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진미 Jun 12. 2023

백 점 탕수육

엄마가 아이에게 가는 길 

    

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거실로 들어온다. 수학 단원평가를 잘 본 것 같다며 기분이 들떴다. 

“ 엄마 내가 100점 맞으면 뭐해서 줄 거야?”

“글쎄? 먹고 싶은 거 있어?”

이런 상황에서 대화의 결말은 맛있는 것을 만들어 주거나 시켜서 먹기다. 

    

“탕수육.”

한참을 고민하던 아이가 말했다. 그렇게 아이와 약속 아닌 약속이 생겼다. 다음날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한참이 지나도 별말이 없다. 당연히 탕수육은 없던 일로 해도 되겠다고 마음 놓고 있을 때였다.

“엄마, 나 100점 맞았어. 탕수육 잊지 않았지!”     


아차 싶다. 어제의 말을 되돌리고 싶어졌다. 분위기에 휩쓸려 내뱉고는 막상 실행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면 크게 다가오는 말의 무게다. ‘다음에’라는 말이 입안에서만 맴돈다. 실망할 아이의 얼굴을 마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냉동실에 있던 등심을 꺼내었다. 저녁이 되려면 두 시간 정도 남았지만 미리 준비해야 편하다.  돼지고기를 적당한 크기로 썰고 생강가루와 후추, 식용유를 조금 넣고 조몰락거려 두었다. 그래야 고기가 부드러워지고 잡내가 나지 않는다.     


찹쌀가루와 밀가루를 1대 3 비율로 섞은 다음 반죽을 만들었다. 고기에도 반죽이 잘 붙도록 밀가루 옷을 살짝 입힌 다음 튀기기 시작했다. 온종일 여름 더위를 예고하는지 후텁지근한 날이었다.     


불 앞에서 그것도 기름이 가득 담긴 팬을 마주하고 탕수육을 만드는 일은 조급증을 몰고 왔다. 처음에는 오랜만이라 즐거운 기분으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빨리 정리하고 싶어졌다.     


튀기는 동안 기름 온도를 적당히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 좁은 공간에서 조리하다 보니 집안 가득 기름 냄새가 풍기고 여기저기 작은 방울이 튀어 미끄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하고 있으니 준비해 둔 고기가 조금씩 줄었다. 족히 30분 이상을 불 앞에서 씨름한 뒤에야 끝이 났다.      

아이와 약속, 탕수육

아이는 소스도 적시지 않은 채로 맛을 보더니 “그래 이 맛이야”라며 좋아한다. 며칠 전 시켜 먹었던 것과는 비교과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의 반응에  힘들다 느끼면서도  정리할 기운이 생긴다.  마음에 드는 음식을 해 줄 때마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새롭다.


소스는 간단히 했다. 물과 양조간장에 설탕과 케첩, 완숙 토마토 하나를 듬성듬성 썰어 넣은 다음 약한 불에서 푹 끓였다. 초록이 없어서 아쉬웠지만 그대로 두었다. 복잡한 것보다는 간단하게를 가슴속에서 외치고 있는 시점이었다.  오이를 조금만 더해도 금세 느낌이 살아나겠지만 생략이 미덕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탕수육을 부지런히 만들면서도 언뜻 시켜주고 말 걸 하고 후회했다. 아이는 내가 직접 만든 걸 원했기에 약속을 바꾸기도 미안했다. 아이는 시험을 잘 본 날에 엄마가 주는 상 같은 것으로 탕수육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난 그보다는 어제 오후부터 다음날 시험 결과를 들을 때까지 기다렸을 아이의 마음을 품어주고 싶었다. 바라는 만큼의 점수이거나 정반대의 경우 모두 존재한다. 아이는 그동안 설레는 동시에 아니면 어쩌지 하는 걱정 또한 함께 머물렀을 것이다.      


아이에게 한 접시 내놓은 탕수육은 그 모든 과정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다. 더불어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 중에서 음식이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부모의 길을 잘 걸어가는 것이라는 어느 작가의 얘기가 떠오른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며 하루를 만들어 간다. 그 시간 속에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공간, 탕수육이 만들어 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토마토 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