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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n 02. 2023

오후의 토마토와 치즈

나를 향한다는 것

카프레제 

아침과는 확연히 달라진 날씨다. 강한 햇볕에 그늘을 찾게 된다. 점심으로 어제저녁에 갑자기 만든 베이글 하나를 먹었더니 허기져온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했다. 아이 간식으로 냉동 핫도그를 전자레인지에 놓고 데워서 주었다. 

“엄마, 카프레제 있잖아. 그거 맛있더라. 점심때 급식에 나왔어.”  

   

아이의 한 마디에 내 생각도 그곳에 머물렀다. 며칠 전 사둔 생치즈도 있으니 손만 몇 번 움직이면 가능하다. 토마토 하나와 치즈를 대충 썰어서 접시에 놓았다.      


그냥 먹을까 하다가 올리브유와 발사믹을 살짝 뿌려주었다. 혼자 여유 있게 토마토와 치즈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맛있었나 싶다.     


토마토는 찰지고 달콤하고 부드러웠다. 치즈는 쫀득하면서도 짜지 않아서 토마토와 잘 어울렸다. 두 가지가 서로를 침범하지 않고 제맛을 내면서도 어색함이 없다.     


매번 이 샐러드를 만드는 방법은 같았는데 처음 경험한 느낌이다. 그건 아마도 이것을 대하는 내게 답이 있는 듯했다. 집 앞뒤로 오가는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내가 바라는 모습으로 샐러드 한 접시를 놓고 식탁에 앉았다. 

     

오전에 엄마와 아내라는 자리에서 다가오는 복잡한 감정들이 산을 이뤄 거친 파도를 만들었다. 동생과 오랜만에 통화하고 나서 마음을 추스르고,  집안 곳곳을 조금씩 정돈했다.      


내 작은 편백나무 책꽂이를 옮겼다. 그곳에 <리얼 제주인> 잡지에서 받았던 감귤 일러스트 포스터를 벽에 붙였다. 빈티지하면서도 포근하고 소박한 방으로 변했다.     


행동의  목적을 내가 원하는 일로 두었다. 간식으로 토마토를 떠올린 건 몸을 위한 긍정적인 태도였다. 무엇을 먹고 마음을 달래려 할 때 토마토가 괜찮음을 알아가는 중이다.      


종종 토마토 하나를 들어 사과처럼 베어 물거나, 작게 잘라 포크를 들어 편하게 먹는다. 같은 토마토인데 시간과 날씨, 기분에 따라 다르다.  


오후의 토마토는 치즈라는 친구가 있어서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아주 간단한 한 그릇이지만 에너지가 없으면 지나쳐버릴 일이다.      


가족으로 향하는 시선을 나로 돌렸다. 일상의 여러 고민들을 마주하고 견디다 때로는 피해버린다. 그럴수록 감정에 빠져든다. 그럼에도 시간의 힘은 대단해서 얼마를 보내고 나면 생각을 정리하고 일어날 용기가 찾아온다. 


타인에게 위로를 바라는 건 기다림과 적절한 기회가 필요하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그때가 오기만을 바라는 건 외롭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  때로는 3분이면 먹을 수 있는 사발면처럼 간단하지만 나를 품어주는 비법이 필요하다. 내게 그건 한동안 거리를 두었던 맛있는 한 그릇의 음식을 먹는 일. 이번주를 정리하며 카프레제를 오랜만에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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