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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n 07. 2023

솜털 우유빵에 함박웃음

나를 움직이는 베이킹

빵을 구울 때면 설렌다. 나무, 꽃, 음식, 사람 등 그 무엇이든 마음을 입히게 되면 친구가 되는 것 같다. 내가 빵을 만드는 일이 그렇다. 처음에는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의 간식이라는 확실한 목적의식을 갖고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 기억을 되살려 익숙한 파운드케이크부터 시작해 범위를 넓혀갔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어김없이 하양 밀가루 가루를 만지작거렸다.     


어느 날은 마음이 너무 산란했다. 남편의 건강과 아이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며칠 전부터 계속되더니 삼킬 기세로 달려든다. 가만히 있어 진정시키기에는 버거웠다. 그때 떠오른 게 빵이었다.   

  

소시지 빵과 옥수수 식빵을 만들었다. 여름으로 가는 날씨 탓에 밖은 햇빛이 쨍쨍했다. 매일 그렇듯 이스트와 우유, 설탕, 소금, 기름을 넣고 잘 섞은 다음 밀가루를 더해 반죽을 만들었다.      


두 배로 부풀어 오르는 한 시간 즈음까지 기다린다. 처음 시작은 그저 어딘가에 마음을 두기 위함이었는데 반죽을 하면서 머릿속에 큰 암석 같던 고민이 자취를 감춘다.      

웃음 준 솜털 우유빵

베이킹파우더를 넣고 바로 굽는 빵대신 발효시간을 충분히 갖는 빵을 좋아한다. 일정 시간을 지나서 반죽이 부풀어 오르고 다시 가스를 뺀 다음 팽창하기를 기다리는 과정이 즐겁다.     


손을 움직이면서 여유를 찾아간다. 가끔은 혼자 심호흡을 하기도 하고, 있는 힘껏 반죽을 치댄다. 둥근 공 모양을 만들고 젖은 면포를 덮으면 기다림의 시간이 찾아온다. 


단번에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들이어서 강하게 끌린다. 오븐에서 어떻게 구워지고 있는지 간간히 살핀다. 지금보다 더 커져서 어떤 빵이 나올지를 상상하는 것 또한 짧은 행복이다.     


빵을 만들면서는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늘었다. 걱정이나 불안은 선명한 형태를 보이는 물건과는 다르다. 내 머릿속에서 그려져 여러 상황으로 갈래를 친다. 그때 그것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건 자신뿐이다.    

  

대부분은 두려움에 그것을 지나치려 부단히 애쓴다. 그럴수록 문어가 빨판을 이용해 강하게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모르는 것처럼 헤어 나오기 어렵다. 


피하기보다는  견디어내겠다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 또한 꾸준한  연습이 동반되어야 한다. 현재로 자신을 이끌고 와서, 지금에 머물기를 반복하고 그 맛을 알아야 하는데 결코 간단하지 않다. 


다른 이에게 해법이나 위로를 요청하며 내 무게를 덜기 위해 애쓴다. 이것 또한 혼자 감당하기에는 벅찬 것들을 나눈다는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다.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으며, 정리가 되고 괜찮을 거라는 한마디에 불편함의 정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     


현실적으로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누구를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저 내가 나를 봐야 할 때 빵은 또 다른 친구가 되어 내게 말 걸어온다.  전화를 걸어 얘기를 잘 들어주는 동생을 찾는 게 그동안의 내 패턴이었다면 이번에는 그냥 지났다.      


대신에 우유 솜털 빵을 만들었다. 그동안 내 손을 거쳐간 빵들 중에서 가장 잘 부풀었다. 충분히 반죽이 빵으로 탄생할 준비를 갖출 때까지 기다린 결과였다. 오븐에서 다 구워졌다는 알람에 달려가 꺼내는 순간 함박웃음이 나왔다.   

  

반죽이 빵 틀 위를 넘길 만큼 오동통하게 올라왔다. 확실히 발효가 잘되었다는 증거다. 그 빵이 사라지기까지, 이틀 동안 그것을 볼 때면 싱글벙글했다. 나를 움직이는 빵이다.      


힘들다는 느낌이 올 때 휴대전화를 들거나, 메시지를 보내 약속을 잡지 않아도 괜찮다. 바람에 날려가 버릴 것 같은 가벼운 밀가루를 붙들고 빵이 다 구워질 때까지 두 시간을 훌쩍 넘기면 견딜만한 나의 틈이 생긴다.   

   

솜털 우유빵을 만든 날처럼 때로는 훌륭하다고 자평할 만큼 예상하지 못한 좋은 결과가 나온다. 다른 이의 레시피를 빌어서 내 방식으로 변화를 준다. 새로운 도전이 싹튼다.  빵을 만들며 마음이 제 자리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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