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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May 16. 2023

그냥 만들어 보기 내 빵, 모카번

좋아하는 일, 두려움을 몰아내는 힘

하고 싶고 집중할 수 있는 일은 다른 방해요소들 사이에서도 살아 움직이게 하는 강한 힘이 있다. 옷장 정리를 하는 사이에 타이머를 맞춰서 빵 발효를 하며 정신없이 모카번을 만들었다. 먹어봤지만 내 손을 거쳐 처음 탄생한 커피가 들어간 폭신폭신한 빵이었다.      


잘 모르는 건 물어가는 게 빠르고 쉽게 배우는 방법이다. 이미 몇 번은 만들었을 유튜버들의 영상을 언제나처럼 살펴보았다. 한번 보고 재료를 준비해 두고 따라 했다. 빵은 세 차례 발효시간을 가졌고 그 중간에 빵 위에 올릴 크림을 만들었다.     


빵 반죽에 나서는 순간부터 마지막이 기다려진다. 다른 어떤 욕심 없이 드라마나 영화의 결말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단지 빵집에서처럼 잘 부풀어 있을지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밀가루와 버터 드라이 이스트, 설탕, 소금, 우유가 준비되었다. 냉장고에 있던 우유는 전자레인지에 40초 정도 데우고 버터는 미리 꺼내 말랑하게 했다.     

뜨거운 오후에 구운 모카전

이들을 계량하고 한데 섞는다. 주걱을 가지고 밀가루가 보이지 않도록 한다. 젖은 면포를 볼에 덮고서 10분 정도 두었다 다시 말랑해진 버터를 놓고 손으로 잘 주물렀다. 부드러우면서도 미끈거리는 느낌이 어색했지만 싫지 않았다. 오랜만에 어릴 적 찰흙을 갖고 놀던 느낌이다.     


다시 둥근 공처럼 잘 정돈한 반죽은 40분 발효시킨다. 그러고는 반죽을 접어주기를 한두 번 하고는 30분을 보내고, 다시 한번 접어주고는 30분이 지났다. 이제 본격적으로 번을 만들 시간이다. 8개 분량에 맞게 반죽을 자르고 둥글게 굴린다.      


촉촉한 빵 속을 위에 버터를 적당히 한 조각씩 빵 안에 놓고 다시 20여 분을 보낸다. 이때 마지막으로 빵 위에 올릴 커피 크림을 만든다. 그제야 모카 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게 되었다. 인스턴트커피 3 봉지를 뜯어서 뜨거운 물에 녹였다. 부드러워진 버터와 달걀 물, 설탕과 소금 조금을 넣고 잘 휘젓는다. 그러다 밀가루와 커피 물을 섞으면 진한 검 갈색의 번 색을 만난다.    

   

이것을 짜는 주머니에 놓고 빵 위에 달팽이 집을 그리듯 올려주고 나서 180도 오븐에 20여 분을 구워주면 완성이다. 얇은 비닐에 크림을 담고 끝 모서리를 잘라서 주머니를 만들었는데 갑자기 옆구리가 터지더니 옆에서 흘러나온다. 날씨 탓에 더 끈적해진 그것이 손가락 사이에 끼기 시작했다. 혼자 사태를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다.      


오븐을 오가며 크림이 어떻게 뜨거운 열기 속에서 빵으로 스며드는지 살폈다. 콘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과자 사이로 흘러내리는 초콜릿 같다. 생각보다 예술적인 느낌, 커피 향이 더운 날씨 속에서도 퍼진다.  젓가락으로 콕 찔러보니 반죽이 묻지 않는 걸 보니 다 구워졌다. 실리콘 손잡이를 잡고 오븐에 있는 틀을 꺼내었다. 빵을 만나는 순간 웃음이 나온다. 내가 정말 만든 것일까 싶다. 


내가 먹고 싶어서 만든 빵은 아니었다. 오래전에 아이가 지나는 말을 한 게 기억에 남았다. 더불어 빵이 어떤 과정을 거쳐 부풀어 오르고 만들어지는지 궁금했다. 여러 그릇을 거쳐 반죽하는 과정을 거치는 게 번거로우면서도 하나의 빵이 끝나면 다른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싶다.     


어느 시점에 강하게 끌리는 것이 있다. 내게는 그것이 빵이다. 빵집에서 만났던 빵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시도하는 동안 여유와 좋은 기분이 찾아온다. 여러 재료를 어느 정도 사용해야 원하는 빵이 나오는지도 알아간다.     


내 손을 거쳐 내 빵이 탄생했다. 검색어만 입력하면 무수히 나오는 정보 속에서 내게 어울리는 것을 찾고 다시 내식대로 해석하는 과정도 재미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서슴없이 선택하는 나를 볼 땐 잠깐씩 놀란다.   

    

좋아하는 일은 어쩌면 잘못되면 어쩌지 하는 미래의 두려움을 잊게 한다. 빵을 굽는 일도 이와 비슷하다. 지금 내 앞에 보이는 하얀 가루가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면 덩어리 져 어떤 모양으로 탄생한다. 빵의 모양은 그려지지만 맛은 책임지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그저 해본다. 그렇게 해야 더 나은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언니, 우리 과수원에서 언니는 빵 굽고, 난 상담실 열까?”

동생에게 모카번 사진을 보냈더니 돌아온 답이다. 무엇을 한다는 건 다른 길로 이어주는 기회를 만든다. 장난처럼 내뱉지만, 언젠가를 꿈꾸는 작은 바람을 만든다. 과수원 빵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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