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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n 19. 2023

고구마 피자

삶도 원하는 대로

고구마 피자를 만들었다. 아이가 며칠 전부터 피자를 먹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시켜줄까 하다가 한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피자 기본 반죽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얼마 전부터 빵 만다는 일을 즐겼던 터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밀가루와 이스트. 물과 설탕, 소금을 넣고 반죽한 다음 발효시키고 준비했다. 한여름처럼 갑작스럽게 더워진 날씨는 자연스럽게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걸 도와주었다.     


다른 이의 요리법을 살펴볼 필요도 없이 머릿속에서 생각나는 대로 준비했다. 고구마를 찌고 핵심인 모차렐라 치즈도 사두었다. 처음에는 고구마만 넣을까 하다가 베이컨과 양파까지 더했다.   

고구마 피자 

저녁 시간이 다가올 무렵 준비해 둔 반죽을 편평하게 사각 틀에 맞춰 모양을 잡았다. 스파게티 만들 때 먹던 토마토소스를 넓게 펴 발라 주었다. 여기에 부드러운 고구마와 채를 썬 베이컨과 양파를 올린 다음 마지막으로 치즈를 듬뿍 뿌리면 끝이었다.     


180도 오븐에 30분 정도를 구우니 완성되었다. 내가 만든 첫 피자였다. 뜨거운 상태에서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예상했던 대로 달콤하면서도 담백했다.     

배달 앱을 통해서 가끔 시켜 먹던 동네 피자집 것과는 확연히 구분되었다. 피자 안에서 느껴지는 복잡함이 없다. 혀끝에 와닿는 대로 무엇인지 느껴진다. 단순해서 소박했고, 그것이 자꾸 식욕을 자극했다.  

   

아이는 엄치 척하며 만족해한다. 휴일 전야를 제대로 느끼는 듯한 분위기다. 내가 느끼는 피자는 한마디로 자유였다. 고구마 피자 한 판을 마음대로 만들고 나니 편하고 쉽다는 것. 다음에는 다른 피자를 만들 때도 망설일 게 없을 것 같다.     


타인이 정한 대로 따라가는 건 고민하지 않아도 되기에 편리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짜인 틀 안에서 규칙을 자꾸 살피게 된다. 단계마다 맞게 잘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점검하고, 살펴보는 동안  보이지 않는 막연한 대상에 대해 눈치를 보게 된다.     

맞고 틀림에 대한 자기 검열이 심해지면서 다양한 시도가 어려울 수 있다. 피자를 갖고 이리도 생각이 넓어지는 게 조금은 어색하지만 내겐 그러했다. 어떠한 기준이 없으니 있는 그대로 보게 되었다. 

    

아이가 고구마 피자를 맛있게 먹었다. 그동안 경험했던 피자와는 다를지라도 그것과 기준이 같지 않으니 비교되는 일이 없다. 


내가 만들어 가고 싶은 삶을 고민한다. 그것이 외부의 요인에 의해서 크게 흔들리지 않고 담담히 뿌리내려 내 주변을 가꾸어가기를 바라는 중이다. 그렇지만 현실 속에서 자꾸 뒤돌아보고, 미래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무엇이든 가능하지 않을까? 피자와 삶의 과정을 같은 선상에서 바라보기는 무리가 있지만 그래도 그냥 해보면 되고, 아니면 다시 돌아가면 될 일이다.     

 

다른 이의 모델을 내 것 인 양 세워두지 않으니 어떤 식으로든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피자는 토르티야를 이용해서 간단히 만들어 먹거나 피자 전문점의 여러 메뉴 중 하나를 고르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왔다.  

   

이제 피자 또한 원하는 대로 만들어도 충분히 괜찮은 피자가 완성된다는 걸 알았다. 내 일상도 그렇게 자유로워지기를, 피자를 만들며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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