17. 2023

친구 김치서 엄마를 만나다

음식이 전하는  향기 

계곡물이 흐르고 나무 사이로 햇살이 쏟아진다. 봄은 갔고 다가온 여름이 싫지 않다. 숲이어서 가능한 느낌이다. 소나무 말고는 이름 모를 나무들이 우거진 숲을 다녀왔다. 매달 한 번씩 모이는 지인들과 만남이었다.  만나면 밥 먹고 차 마시고 쉼 없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장소와 시간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언제나 비슷한 일정이다. 이날은 각자가 준비해 온 것을 꺼내어 점심을 먹었다. 부침개에 이어 삼겹살로 이어진 잔치였지만 내게 하이라이트는 김치였다. 

  

김장김치와 파김치, 총각무에 내가 아침에 대충 버무리고 간 오이김치까지 가득하다. 쫄깃한 맛이 일품이 양파 장아찌도 더해졌다. 종종 도시락을 준비해 가서 먹는다. 그때마다 김치에 여러 감정이 더해졌다.      

“이거 직접 담근 거예요?”

“아니요. 엄마표 김치랍니다.”

이 말을 들을 때는 엄마들이 창조해 내는 보편적이면서 깊은 맛에 감동한다. 담백하지만 순수하고 강하지 않으니 자꾸 찾게 된다.      


어릴 적 먹었던 김치맛을 발견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지인의 엄마에게서 내 엄마를 만난다. 그때 기분은 참 이상하다. 어떻게 다른 사람인데 비슷한 맛, 때로는 같은 맛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입속에서 양파껍질 벗겨지듯 다가오는 생각들이 잠시 머물다 갔다. 우리 엄마 손맛이었다. 그보다 더 가슴속을 파고드는 건 엄마의 정서가 그대로 옮겨온 것 같은 기분이다.      

친구가 전한 열무김치 


김치를 만든 주인공인 친구의 엄마와 내 엄마는 태어나 자란 곳은 물론 삶의 환경도 다르다. 나이를 물으니 80대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우리 엄마와 세대가 비슷할 뿐이다. 그러다 한 가지 공통점은 다들 시골에서 자랐다는 것. 농사를 지어 자식들을 키워냈다는 것도 닮았다.   

  

친구 엄마는 고향을 벗어나 도시에 사는 딸을 위해 해마다 겨울이면 김치를 담가서 보낸다. 그 사이에 열무며 계절에 맞는 김치를 쉼 없이 만들어 준다. 엄마의 김치가 없는 식탁은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가끔 엄마의 김치를 택배로 받는다. 엄마의 몸은 아무리 애를 써도 나이를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무릎을 수술해서 앉고 일어서는 일이 힘들다. 나를 위해서 김치를 해달라고 하는 것도 미안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지내며 여유가 생긴 후에는 김치를 담가 먹는다.  

   

그래서 친구 엄마 김치를 만날 때면 그 속에서 엄마를 발견한다. 어릴 적 너무나 당연해서 특별하지 않다고 여기던 맛이 이젠 그리움이 되었다. 숲에서 만난 김치도 그랬다. 시큼함에 자꾸 젓가락이 가는 파김치와 지난겨울 담근 김장김치는 딱 우리 엄마 솜씨다.     


그의 엄마를 상상했다. 머리는 적당히 파마했을 것이고 그리 꾸미지 않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분일 듯하다. 말을 많이 하지도 않고 조용히 지내며 자기 일을 하고, 자식에 대한 사랑만큼은 한결같다.  엄마를 바탕으로 그려보았다. 김치맛으로 다른 이의 엄마를 만나는 건 신비로운 경험이었다.   

엄마의 김치를 떠올린  여름으로 가는 숲

엄마는 아무리 바빠도 김치를 빼놓지 않았다. 어스름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는 열무를 씻어 절이고 금세 김치 한 통을 채웠다. 마늘에 고춧가루, 깨, 액젓, 설탕 등이 전부였던 단출한 여름 김치는 시간이 흐를수록 쉽게 만나지 못하는 귀한 것으로 변했다. 김치 담기는 농부이면서도 주부의 일을 외면하지 않았던 엄마의 일상이었다. 


동네에도 종종 김치를 전해주는 친구가 있다. 그의 아버지가 매일 돌보는 텃밭 열무로 만든 것이었다. 허리가 갑자기 불편해졌고, 신경이 그곳으로 향한 탓에 반찬 만드는 일이 힘든 어느 날 친구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문을 빼꼼히 열어보니 쇼핑백에 김치통이 담겼다. 하나는 금방 한 것이고, 다른 것은 시간이 조금 지난 것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식탁에 김치통을 올려놓고는 얼른 맛을 봤다. 갑자기 눈가에 눈물이 맺힌다. 엄마가 김치통을 들고 와서는 바빠서 휑하니 가버린 것 같다.   

  

음식에는 갖가지 삶의 향기가 어린다. 다른 것보다도 유독 김치에서 전해오는 무게가 상당하다. 하나의 단어로 정의하기는 망설여질 만큼 복잡한 여러 이야기가 맴돈다. 엄마가 되고 딸을 키우다 보니 가슴 어디쯤 엄마가 자리 잡고 있다. 그곳에 엄마의 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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