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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n 21. 2023

나를 살피며, 바질페스토

그렸던 일을 실천하기 

  

시계방향으로 바질페스토 재료와 바질잎, 무성했던 잎이 사라진 바질화분 

친구가 지키고 싶은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난 나를 지키고 싶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조금씩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게 바람이야.”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를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그것이 어떤 모습일지를 생각해 보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가슴 깊숙이 내 것을 품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었다.      


바람이 조금만 불어도 잘 흔들리는 나다. 남들이 보기에는 정말 별일 아닌 것에도 혼자 종종거리는 내가 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중년이다. 그동안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의 나를 이루는 것에는 많은 수식어가 붙어있었다.     


엄마, 아내, 며느리, 딸 등 이것으로 설명되지 않는 나를 찾는다.  너무 멀리 있는 것 같아 황당하거나 막연할 수 있지만 보이는 것들에서 나를 만나는 일이 중요하다 여긴다. 질문을 던진 친구가 ‘지금’이 가장 소중하다고 했던 것처럼 난 형태를 알아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에게서 머물길 원한다.   

갑자기 만든 바질페스토 

저녁 늦게 남편의 고민을 들어주다 그것이 내 일이 되어버렸다. 아침부터 힘이 빠지고 우울함이 밀려왔다. 망설이다 매일 가는 운동을 다녀오고 나서는 식탁에 멍하니 앉았다. 그러다 일어나 시장을 보고 왔다. 그때 갑자기 생각을 스치는 것, 바질 화분이었다.     


일주일 전쯤에 화원에서 하나 샀다. 매일 바질을 키워야겠다고 마음먹다가 그대로 멈추었다. 그런데 동네 숲을 거닐다 결심이 섰다.

“집에서 생으로 먹을 거죠. 그거 입을 따고 나면 다시 잘 돋아나요. 그래서 사람들이 잘 찾아요.”

주인아저씨가 3000원짜리 바질 화분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살짝 떨렸다. 입이 무성한 게 지금이라도 무슨 요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처음의 기분을 유지하는 게 언제나 큰 과제다. 집으로 와서 분갈이를 해주고는 일주일이 지나간다. 그러다 바질페스토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아끼던 바질 잎을 천천히 땄다.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한번 요리할 분량으로는 충분했다. 

    

마늘과 호두, 올리브유, 바질, 파르메산 치즈 가루를 넣고 블렌드로 갈았다. 몇 년 전부터 머릿속으로 그렸던 일이었는데 순식간에 끝났다. 작은 유리병에 담았더니 서너 번 이상은 충분히 먹을 만큼이다. 내 손으로 만들었다는 게 신기하다.     


통에 약간의 바질페스토가 남았다. 그것을 연유 빵에 바르기로 했다. 가끔 빵집에서 바질페스토가 들어간 빵을 먹었는데 이국적이다. 어떤 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시도해 보았다.     

 

설거지까지 끝마치고 나니 뿌듯하고 혼자 싱긍벙글이다. 내가 원하는 일상을 보내었구나 하는 기분에 오늘이 멋진 날이 되었다. 내가 오롯이 서 있어야 타인에게도 잘 대할 수 있다는 걸 알아가는 중이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있어야 남도 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작은 유리병에 담긴 바질페스토는 나로 집중하는 일상의 작은 발걸음이었다. 내 안에 머문 여러 가지를 고민하고 알게 되며 행동으로 이어질 때, 다른 것에서 느낄 수 없는 뜨거우면서도 소박한 즐거움이 있다. 그건 익숙한 것들을 꾸준히 지켜가는 일이며. 새로운 것에도 할 수 있는 만큼 시도해 보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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