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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Jun 09. 2023

토마토 잼

익숙함에서 다르게 보기


    

반복적인 일은 새로운 문을 열어 준다. 언니가 토마토 한 상자를 보내주었다. 이웃과 나눠 먹고도 양이 상당했다. 


토마토의 제맛은 실온에 보관해야 오래 유지된다. 그래서 상자에 담긴 채로 두었다. 대신에 매일 토마토를 먹었다. 카레나 스파게티는 물론 샐러드에 주스까지 어울릴 거라 생각되는 음식에는 토마토를 넣었다.     

 

토마토를 싫어하지도 않지만 좋아한다고 할 만큼도 아니었다. 몸에 좋다니 가능한 한 챙겨 먹으려 하는 게 토마토를 향한 마음이었다.     


꾸준함으로 이어지려면 우선 간단해야 했다. 다른 것과 먹기보다 오롯이 토마토만으로 가능한 음식을 만들었다. 빨간 토마토를 깨끗하게 씻고 꼭지를 떼어낸 다음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서 그릇에 담는다. 여기에 올리브유와 발사믹을 살짝 뿌려주면 끝이다.     


일주일에 5일 이상은 이렇게 먹었다. 밥과 국, 김치와 멸치볶음 감자볶음 등 흔한 한국식 밥상에 함께 올렸다. 식사 전에 토마토를 두세 조각 먹고 밥을 먹기 시작한다.     


아이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했지만 난 정반대였다. 입안을 깔끔하게 정돈해 주는 느낌이 들면서 과식하는 걸 막아주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적절한 다이어트 식단이었다.  

   

이렇게 토마토를 가까이해 보니 다른 방향으로 시선이 머물렀다.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토마토 잼’을 만들면 어떨까? 찾아보니 이미 사람들에게 익숙한 것으로 널리 퍼져있었다.     

토마토 잼

지금 먹고 있는 토마토보다 더 일찍 사둔 토마토가 쪼그라들며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이것으로 하면 되겠다 싶었다. 토마토를 씻은 다음 중심부에 십자 모양의 칼집을 내고는 끓는 물에 살짝 데쳐주니 껍질이 쉽게 벗겨졌다.     


대충 썬 토마토를 냄비에 담았다. 설탕은 두 번에 걸쳐 나누어 넣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니 물이 생기면서 보글보글 끓기 시작한다. 이즈음부터 중간 불로 조리한다.      


토마토의 수분이 빠져나올 무렵 맛을 보니 달콤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느낌이다. 두 번째 설탕을 더하는 시점은 전체적으로 토마토가 물러질 때다. 처음에는 설탕과 토마토 비율을 일대일로 하려 했는데 너무 단맛이 강할 것 같아 눈대중으로 적당히 넣었다.      


오래 보관할 것이 아니니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한참 끓고 10여 분이 지날 무렵 중간 불보다 약하게 해 주고는 20분 정도를 다시 조렸다. 다른 집안일을 하다 보니 제법 잼이 되어가는 모양이다. 


토마토 특유의 향은 많이 날아가고 달달하지만 깔끔한 뒷맛을 주는 잼이다. 토마토 과육을 그대로 느끼는 게 좋아서 블렌더로 갈지 않고 두었다. 듬성듬성 토마토 덩어리가 살아있다.     


예상보다도 훌륭한 잼이었다. 딸기잼처럼 익숙하지는 않지만 붉은빛의 그건 여름과 잘 어울렸다. 토마토라고 말하지 않으면 모를 보통의 과일잼 분위기다.      


처음에는 케첩 맛을 연상했지만, 그것과는 사뭇 달랐다. 다음에는 토마토의 생생한 맛을 위해 설탕을 더 줄여야겠다. 토마토 잼의 매력은 활짝 빛나는 붉은색을 그대로 간직한다는 것. 여기에 토마토 씨가 마치 깨를 뿌린 것처럼 콕콕 박힌 것도 귀엽다.     


어제 만들어 둔 말차호두빵에 살짝 발라 먹었다. 초록과 빨강의 조화가 눈을 즐겁게 했다. 토마토 잼을 다 만들고 나선 토마토를 향한 내 시선이 그동안과 많이 달라졌다.     


부담스럽지 않게 상추나 감자, 양파를 먹듯 토마토를 찾게 되었다. 매일 먹다 보니 어제와 다른 토마토 맛을 알게 되었다. 더 익었다 할 수 없을 만큼 검붉은 색을 내는 완숙 토마토는 부드러우면서도 달콤했다.    

 

생의 첫 토마토 잼은 가벼워서 좋다. 토마토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익숙한 것에서 잠시 비켜서 바라보고 움직여야 보이는 게 있다. 토마토 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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