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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n 26. 2023

괜찮아, 달걀프라이

편하게 바라보기

달걀 한 꾸러미가 에코백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짐작했다. 표고버섯과 대추토마토, 두부에 오이고추를 넣고 마지막으로 달걀 꾸러미를 담으며 ‘집에까지 잘 갈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생겼다.     

 

비가 오다 개다 하는 날이다. 온 세상이 습한 기운에 둘러 쌓여 있는 게 어색하다. 한동안은 비를 그리워할 만큼이었는데 지금의 상황은 불편할 따름이다.      


건널목을 지나서 공원길에 들어섰다. 여름을 알리는 능소화 터널을 지나 소나무 향기에 살짝 취한 후 빨리 집으로 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탁.”          


달걀 꾸러미였다. 소리가 어느 정도 컸으니 상황은 예상되었다. 다 깨졌거나 서너 개 이상 문제가 생겼으리라 여겼다. 비가 또 소리 없이 내리기 시작한다. 빗방울이 굵어지는 게 얼마 동안은 계속될 모양이다.     


가방에 이 꾸러미가 들어갈 공간이 부족해서 생겨난 일이다. 이미 예견되었던 것일 수도 있다. 확인해 보는 게 의미 없다 여겼다. 집으로 가서 살피기로 하고 한 손에는 우산을 반대쪽에는 달걀을 들었다. 그런데 별 마음이 없다. 

떨어진 달걀은 결국에 빛나는 프라이로 변신했다.

집으로 오자마자 꾸러미를 열어보았다. 불과 오 분 전쯤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상황이 좋았다. 달걀 하나는 완전히 부서졌고, 나머지 하나만 살짝 금이 간 정도다. 달걀을 감쌌던 포장 상자가 꽤 제 역할을 해 준 것 같다.      


문제의 깨진 달걀을 플라스틱 통에 담았다. 달걀을 사고 오는 길에 이런 일은 흔하지 않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여겼다. 그때의 내가 이상했다.   

  

일상의 작은 어긋남에도 즉각적으로 반응을 한다. 그것의 경중을 떠나서 마음은 부정적인 상태로 변해 어떤 모습으로든 나타난다. 혼자 화를 낼 때도 있고, 옆에 있는 누군가에게 여러 형태로 표현한다..  

   

그들이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았음에도 가까운 곳에 있다는 이유로 내 감정을 고스란히 느껴야 한다. 정말 별일 아닌 것에서 큰일이 되어버린다.      


그런 그동안의 관행을 벗어난 내가 낯설다. 달걀 한 꾸러미의 가격은 4700원이다. 딱 그만큼의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비용 때문인가?      


기억이라고 정의되지 않을 정도로 일상에서 비일비재했던 감정폭발이 없다. 일어난 일인데 뭐 어쩌겠어라고 현장을 보는 내가 있을 뿐이다.  

   

감정의 동요가 없으니 편하다. 내 에너지가 다른 곳으로 퍼져가지 않으니 지금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시장 봐온 것들을 정리하고는 예약해 둔 미용실로 향했다.     


“원장님 나이가 드는 일이 좋은 것 같아요. 시장 다녀오는 길에 계란을 떨어뜨렸는데도 마음이 별 움직임이 없네요.”

십 년을 훌쩍 넘긴 단골 미용실 원장에게 말했다. 어린아이처럼 그때의 내 모습에 대해 칭찬받고 싶었을까?  그보다는 상황을 설명하며 어른이 되어감을 실감하고 싶음이 강하게 일었다.     


땅에 떨어져 온몸을 지탱해 주었던 껍질을 산산조각이 났지만 노른자만은 아직도 탱탱한 그 달걀로 저녁에 프라이를 만들었다. 대추 토마토 한 개를 굽고서 간단한 저녁으로 먹었다. 


다른 일상에서도 이처럼 자유로워지기를 희망한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감정을 선택하고 그것을 밀고 나갔으면. 설령 그러하기가 힘들다면 지금의 느낌을 가슴 깊이 간직해서 되뇌어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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